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시 962

햇빛 통조림 _ 안효희

햇빛 통조림 안효희 금정산성 남문 마을 내린 햇살이 참새 떼로 조잘거리는 햇살, 햇살 내 몸에 담는다 덜컹거리던 겨울, 풀잎 아래 묻고는 뭍으로 올라온 인어처럼 눕는다 길게 파릇파릇 오후가 쿡쿡 옆구리를 찌르자 바늘 같은, 유리 조각 같은 것 쑥쑥 빠져 나온다 발가락에서 발가락으로 배꼽에서 배꼽으로 퍼지는 간지러움 나른해지는 느낌표 같은 힘빼기! 봄은 경운기를 타고 들길을 돌고 온 몸 졸음으로 말랑말랑해지는 나는 햇빛, 햇빛 통조림! * 2023년 7월 7일 금요일입니다. 필요한 것들을 뭐든지 넣을 수 있는 통조림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한 주 마무리 잘 하시고 편안한 주말 되세요. 홍승환 드림

마음이 세상을 꽃피운다 _ 김광렬

마음이 세상을 꽃피운다 김광렬 나를 미워하기 시작하자 네가 끝없이 미워졌다 나를 사랑하기 시작하자 네가 한없이 사랑스러워졌다 너를 미워하기 시작하자 내 마음에 가시가 돋아났다 너를 사랑하기 시작하자 내 마음에 꽃이 피어났다 가시에 찔려 너는 허덕인다 꽃이 너를 아름답게 물들인다 내 마음은 늘 이렇게 끝과 끝을 오고간다 늘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늘 너를 사랑하는 마음을 나는 가질 수 없는 것인가 내가 나를 사랑하자 세상이 세상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 2023년 7월 6일 목요일입니다.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남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조금씩 비우는 삶 _ 이채

조금씩 비우는 삶 이채 손뼉 치며 웃을 일은 없었어도 가슴 쓰릴 눈물이 없었기에 하루의 기쁨이 있습니다 오라는 곳 없어도 마음 갈 곳 있기에 이틀이 외롭지 않습니다 땀으로 채울 노동과 휴식 할 수 있는 보금자리가 있기에 일주일이 행복합니다 잘되는 일은 없었어도 안되는 일도 없었기에 좋은 일은 없었어도 나쁜 일이 없었기에 삶은 보람으로 여물어갑니다 조금씩 마음을 비우면 삶은 행복으로 채워집니다 * 2023년 7월 5일 수요일입니다. 내려놓을 줄 알아야 채워지는 법입니다. 조금씩 비우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시간 좀 꿔줄래요 _ 이미란

시간 좀 꿔줄래요 이미란 시간 좀 꿔 주실래요 오늘은 몹시나 당신과 함께인 시간이 그립고 그립답니다 지금 뭐하세요 혹시, 시간 좀 있으세요 밤 깊도록 안개길 헤쳐 나는 당신 찾아 헤매는데 보고픔으로 그리움으로 평생 갚아 드리리니 저축된 시간 있으시면 제게 조금만 꿔 주실래요 나의 정원에 가득한 꽃향기도 좋지만 오늘은 당신 이야기 꽃 향기가 더욱 그립답니다 손꼽아 그리운 시간 좀 꿔주실래요 * 2023년 7월 4일 화요일입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못 쓰면 항상 시간이 없는 법입니다. 미루지 말고 차근차근 해나가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7월 _ 안재동

7월 안재동 넓은 들판에 태양열보다 더 세차고 뜨거운 농부들의 숨결이 끓는다 농부들의 땀을 먹는 곡식 알알이 야물게 자라 가을걷이 때면 황금빛으로 찰랑거리며 세상의 배를 채울 것이다 그런 기쁨 잉태되는 칠월 우리네 가슴 속 응어리진 미움, 슬픔, 갈등 같은 것일랑 느티나무 가지에 빨래처럼 몽땅 내걸고 얄밉도록 화사하고 싱싱한 배롱나무 꽃향기 연정을 그대에게 바치고 싶다 * 2023년 7월 3일 월요일입니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는 7월입니다. 새로운 한 달도 힘차게 출발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내 몸을 걸어가는 길 _ 유하

