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시 963

어린 왕자를 위하여 _ 이해인

어린 왕자를 위하여 이해인 잠시 다니러 온 지구 여행을 마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멋있게 작별할 줄 알았던 어린 왕자의 그 순결한 영혼과 책임성 있는 결단력을 사랑합니다 사라져도 슬프지 않은 별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오늘 이 순간을 놓치지 말고 사랑으로 길들이며 사랑 속에 살아야겠지요 * 2022년 9월 6일 화요일입니다. 잠시 다니러 온 지구 여행이 어느 지점인가요? 순간을 놓치지 않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그네 같은 삶이야 _ 최옥

그네 같은 삶이야 최옥 누가 앉았다 갔을까요 빈 그네가 흔들립니다 저 그네의 흔들림이 우리 삶의 흔적 같아서 잠시 바라봅니다 내 안에도 수시로 흔들리는 그네 하나 있지요 그대 앉았다 가는 자리 내 마음 흔들며 거듭 돌아보던 자리 그네 위에 앉아 봅니다 이 흔들림이 없다면 삶은 얼마나 공허할까요 빈 그네를 힘껏 밀었다 놓으면 크게 흔들리다 점점 수평이 되는, 그러나 스쳐가는 것들에 의해 또다시 흔들리는 그것이 삶인가 봅니다 * 2022년 9월 5일 월요일입니다. 역대급 태풍 힌남노가 한반도를 향하고 있습니다. 부디 큰 피해 없이 지나가길 기원합니다. 홍승환 드림

맑고 푸른 하늘에게 _ 정유찬

맑고 푸른 하늘에게 정유찬 수없이 스쳐간 순간들, 따지고 보면, 가장 최후의 결정은 스스로 한 것 뿐이지. 나는 단지 내 운명을 선택했고 받아들였을 뿐, 원망도 후회도 아쉬움도 없이 그 길을 걸어가야지. 지나온 길보다 갈 길이 설레기에, 후회할 시간 없이 잠시 돌아만 본다. 돌아보며, 앞으로 갈 길을 다듬어 가리라. 맑고 푸른 하늘에게 말했다. 나도 너만큼 앙금을 남겨두지 않고 살아갈 거라고 * 2022년 9월 2일 금요일입니다. 행복의 반대말은 불행이 아니라 불만이라고 합니다. 발상의 전환을 이루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9월 첫날의 시 _ 정연복

9월 첫날의 시 정연복 어제까지 일렁이는 초록 물결인 줄만 알았는데 오늘은 누런 잎들이 간간히 눈에 띈다. 쉼 없이 흐르는 세월의 강물 따라 늘 그렇듯 단 하루가 지나갔을 뿐인데. 하룻밤 새 성큼 가을을 데리고 온 9월의 신비한 힘이 문득 느껴진다. * 2022년 9월 1일 목요일입니다. 다시 새로운 달력 한 장을 넘겼습니다. 가을의 시작 9월에도 행복한 하루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_ 류시화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류시화 시를 쓴다는 것이 더구나 나를 뒤돌아본다는 것이 싫었다, 언제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나였다. 다시는 세월에 대해 말하지 말자. 내 가슴에 피를 묻히고 날아간 새에 대해 나는 꿈꾸어선 안 될 것들을 꿈꾸고 있었다. 죽을 때까지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것이 나는 두려웠다. 다시는 묻지 말자. 내 마음을 지나 손짓하며 사라진 그것들을 저 세월들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는 법이 없다. 고개를 꺾고 뒤돌아보는 새는 이미 죽은 새다. * 2022년 8월 31일 수요일입니다. 뒤돌아본다는 건 가끔 자기합리화에 지나지 않습니다. 앞을 보고 정진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향기 _ 박창기

