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시 962

휴식 _ 원성스님

휴식 원성스님 모진 하루에 쫓겨 미루어 놓았던 일을 거두고 시간에 얽매여 조급한 삶의 줄다리기를 잠시 늦추고 언어의 전쟁에 시달린 복잡한 머릿속을 비워내고 걱정거리에 지친 번뇌 망상을 던져 버리고 끈질긴 집착에 타 들어가는 내 안의 욕심들을 날려보내고 무거운 옷에 힘들었던 아상(我相)의 에고를 벗어 던지고 기나긴 그리움에 가슴 아팠던 가녀린 감정들을 지워 버리고 저지른 죄에 상처 입은 그늘진 상념을 지워 버리고 저지른 죄에 상처 입은 그늘진 상념을 묻어 버리고 한낮 햇살 아래 휴식. * 2023년 6월 23일 금요일입니다. 나를 중심으로 한 생각은 자칫 아상(아집)으로 나타납니다. 고통의 근본인 아상을 버리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푸른 힘이 은유의 길을 만든다 _ 배한봉

푸른 힘이 은유의 길을 만든다 배한봉 바람이 불고 잎들이 뒤척거린다 그 아래 잎들의 신음이 쌓여 그림자가 얼룩지고 있다 산책나온 아침, 눈이 동그래진다 나뭇잎에 허공 길이 뚫리고 거기 헛발 디딘 햇빛 금싸라기를 쏟아 세상이 다 환해진다 아, 나뭇잎 허공 벌레먹은 이 자리가 우화를 기다리는 은유의 길이라니 허공에 빠진 내 생각을 뜯어 먹으며 또 살찐 벌레 한 마리 지나간다 * 2023년 6월 22일 목요일입니다. 강한 요소가 엑셀 역할을 약한 요소가 브레이크 역할을 합니다. 엑셀과 브레이크를 적절히 사용하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비처럼 오는 당신 _ 김궁원

비처럼 오시는 당신 김궁원 비가 오는 날에는 오시는 당신 이제 빗소리 익숙해질 때도 된 것 같은데 아직도 비가 오면 기다리는 마음은 길에 서 있고 언제나 비가 되어 오시는 당신 때문에 가슴을 적시고도 남는 빗소리는 비에 젖은 마음을 휘젓습니다. 비 오는 거리 종일토록 내리더니 기다리는 마음마저 다 적시려는지 주룩주룩 창 밖에는 당신 같은 비가 내리네. * 2023년 6월 21일 수요일입니다. 비상식이 계속된다고 상식이 되지는 않습니다. 상식적인 말과 행동의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매듭을 푸는 나무 _ 김윤자

매듭을 푸는 나무 김윤자 나무가 손끝이 가늘어진 것은 바람이 묶어 놓은 매듭을 푸느라 닳아진 까닭이다 나무가 등이 시리도록 꼿꼿한 것은 교과서가 얹어준 거름으로 진리를 먹었기 때문이다 나무가 [하늘이 파랗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은 하늘을 가까이서 보았기 때문이다 나무가 밤에도 누워 잘 수 없는 것은 낮에 태양이 쏟아 놓은 사랑을 올올이 엮고 있기 때문이다 나무가 순순히 쓰러져 죽어가는 것은 또 하나의 희망이 발 아래에서 움트기 때문이다 * 2023년 6월 20일 화요일입니다. 진화와 성장을 이끄는 것은 안락함이 아니라 위기감입니다. 안락함을 버리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그 한 마디를 못한다 _ 김철현

그 한 마디를 못한다 김철현 한 마디면 되는 것을 그 한 마디를 못하고 산다 "미안하다." 마음에 담아 두고 병들어하면서도 그 한 마디를 못하고 산다 "보고 싶다." 숱한 말들을 쏟아내며 살지만 정작 그 한 마디를 못하고 산다 "사랑한다." * 2023년 6월 16일 금요일입니다. 한 마디 말로 천 냥 빚도 갚는 법입니다. 곱고 바른 말을 사용하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물방울의 역사 _ 이영옥

물방울의 역사 이영옥 연잎에 떨군 물방울이 맑은 구슬로 또르륵 굴러가는 것은 연잎에 스며들지 않도록 제 몸 고요하게 껴안았기 때문이다 오직 꽃 피울 생각에 골똘한 수련을 건들지 않고 그저 가볍게 스치기만 하려고 자신을 정갈하게 말아 쥔 까닭이다 그러나 물방울의 투명한 잔등 속에는 얼마나 많은 그리움의 포자들이 출렁거렸는지 수 만 갈래로 흩어지려는 물길을 달래며 눈물의 방을 궁굴려 왔는지 깨끗하다는 말 속에 숨은 외로움은 왜 그리 끔찍했는지 물 위에 닿는 순간 물방울은 잠시 흔들렸던 세상을 먼저 버리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부서진다 흔적 하나 남기지 않는 가장 아픈 방법으로 * 2023년 6월 15일 목요일입니다.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는 법입니다. 좋은 결과의 원인을 만드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살아 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_ 오규원

살아 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오규원 살아 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튼튼한 줄기를 얻고 잎은 흔들려서 스스로 살아 있는 몸인 것을 증명한다 바람은 오늘도 분다 수많은 잎은 제각기 몸을 엮는 하루를 가누고 들판의 슬픔 하나 들판의 고독 하나 들판의 고통 하나도 다른 곳에서 바람에 쓸리며 자기를 헤집고 있다 피하지 마라 빈 들에 가서 깨닫는 그것 우리가 늘 흔들리고 있음을 * 2023년 6월 14일 수요일입니다. 흔들리지 않으면 부러질 수 있습니다. 살짝 살짝 흔들려 주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빨랫줄 _ 서정춘

빨랫줄 서정춘 그것은, 하늘 아래 처음 본 문장의 첫 줄 같다 그것은, 하늘 아래 이쪽과 저쪽에서 길게 당겨 주는 힘줄 같은 것 이 한 줄에 걸린 것은 빨래만이 아니다 봄바람이 걸리면 연분홍 치마가 휘날려도 좋고 비가 와서 걸리면 떨어질까 말까 물방울은 즐겁다 그러나, 하늘 아래 이쪽과 저쪽에서 당겨주는 힘 그 첫 줄에 걸린 것은 바람이 옷 벗는 소리 한 줄 뿐이다 * 2023년 6월 13일 화요일입니다. 새로운 것들은 익숙해지기 전까진 불편한 법입니다.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새로움에 도전하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바람의 냄새 _ 이수호

바람의 냄새 이수호 바람의 몸에선 냄새가 나지 예까지 걸어오며 어루만진 것들의 냄새 창밖을 서성이다 들어온 몸에서 물비늘처럼 싱싱한 백합이 떨어지네 머물지 않는다는 듯 나른한 구들장에 꽃잎을 재우고 가볍게 일어서는 바람 꽃잎 대신 어둠이 묻어있네 구들장에 누워있던 곰팡이들의 다소 오래된 슬픔 씻으려는 듯 호수 위를 뒹구는 바람의 몸에선 냄새가 나지 지나온 길들의 이력 같은 * 2023년 6월 12일 월요일입니다. 여름바람의 냄새가 나는 아침입니다. 한 주의 시작 힘차게 출발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