내 몸을 걸어가는 길 유하 길은 미래를 향해 뻗어있지만 그 길을 만든 건 추억이었다 길은 속도를 위해 존재해 왔다 하지만 추억의 몸인 그 길은 자꾸 속도의 바깥으로 나를 끄집어내곤 했다 실연의 신발은 속도를 갈망했고 사랑의 신발은 정지를 찬양했다 바뀐 사랑을 이끌고 그 길을 지나갈 때마다 새로운 추억은 그보다 오래된 추억을 지웠고 가까운 미래는 더 먼 미래를 지웠다 하여 미래와 추억은 어느 순간 길 위에서 만났다 난 이미 낡아버린 신발로 미래를 추억하였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그 길은 내 암흑의 내부를 걷기 시작했고 비 내리는 내 기억들의 필름이 몸을 풀어 길의 미래가 되어주었다 * 2023년 6월 30일 금요일입니다. 정답만 제공하는 것보다는 근거와 이유를 설명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한 해의 절반 잘 ..

그저 그렇게 _ 이정하

그저 그렇게 이정하 살아 있는 동안 또 만나게 되겠지요 못 만나는 동안 더러 그립기도 하겠지요 그러다가 또 무덤덤해지기도 하겠지요 살아가는 동안 어찌, 갖고 싶은 것만 갖고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나요 그저 그렇게 그저 그렇게 사는 거지요 마차가 지나간 자국에 빗물이 고이듯 내 삶이 지나온 자국마다 슬픔이 가득 고였네 * 2023년 6월 29일 목요일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보다는 항상 왜 하는 지를 먼저 생각해봐야 합니다. 우선 순위를 확인하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밑줄 _ 신지혜

밑줄 신지혜 바지랑대 높이 굵은 밑줄 한 줄 그렸습니다 얹힌 게 아무것도 없는 밑줄이 제 혼자 춤춥니다 이따금씩 휘휘 구름의 말씀뿐인데, 우르르 천둥 번개 호통뿐인데, 웬걸? 소중한 말씀들은 다 어딜 가고 밑줄만 달랑 남아 본시부터 비어 있는 말씀이 진짜라는 말씀, 조용하고 엄숙한 말씀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인지요 잘 삭힌 고요, 空의 말씀이 형용할 수 없이 깊어, 밑줄 가늘게 한 번 더 파르르 빛납니다 * 2023년 6월 28일 수요일입니다. 오래 된 책 속에서 밑줄을 그은 곳들을 발견합니다. 공감과 감동으로 밑줄을 긋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등 _ 서안나

등 서안나 등이 가려울 때가 있다 시원하게 긁고 싶지만 손이 닿지 않는 곳 그곳은 내 몸에서 가장 반대편에 있는 곳 신은 내 몸에 내가 결코 닿을 수 없는 곳을 만드셨다 삶은 종종 그런 것이다 지척에 두고서도 닿지 못한다 나의 처음과 끝을 한눈으로 보지 못한다 앞모습만 볼 수 있는 두 개의 어두운 눈으로 나의 세상은 재단되었다 손바닥 하나로는 다 쓸어주지 못하는 우주처럼 넓은 내 몸 뒤편엔 입도 없고 팔과 다리도 없는 눈먼 내가 살고 있다 나의 배후에는 나의 정면과 한 번도 마주 보지 못하는 내가 살고 있다 * 2023년 6월 27일 화요일입니다. 무엇이든 해결하려면 먼저 움직여야 합니다. 하기 싫은 것들을 시작하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비 내리는 날 _ 양현근

비 내리는 날 양현근 미운 이름도 고운 이름도 잊어버리는 날 여름산 넉넉히 풀어지는 낮은 목소리의 비가 내리면 나도 비처럼 조용히 가라앉고 싶다 흩어지고 넘어져 어느 한 줌 강어귀 적시는 무심함이고 싶다 울먹임 치렁한 모래톱 뻘내음 흥건히 젖으라, 적시라. * 2023년 6월 26일 월요일입니다. 중요한 것을 전달하고 얻기 위해서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중요합니다. 비효율과 오류를 줄이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