향기 박창기 꽃들은 저마다 향기를 지녔으나 제 스스로 퍼뜨리지 못한다 바람이 없었어봐라 어떻게 벌 나비가 모였겠는가 자연의 이치는 이리도 묘하게 세상을 유쾌하게 하지 않는가 그는 향기를 지니지 않았다 향기 나는 일을 일부러 하지도 않았다 세상 사람들은 그러나 그렇게 보지 않았다 그의 모습에서 향기를 찾아내어 입에서 입으로 멀리까지 향기로운 향기로 퍼뜨려 놓았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향기로 우뚝 세워 놓았다 밥이 없어 그렇게 산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삶의 가치를 깨달았음에 틀림없다 가치를 모르는 허재비가 판치는 세상에서 미친 짓 하다 향기에 미쳐 향기롭게 된 그는 나를 버리고 너를 생각하며 세속을 잊고 살 뿐이다 * 2022년 8월 30일 화요일입니다. 향기로운 마음을 가진 사람은 언행이 아름답습니다. 향..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_ 칼릴 지브란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칼릴 지브란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그보다 너희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 두라. 서로의 잔을 채워 주되 한쪽의 잔만을 마시지 말라. 서로의 빵을 주되 한쪽의 빵만을 먹지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서로는 혼자 있게 하라. 마치 현악기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줄은 서로 혼자이듯이. 서로 가슴을 주라. 그러나 서로의 가슴속에 묶어 두지는 말라. 오직 큰 생명의 손길만이 너희의 가슴을 간직할 수 있다.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날마다 좋은 날 _ 윤동재

날마다 좋은 날 윤동재 일요일마다 도봉산역에서 내려 도봉산으로 올라가기 위해 길을 건너면 노인 한 분이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습니다. 아들과 며느리가 조그마한 공장에 나가 열심히 벌고 있지만 신세지기 싫어서 여기 나와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다고 합니다. 하루 만 원만 벌면 된다고 합니다. 만 원만 벌면 할망구하고 국수도 사 먹고 담배도 한 갑 사고 어쩌다가 손주놈 공책과 연필도 사다 준다고 합니다. 하루 만 원만 벌면 날마다 좋은 날이라고 합니다. 날마다 좋은 날이라고 합니다. * 2022년 8월 26일 금요일입니다. 마음가짐에 따라 같은 상황도 다르게 느끼는 법입니다. 여유와 너그러움으로 좋은 날 만드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치명적인 바람 _ 이희중

치명적인 바람 이희중 살갗에 닿아 아찔한 순간이 있지, 어떤 바람 그 바람을 말로 옮길 수 있을까 이를테면 초가을 늦은 하오 숲으로 걸어갈 때 내 곁에 아무도 없을 때 슬쩍 옆 이마 또는 어깨죽지를 건드리고 가는 속눈썹을 미세하게 흔드는, 서늘하고 아득한, 흐르는 무엇을 몸으로 겪는, 두렵고도 매혹적인 어느 곳 어느 때로 나를 실어가려는 듯한 전생 어느 때 겪은 치명적 느낌 아니면 태어나 처음 숨쉬던 느낌일까 기억해낼 수는 없지만 내 생이 전체를 뒤흔드는, 아니면 뒤흔들 듯한 언젠가 꼭 뒤흔들었던 것 같은 기다린다고 곧 오지 않는 그런 바람이 불면 * 2022년 8월 25일 목요일입니다. 아침 바람이 확연히 시원해졌습니다. 치명적인 바람을 느껴보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바람의 두께 _ 안도현

바람의 두께 안도현 씨근덕씨근덕 그렇게도 몇날을 울던 제 울음소리를 잘게 썰어 햇볕에다 마구 버무리던 매미가 울음을 뚝 그쳤습니다. 때맞춰 배롱나무는 달고 있던 귀고리들을 모두 떼어냈습니다. 울음도 꽃도 처연한 무늬만 남았습니다. 바람의 두께가 얇아졌습니다. * 2022년 8월 22일 월요일입니다. 하나를 버리면 두 개가 오기도 합니다. 선택과 집중을 실천하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