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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기도 _ 이문재

아침의 시 한 편_좋은글, 일기

by 시 쓰는 마케터 2024. 4. 12.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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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기도

 

                         이문재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그렇게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이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놓기만 해도

솔숲을 지나는 바람소리에 귀기울기기만 해도

갓난아이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 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만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와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 2024년 4월 12일 금요일입니다.

소나기는 잠시 피하고 보는 것이 상책입니다.

한 주 마무리 잘 하시고 편안한 주말 되세요.

 

홍승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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