아침의 시 한 편_좋은글, 일기

그럴 수 없다 _ 류시화

시 쓰는 마케터 2021. 12. 29. 08:47

 

 

그럴 수 없다

 

                         류시화

 

 

물 속을 들여다보면
물은 내게 무가 되라 한다
허공을 올려다보면
허공은 또 내게 무심이 되라 한다
허공을 나는 새는
그저 자취없음이 되라 한다

그러나 나는
무가 될 수 없다
무심이 될 수 없다
어느 곳을 가나 내 흔적은 남고

그는 내게 피 없는 심장이 되라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그는 도둑처럼 밤중에 이슬을 밟고 와서
나더러 옷을 벗으라 하고
내 머리를 바치라 한다
나더러 나를 버리라 한다
그러나 나는 그럴 수 없다

그는 내게 물이 되라 하나
나는 불로서 타오르려 한다
그는 내게 미소가 되라 하지만
그러나 아직 내 안에 큰 울음이 넘쳐난다
그는 내게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라 하나
나는 그럴 수 없다 한다

 

 

* 2021년 12월 29일 수요일입니다.

머리로는 이해를 하지만 몸과 마음이 안 따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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