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수 없다 류시화 물 속을 들여다보면 물은 내게 무가 되라 한다 허공을 올려다보면 허공은 또 내게 무심이 되라 한다 허공을 나는 새는 그저 자취없음이 되라 한다 그러나 나는 무가 될 수 없다 무심이 될 수 없다 어느 곳을 가나 내 흔적은 남고 그는 내게 피 없는 심장이 되라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그는 도둑처럼 밤중에 이슬을 밟고 와서 나더러 옷을 벗으라 하고 내 머리를 바치라 한다 나더러 나를 버리라 한다 그러나 나는 그럴 수 없다 그는 내게 물이 되라 하나 나는 불로서 타오르려 한다 그는 내게 미소가 되라 하지만 그러나 아직 내 안에 큰 울음이 넘쳐난다 그는 내게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라 하나 나는 그럴 수 없다 한다 * 2021년 12월 29일 수요일입니다. 머리로는 이해를 하지만 몸과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