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시 한 편_좋은글, 일기

농무 _ 신경림

시 쓰는 마케터 2024. 5. 23. 08:22

 

 

 

농무

 

                       신경림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무대

구경꾼들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것은 쪼무래기들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 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꺼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꺼나

 

 

* 2024년 5월 23일 목요일입니다.

민중시의 물꼬를 튼 신경림 시인이 별세하셨습니다.

아직도 고달프기만 한 게 민중의 삶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홍승환 드림 

'아침의 시 한 편_좋은글,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살나무 _ 박남준  (45) 2024.05.27
햇빛 일기1 _ 이해인  (37) 2024.05.24
물음표가 걷고 있다 _ 정용화  (39) 2024.05.22
미스터리 _ 김상미  (39) 2024.05.21
사랑은 그렇게 오더이다 _ 배연일  (40) 2024.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