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시 963

짠 맛을 잃은 바닷물처럼 _ 류시화

짠 맛을 잃은 바닷물처럼 류시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 걸까 마치 사탕 하나에 울음을 그치는 어린아이처럼 눈 앞의 것을 껴안고 나는 살았다 삶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태어나 그것이 꿈인 줄 꿈에도 알지 못하고 무모하게 사랑을 하고 또 헤어졌다 그러다가 나는 집을 떠나 방랑자가 되었다 사람들은 내 앞에서 고개를 돌리고 등 뒤에 서면 다시 한번 쳐다본다 책들은 죽은 것에 불과하고 내가 입은 옷은 색깔도 없는 옷이라서 비를 맞아도 더 이상 물이 빠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 걸까 무엇이 참 기쁘고 무엇이 참 슬픈가 나는 짠 맛을 잃은 바닷물처럼 생의 집착도 초월도 잊었다 * 2021년 11월 18일 목요일입니다. 본질을 잃게 되면 정체성이 없어집니다. 잊었던 것들을 생각해..

지금은 우리가 _ 박준

지금은 우리가 박준 그때 우리는 자정이 지나서야 좁은 마당을 별들에게 비켜주었다 새벽의 하늘에는 다음 계절의 별들이 지나간다 별 밝은 날 너에게 건네던 말보다 별이 지는 날 나에게 빌어야 하는 말들이 더 오래 빛난다 * 2021년 11월 17일 수요일입니다. 말은 쉽게 나와버리지만 주워 담을 수 없습니다. 많이 듣고, 많이 생각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내 몸 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_ 김선우

내 몸 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김선우 그대가 밀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꽃벌 한 마리 날아든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그대가 꽃 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 * 2021년 11월 16일 화요일입니다. 이해하는 것보단 체득하는 게 오래가는 법입니다. 부딪혀보고 체험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가을 산은 자유롭다 _ 유한나

가을 산은 자유롭다 유한나 가을 산이 자유로운 것은 모두들 욕심을 버리기 때문이다 무수히 붙어서 푸름으로 치닫던 잎새들의 갈망이 끝났기 때문이다 가을 산이 자유로운 것은 모두들 집착을 버리기 때문이다 잎새들을 붙잡고 무성했던 나무도 움켰던 손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가을 산이 자유로운 것은 모두들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산을 소유하고 있던 여름이 여름을 울던 풀벌레들이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가을 산이 자유로운 것은 자라나야 한다든가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굴레에서 벗어나 비로소 묵직한 산이 되었기 때문이다. * 2021년 11월 15일 월요일입니다.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기는 어렵습니다. 남을 변화시키려면 자신이 먼저 바뀌어야 하는 법입니다. 한 주 힘차게 출발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너무 괜찮다 _ 박세현

너무 괜찮다 박세현 너무 괜찮다 자고 일어나면 다 괜찮다 어젯밤 불던 바람소리도 바람을 긋고 간 빗소리도 괜찮다 보통 이상인 감정도 보통에 미달한 기분도 괜찮다 자고 일어나면 정말 괜찮다 웃어도 괜찮고 울어도 괜찮다 웃지 않아도 괜찮고 울지 않아도 괜찮다 유리창에 몸을 밀어 넣은 빗방울이 벗은 소리만으로 내게 오던 그 시간 반쯤 비운 컵라면을 밀어놓고 빗소리와 울컥 눈인사를 나누어도 괜찮다 너무 괜찮다 * 2021년 11월 12일 금요일입니다. 마음먹기따라 모두 괜찮아질 수 있는 법입니다. 괜찮은 한 주로 마무리 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가을서한 _ 나태주

가을서한 나태주 1 당신도 쉽사리 건져주지 못할 슬픔이라면 해질녘 바닷가에 나와 서 있겠습니다. 금방 등 돌리며 이별하는 햇볕들을 만나기 위하여 그 햇볕들과 두 번째의 이별을 갖기 위하여 2 눈 한 번 감았다 뜰 때마다 한 겹씩 옷을 벗고 나서는 구름, 멀리 웃고만 계신 당신 옆모습이랄까? 손 안 닿을 만큼 멀리 빛나는 슬픔의 높이 3 아무의 뜨락에도 들어서보지 못하고 아무의 들판에서 쉬지도 못하고 기웃기웃 여기 다다랐습니다. 고개 들어 우러르면 하늘, 당신의 이마 4 호오, 유리창 위에 입김 모으고 그 사람 이름 썼다 이내 지우는 황홀하고도 슬픈 어리석음이여, 혹시 누구 알 이 있을까 몰라 * 2021년 11월 11일 목요일입니다. 비판은 귀에는 거슬리지만 자신의 부족한 점을 깨닫게 하고, 단점을 고쳐..

절정은 짧았지만 _ 박노해

절정은 짧았지만 박노해 단풍의 절정은 짧았지만 그가 걸어온 길은 얼마나 먼 길이었나 내 붉은 사랑은 짧았지만 너무 짧았기에 얼마나 오래가는 것인가 꽃은 짧고 단풍은 짧고 사랑도 젊음도 혁명도 짧고 짧은 절정이어서 여운은 얼마나 길고 깊은 것인가 얼마나 높고 깊이 살아오는 것인가 * 2021년 11월 9일 화요일입니다. 가을비와 함께 아침공기가 겨울로 가고 있습니다. 건강 챙기시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가을비 _ 도종환

가을비 도종환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동안 함께 서서 바라보던 숲에 잎들이 지고 있습니다. 어제 우리 사랑하고 오늘 낙엽 지는 자리에 남아 그리워하다 내일 이 자리를 뜨고 나면 바람만이 불겠지요 바람이 부는 동안 또 많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헤어져 그리워하며 한 세상을 살다가 가겠지요. * 2021년 11월 8일 월요일입니다. 가을비와 함께 단풍잎들이 떨어지는 아침이네요. 비가 그치면 초겨울 날씨가 온다고 하니 건강에 주의하세요. 홍승환 드림

사랑해야 하는 이유 _ 문정희

사랑해야 하는 이유 문정희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세상의 강물을 나눠 마시고 세상의 채소를 나누어 먹고 똑같은 해와 달 아래 똑같은 주름을 만들고 산다는 것이라네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세상의 강가에서 똑같이 시간의 돌멩이를 던지면 운다는 것이라네 바람에 나뒹굴다가 서로 누군지도 모르는 나뭇잎이나 쇠똥구리 같은 것으로 똑같이 흩어지는 것이라네 * 2021년 11월 5일 금요일입니다. 이해하기 어려울 때는 조금 더 노력을 해야합니다. 한 주 마무리 잘 하시고 편안한 주말 되세요. 홍승환 드림

가을편지 _ 최영우

가을편지 최영우 내가 가을을 못 잊는 것은 단풍보다 진한 그리움 남아있기 때문이야 갈대가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 것은 그 언덕에서 누구를 기다리고 있음이야 까닭없이 허전함은 눈물같이 떨어지는 낙엽 때문일거야 이런 날 엽서 한 장 받아 봤으면 책갈피에 곱게 접어놓았던 추억이 접힌 편지 장문이 아니어도 괜찮을 거야 단 몇 글자 사랑이 남아 있다고 * 2021년 11월 4일 목요일입니다. 오랜만에 붉은 단풍잎을 책갈피로 사용해 봐야겠습니다. 행복한 가을날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