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시 962

배경이 되다 _ 천양희

배경이 되다 천양희 새벽이 언제 올 지 몰라 모든 문 다 열어놓는다고 그가 말했을 때 꿈꿀 수 있다면 아직 살아 있는 것이라고 내가 말했다 나에게만 중요한 게 무슨 의미냐고 내가 말했을 때 어둠을 물리치려고 애쓴다고 그가 말했다 생각의 끝은 늘 단애라고 그가 말했을 때 꽃은 나무의 상부에 피는 것이라고 내가 말했다 세상에 무늬가 없는 돌은 없다고 내가 말했을 때 나이테 없는 나무는 없다고 그가 말했다 바람이 고요하면 물결도 편안하다고 그가 말했을 때 산은 강을 넘지 못한다고 내가 말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때 우리는 서로의 배경이 되었다 * 2023년 5월 23일 화요일입니다. 때로는 배경으로 인해 주인공이 더 돋보이게 됩니다. 멋진 배경의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마음 그 풀밭에 _ 나희덕

마음 그 풀밭에 나희덕 누군가 손대지 않음으로써 일구어 놓았나 스스로 무성해진 풀밭 두려움도 없이 나는 풀을 벤다 낫이 움직이면서 내 속에 자란 풀을 먹어치운다 풀을 베어낸 자리마다 흙이 상처처럼 검붉다, 부질없이 부질없이 옮겨 심을 무엇이 더 남아 있다는 것일까 드러난 흙이 뿌리를 삼키기 위해 입을 벌리듯 나의 탐식은 풀밭 위를 달린다 풀은 왜 늙으면서 질겨지는가 가벼워지는가 두려움도 없이 나는 풀을 벤다 마음, 그 풀밭에 불을 놓는다 풀뿌리는 끝내 타지 않는다. * 2023년 5월 22일 월요일입니다. 중요한 건 꺾였어도 그냥 하는 마음입니다. 가능성을 지속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당신의 향기가 참 좋은 하루 _ 이채

당신의 향기가 참 좋은 하루 이채 숲속의 풀잎이랄까 풀잎의 이슬이랄까 당신의 미소에 스쳐오는 향기 싱그런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해요 나는 샤르르 피어나는 기쁨의 꽃잎 천사의 날개에 실려 왔을까 새들의 노래에 날아 왔을까 당신의 향기와 첫인사를 건네면 꽃내음 그윽한 화창한 뜰이 열려요 나는 나폴나폴 춤추는 행복의 나비 당신의 향기로 오늘은 한송이 백합꽃을 피우겠어요 꽃잎마다 수를 놓고 물감을 들이겠어요 하얗게, 눈부시게 하얗게 나는 파르르 떨리는 사랑의 숨결 햇살 고운 창가에 한아름 꽃마음이 아름다워요 * 2023년 5월 19일 금요일입니다. 훌륭한 원칙을 가졌다면 성공적인 삶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신만의 훌륭한 원칙을 만드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살아 있는 날은 _ 이해인

살아 있는 날은 이해인 마른 향내 나는 갈색 연필을 깎아 글을 쓰겠습니다. 사각사각 소리 나는 연하고 부드러운 연필 글씨를 몇 번이고 지우며 다시 쓰는 나의 하루 예리한 칼끝으로 몸을 깎이어도 단정하고 꼿꼿한 한 자루의 연필처럼 정직하게 살고 싶습니다. 나는 당신의 살아 있는 연필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말로 당신이 원하시는 글을 쓰겠습니다 정결한 몸짓으로 일어나는 향내처럼 당신을 위하여 소멸하겠습니다. * 2023년 5월 18일 목요일입니다. 연필을 깎다 보면 나는 특유의 향이 좋습니다. 오랜만에 연필을 사용해봐야겠습니다. 홍승환 드림

