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 234

겨울사랑 _ 문정희

겨울사랑 문정희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 숨기지 말고 그냥 네 하얀 생애 속에 뛰어들어 따스한 겨울이 되고 싶다 천 년 백설이 되고 싶다 * 2021년 12월 22일 절기상 동지입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무에게나 맡기면 됩니다.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할 줄 알아야 실력이 쌓입니다. 경쟁력을 키우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12월의 노래 _ 이해인

12월의 노래 이해인 하얀 배추 속같이 깨끗한 내음의 12월에 우리는 월동 준비를 해요 단 한마디의 진실을 말하기 위하여 헛말을 많이 했던 빈말을 많이 했던 우리의 지난날을 잊어버려요 때로는 마늘이 되고 때로는 파가 되고 때로는 생강이 되는 사랑의 양념 부서지지 않고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음을 다시 기억해요 함께 있을 날도 얼마 남지 않은 우리들의 시간 땅 속에 묻힌 김장독처럼 자신을 통째로 묻고 서서 하늘을 보아야 해요 얼마쯤의 고독한 거리는 항상 지켜야 해요 한겨울 추위 속에 제 맛이 드는 김치처럼 우리의 사랑도 제 맛이 들게 참고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해요. * 2021년 12월 16일 목요일입니다. 참고 기다릴 줄 알아야 완성이 되는 법입니다. 숙성의 시간을 갖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속도 _ 이원규

속도 이원규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는 인간들의 동화책에서만 나온다 만일 그들이 바다에서 경주를 한다면? 미안하지만 이마저 인간의 생각일 뿐 그들은 서로 마주친 적도 없다 비닐하우스 출신의 딸기를 먹으며 생각한다 왜 백 미터를 늦게 달리기는 없을까 만약 느티나무가 출전한다면 출발선에 슬슬 뿌리를 내리고 서 있다가 한 오백 년 뒤 저의 푸른 그림자로 아예 골인 지점을 지워버릴 것이다 마침내 비닐하우스 속에 온 지구를 구겨 넣고 계시는, 스스로 속성재배 되는지도 모르시는 인간은 그리하여 살아도 백 년을 넘지 못한다 * 2021년 12월 9일 목요일입니다. 조급해 할수록 빠뜨리는 것이 많은 법입니다. 숨 고르기와 느긋함을 갖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내가 좋아하는 것들 _ 박노해

내가 좋아하는 것들 박노해 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래서 혼자 있기를 좋아한다 나는 말하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깊은 침묵을 좋아한다 나는 빛나는 승리를 좋아한다 그래서 의미 있는 실패를 좋아한다 나는 새로운 유행을 좋아한다 그래서 고전과 빈티지를 좋아한다 나는 도시의 세련미를 좋아한다 그래서 광야와 사막을 좋아한다 나는 소소한 일상을 좋아한다 그래서 거대한 악과 싸워간다 나는 밝은 햇살을 좋아한다 그래서 어둠에 잠긴 사유를 좋아한다 나는 혁명, 혁명을 좋아한다 그래서 성찰과 성실을 좋아한다 나는 용기 있게 나서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떨림과 삼가함을 좋아한다 나는 나 자신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를 바쳐 너를 사랑하기를 좋아한다 * 2021년 123월 7일 화요일입니다. 가끔은 자신을 백지상태로 만들 수 있어야..

유리창1 _ 정지용

유리창1 정지용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린거린다 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다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디치고,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백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흔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새처럼 날러갔구나! * 2021년 12월 6일 월요일입니다. 모르는 게 아니라 잊고 있었던 것일 수 있습니다. 찬찬히 기억을 되새기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_ 정희성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정희성 어느날 당신과 내가 날과 씨로 만나서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우리들의 꿈이 만나 한 폭의 비단이 된다면 나는 기다리리 추운 길목에서 오랜 침묵과 외로움 끝에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 볼 때 어느 겨울인들 우리들의 사랑을 춥게하리 외롭고 긴 기다림 끝에 어느날 당신과 내가 만나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 2021년 11월 25일 목요일입니다. 조급해 할수록 빈 틈이 많이 발생하는 법입니다. 천천히 여유를 갖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11월 마음의 기척 _ 박노해

11월 마음의 기척 박노해 흙 마당 잡초를 뽑듯 말을 솎는다 가을 마당 낙엽을 쓸듯 상념을 쓴다 마당가 꽃을 가꾸듯 고독을 가꾼다 흰 서리 아침 마당에 시린 국화 향기 첫눈이 오려나 그대가 오려나 11월 마음의 기척 * 2021년 11월 23일 화요일입니다. 어떤 일이던 사전에 보여지는 기척이 있기 마련입니다. 미리 미리 준비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산다는 것 _ 배현순

산다는 것 배현순 산다는 것이 무언지 아세요 새처럼 가벼워지는 일 나무처럼 뿌리를 깊이 내리는 일 바다처럼 깊고 푸르르는 일 바람처럼 춤추는 일 꽃잎처럼 감싸안는 일 들풀처럼 다시 일어나는 일 햇살처럼 반짝이는 일이지요 때론 비처럼 울어도 볼 일 가랑비에 젖어도 볼 일 안개에 묻혀 숨어도 볼 일 이슬처럼 또르르 굴러도 볼 일이지요 벼랑끝에 핀 선홍빛 진달래 아스라이 피었다 지는 일 열두 폭 치맛자락에 엎어져 울다 울다 지쳐 꿈꾸어 보는 일이지요 * 2021년 11월 22일 월요일입니다. 생각을 조심해야 합니다. 생각은 말이 되고 행동이 되기 때문이죠. 좋은 생각으로 시작하는 한 주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가을 산은 자유롭다 _ 유한나

가을 산은 자유롭다 유한나 가을 산이 자유로운 것은 모두들 욕심을 버리기 때문이다 무수히 붙어서 푸름으로 치닫던 잎새들의 갈망이 끝났기 때문이다 가을 산이 자유로운 것은 모두들 집착을 버리기 때문이다 잎새들을 붙잡고 무성했던 나무도 움켰던 손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가을 산이 자유로운 것은 모두들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산을 소유하고 있던 여름이 여름을 울던 풀벌레들이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가을 산이 자유로운 것은 자라나야 한다든가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굴레에서 벗어나 비로소 묵직한 산이 되었기 때문이다. * 2021년 11월 15일 월요일입니다.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기는 어렵습니다. 남을 변화시키려면 자신이 먼저 바뀌어야 하는 법입니다. 한 주 힘차게 출발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가을서한 _ 나태주

가을서한 나태주 1 당신도 쉽사리 건져주지 못할 슬픔이라면 해질녘 바닷가에 나와 서 있겠습니다. 금방 등 돌리며 이별하는 햇볕들을 만나기 위하여 그 햇볕들과 두 번째의 이별을 갖기 위하여 2 눈 한 번 감았다 뜰 때마다 한 겹씩 옷을 벗고 나서는 구름, 멀리 웃고만 계신 당신 옆모습이랄까? 손 안 닿을 만큼 멀리 빛나는 슬픔의 높이 3 아무의 뜨락에도 들어서보지 못하고 아무의 들판에서 쉬지도 못하고 기웃기웃 여기 다다랐습니다. 고개 들어 우러르면 하늘, 당신의 이마 4 호오, 유리창 위에 입김 모으고 그 사람 이름 썼다 이내 지우는 황홀하고도 슬픈 어리석음이여, 혹시 누구 알 이 있을까 몰라 * 2021년 11월 11일 목요일입니다. 비판은 귀에는 거슬리지만 자신의 부족한 점을 깨닫게 하고, 단점을 고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