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시 76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_ 김영랑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김영랑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 길 위에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시의 가슴에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 2024년 5월 2일 목요일입니다.아무런 일도 하지 않으면 어떤 변화도 없습니다.새로운 한 달 힘차게 출발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꽃은 짧아서 _ 박노해

꽃은 짧아서                             박노해  봄날 아침이면마음이 설렌다 마을 산길에 첫 진달래가 피고첫 산매화가 피고 첫 생강나무꽃이 피고첫 히어리꽃이 피고 첫 산벚꽃이 날리고 꽃은 짧은 것!반복되는 일에 매달려첫 꽃 피는 날들을 놓친다는 건바보 같은 짓이다 생은 짧은 것!남들의 인정에 매달려꽃피는 날을 허비하는 건정말 슬픈 일이다 그래서 오늘 아침 말해버렸다꽃은 짧아서, 생은 짧아서,너를 많이 좋아한다고  * 2024년 4월 30일 화요일입니다.채우려는 생각을 버리면 허전함이 사라집니다.버리고 비우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봄 _ 김필연

봄 김필연 봄은 그 이름만으로도 달뜬다 예서 제서 쭈뼛거리는 것들 쭈뼛거리다 돌아보면 터지고 터지다 못해 무덤덤한 심장까지 쫓아와 흔들어대는 연초록 생명에 오색 꽃들에..., 하늘마저 파래 주면 꽃잎 날리듯 심장도 풋가슴으로 춤을 춘다 애먼 것 둘러대어도 이유가 되고 용서가 될 것만 같은 봄, 봄. * 2024년 4월 18일 목요일입니다. 멈추지 않는 이상 얼마나 천천히 가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속도를 조절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모든 꽃은 흔들리며 뿌리로 간다 _ 강미정

모든 꽃은 흔들리며 뿌리로 간다 강미정 봄비를 받아내고 있는 작은 제비꽃의 흔들림은 꽃을 들여다보기 위해 쪼그리고 앉던 당신의 등처럼 외롭고 넓다는 것, 그러므로 꽃피어 혼들리는 세상 모든 꽃은 흔들리지 않으려고 땅을 움켜쥔 고단한 뿌리의 일그러진 얼굴이라는 것, 그러나 흔들림이여, 제 필생이 가진 파란만장의 중심을 꿰뚫고 흔들어야 흔들림이라 이름 붙일 수 있지 않겠는가 작은 제비꽃 한 포기가 필생을 흔들어 세상의 침묵 위에 얹어놓는 저 파열하는 자주빛 몸부림도 고단한 뿌리가 가졌던 일그러진 얼굴이었음을 뿌리가 더듬고 나간 그 처음의 길에서 모든 흔들림은 오직 제가 가진 경계의 폭으로 흔들린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다시 제 필생을 흔들어 깨운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흔들리는 모든 꽃은 뿌리에게로 간다 맨 처음에..

냉이꽃 한 송이도 제 속에서 거듭납니다 _ 도종환

냉이꽃 한 송이도 제 속에서 거듭납니다 도종환 냉이꽃 한 송이도 제 속에서 거듭납니다 제 속에서 거듭난 것들이 모여 논둑 밭둑 비로소 따뜻하게 합니다 참나무 어린 잎 하나도 제 속에서 거듭납니다 제 속에서 저를 이기고 거듭난 것들이 모여 차령산맥 밑에서 끝까지 봄이게 합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 속에서 거듭납니다 저 자신을 죽이고 다시 태어난 사람들 모여 이 세상을 아직 희망이게 합니다 * 2024년 4월 8일 월요일입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고 꽃은 피기 마련입니다. 4월 10일 어마어마한 숫자를 기대해 봅니다. 홍승환 드림

4월 비빔밥 _ 박남수

4월 비빔밥 박남수 햇살 한 줌 주세요 새순도 몇 잎 넣어주세요 바람 잔잔한 오후 한 큰 술에 산목련 향은 두 방울만 새들의 합창을 실은 아기병아리 걸음은 열 걸음이 좋겠어요 수줍은 아랫마을 순이 생각을 듬뿍 넣을래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마음을 고명으로 얹어주세요 * 2024년 4월 4일 목요일입니다. 이제 정말 겨울옷들을 정리할 때가 온 듯 합니다. 봄을 흠뻑 맞이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그대 앞에 봄이 있다 _ 김종해

그대 앞에 봄이 있다 김종해 우리 살아가는 일 속에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이 어디 한두 번이랴. 그런 날은 조용히 닻을 내리고 오늘 일을 잠시라도 낮은 곳에 묻어 두어야 한다. 우리 사랑하는 일 또한 그 같아서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은 높은 파도를 타지 않고 낮게 낮게 밀물져야 한다. 사랑하는 이여 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 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 2024년 3월 20일 수요일입니다.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길 수 없는 법입니다. 봄과 함께 기쁜 소식들이 찾아오길 기원합니다. 홍승환 드림

봄은 잘 알고 있다 _ 임영준

봄은 잘 알고 있다 임영준 파릇한 그 손길은 누구에게 닿을까 어사무사 넘어가는 너희는 아니야 꽃가루가 날아가 어디 앉을까 겉과 속이 다른 그곳은 아닐 거야 혈맥을 타고 부단히 흐르다가 겨우내 잘 감내한 곳을 찾아가 활짝 희망이 되는 거야 * 2024년 3월 15일 금요일입니다. 출발하기 위해 위대해질 필요는 없지만 위대해지려면 출발부터 해야 하는 법입니다. 수고롭게 움직이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모자를 눌러 쓴 시간이 대문 밖으로 걸어나간다 _ 권천학

모자를 눌러 쓴 시간이 대문 밖으로 걸어나간다 권천학 봄이면 모자를 깊이 눌러 쓴 시간이 대문 밖으로 걸어나간다. 나뭇가지에도 걸터앉고 풀잎더미 위에도 주저앉는다 속눈썹에 엉겨 붙은 해의 살들이 오랜만의 외출을 눈부시게 한다. 웅덩이에 고여있는 한 떼의 시간들이 태엽을 탱탱하게 조여 감아서 쏘아대는 빛화살 그늘 속을 관통할 때마다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시간들이 푸득거렸고 주저않아 있던 풀잎들도 일어나 째깍초깍째깍초깍째깍초깍째깍초깍째깍초깍...... 싹트는 소리로 초침을 닦기 시작한다. 모자를 벗어들고 돌아온 외출이 불면의 의자에 앉아 훔쳐온 황금 잔에 시간의 즙을 따라 마시는 봄 그리고 밤. * 2024년 3월 12일 화요일입니다. 모든 문제와 해답은 자신 안에 있는 법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하루 되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