아침 _ 강은교

아침 강은교 이제 내려놓아라 어둠은 어둠과 놀게 하여라 한 물결이 또 한 물결을 내려놓듯이 또 한 슬픔을 내려놓듯이 그대는 추억의 낡은 집 흩어지는 눈썹들 지평선에는 가득하구나 어느 날의 내 젊은 눈썹도 흩어지는구나 그대, 지금 들고 있는 것 너무 많으니 길이 길 위에 얹혀 자꾸 펄럭이니 내려놓고, 그대여 텅 비어라 길이 길과 껴안게 하여라 저 꽃망울 드디어 꽃으로 피었다 * 2023년 5월 16일 화요일입니다. 매일 아침은 누구에게나 신선함을 선물합니다. 낮기온이 많이 오른다고 하니 건강 챙기시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법칙 _ 류근

법칙 류근 물방울 하나가 죽어서 허공에 흩어진다 물방울 하나가 죽어서 구름에 매달린다 물방울 하나가 죽어서 빗방울 하나로 몸을 바꾼다 빗방울 하나가 살아서 허공에 흩어진다 빗방울 하나가 살아서 잎사귀에 매달린다 빗방울 하나가 살아서 물방울 하나로 몸을 바꾼다 모였다 흩어지고 흩어졌다 모인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한 몸 우주 안에서 도망갈 데가 없다 * 2023년 5월 15일 월요일 스승의 날입니다. 삼인행필유아사,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스승으로 받들 만한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스승님들께 고마움을 전하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산에게 나무에게 _ 김남조

산에게 나무에게 김남조 산은 내게 올 수 없어 내가 산을 찾아 갔네 나무도 내게 올 수 없어 내가 나무 곁에 섰었네 산과 나무들과 내가 친해진 이야기 산은 거기에 두고 내가 산을 내려 왔네 내가 나무를 떠나 왔네 그들은 주인 자리에 나는 바람 같은 몸 산과 나무들과 내가 이별한 이야기 * 2023년 5월 12일 금요일입니다.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먼저 다가서는 게 중요합니다. 한 주 마무리 잘 하시고 편안한 주말 되세요. 홍승환 드림

서로가 길이 되어 가는 것 _ 박노해

서로가 길이 되어 가는 것 박노해 올곧게 뻗은 나무들보다는 휘어 자란 소나무가 더 멋있습니다. 똑바로 흘러가는 물줄기보다는 휘청 굽이친 강줄기가 더 정답습니다. 일직선으로 뚫린 바른 길보다는 산따라 물따라 가는 길이 더 아름답습니다. 곧은 길 끊어져 없다고 주저앉지 마십시오. 돌아서지 마십시오. 삶은 가는 것입니다. 그래도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건 아직도 가야 할 길이 있다는 것. 곧은 길만이 길이 아닙니다. 빛나는 길만이 길이 아닙니다. 굽이 돌아가는 길이 멀고 쓰라릴지라도, 그래서 더 깊어지면 환해져 오는 길 서둘지 말고 가는 것입니다. 서로가 길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생을 두고 끝까지 가는 것입니다. * 2023년 5월 11일 목요일입니다. 가다가 가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하기..

5월의 햇살 속으로 가자 _ 이병춘

5월의 햇살 속으로 가자 이병춘 한줄기 바람 외롭게 서는 날이면 5월의 햇살 속으로 가자 묵혀둔 보리밭길 잿빛하늘 밟고서서 혼자만의 길이라도 주저 없이 가자 그리움이 풀꽃 되어 사랑노래 부를 때면 혓바늘이 돋아나도 내가 선택한 그 길을 가자 두 사람 이름으로 산사에 불 밝히고 백여덟개 돌계단을 혼자 내려오는 일이 있더라도 눈물 나도록 님 그리운 날에는 5월의 햇살 속으로 가자 * 2023년 5월 10일 수요일입니다. 할 수 없는 것들은 과감히 포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간 낭비 하지 않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