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좋아하는시 52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내린다 나타샤를 사랑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은앙응앙 울을 것이다 * 2021년 1월 7일 목요일입니다. 어제 저녁 내린 눈으로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버렸네요. 체감온도 영하 2..

평행선 _ 김남조

평행선 김남조 우리는 서로 만나본 적도 없지만 헤어져 본 적도 없습니다. 무슨 인연으로 태어났기에 어쩔 수 없는 거리를 두고 가야만 합니까 가까와지면 가까와질까 두려워하고 멀어지면 멀어질까 두려워하고 나는 그를 부르며 그는 나를 부르며 스스로를 져버리며 가야만 합니까 우리는 아직 하나가 되어본 적도 없지만은 둘이 되어본 적도 없습니다 * 2020년 12월 30일 수요일입니다. 매서운 추위를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아침입니다. 건강 챙기시고 차분히 한 해를 정리하는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남(南)으로 창(窓)을 내겠소

남(南)으로 창(窓)을 내겠소 김상용 남(南)으로 창(窓)을 내겠소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샤나건 웃지요 * 2020년 12월 11일 금요일입니다. 어떤 일도 허허 웃으며 넘길 수 있는 게 진정한 해탈입니다. 한 주 마무리 잘 하시고 편안한 주말 되세요. 홍승환 드림

사랑한다는 것 _ 안도현

사랑한다는 것 안도현 길가에 민들레 한송이 피어나면 꽃잎으로 온 하늘을 다 받치고 살듯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오직 한 사람을 사무치게 사랑한다는 것은 이 세상을 전체를 비로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차고 맑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고 우리가 서로 뜨겁게 사랑한다는 것은 그대는 나의 세상을 나는 그대의 세상을 함께 짊어지고 새벽을 향해 걸어가겠다는 것입니다. * 2020년 11월 25일 수요일입니다. 배려가 계속된다고 그게 자신의 권리인 줄 알면 안 됩니다. 친절한 사람의 배려를 고마워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하루만의 위안 _ 조병화

하루만의 위안 조병화 잊어버려야 한다 진정 잊어버려야 한다 오고 가는 먼 길가에서 인사 없이 헤어진 지금은 누구던가 그 사람으로 잊어버려야 한다 온 생명은 모두 흘러가는 데 있고 흘러가는 한 줄기 속에 나도 또 하나 작은 비둘기 가슴을 비벼대며 밀려가야만 한다 눈을 감으면 너와 가까운 어느 자리에 싸리꽃이 마구 핀 잔디밭이 있어 잔디밭에 누워 마지막 하늘을 바라보는 내 그날이 온다 그날이 있어 나는 살고 그날을 위하여 바펴온 마지막 내 소리를 생각한다 그날이 오면 잊어벼려야만 한다 진정 잊어버려야만 한다 오고 가는 먼 길가에서 인사 없이 헤어진 시방은 누구던가 그 사람으로 잊어버려여만 한다. * 2020년 11월 13일 금요일입니다. 기본을 무시하면 사고가 나기 마련입니다. 기본과 기초를 점검해 보는 하..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_ 함석헌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함석헌 만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 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2020년 8월 24일 월요일입니다...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 _ 이해인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 이해인 나는 문득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 누군가 이사오길 기다리며 오랫동안 향기를 묵혀둔 쓸쓸하지만 즐거운 빈집 깔끔하고 단정해도 까다롭지 않아 넉넉하고 하늘과 별이 잘 보이는 한 채의 빈집 어느날 문을 열고 들어올 주인이 '음, 마음에 드는데......' 하고 나직이 속삭이며 미소지어 줄 깨끗하고 아름다운 빈집이 되고 싶다. * 2020년 8월 4일 화요일입니다. 다른 이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는 본인이 만든 것입니다. 본인의 가치를 높이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마중물과 마중불 _ 하청호

마중물과 마중불 하청호 외갓집 낡은 펌프는 마중물을 넣어야 물이 나온다.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땅 속 깊은 곳 물을 이끌어 올려주는 거다. 아궁이에 불을 땔 때도 마중불이 있어야 한다. 한 개비 성냥불이 마중불이 되어 나무 속 단단히 쟁여져 있는 불을 지피는 거다. 나도 누군가의 마음을 이끌어 올려주는 마중물이 되고 싶다. 나도 누군가의 마음을 따뜻하게 지펴주는 마중불이 되고 싶다. * 2020년 6월 24일 수요일입니다. 처음 시작을 도와주는 무언가가 있으면 큰 힘이 됩니다. 누군가에게 마중물과 마중불이 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6월엔 내가 _ 이해인

6월엔 내가 이해인 숲속에 나무들이 일제히 낯을 씻고 환호하는 유월 6월엔 내가 빨갛게 목타는 장미가 되고 끝없는 산향기에 흠뻑 취하는 뻐꾸기가 된다. 생명을 향해 하얗게 쏟아 버린 아카시아 꽃타래 6월엔 내가 사랑하는 이를 위해 더욱 살아 산기슭에 엎드려 찬비 맞아도 좋은 바위가 된다 * 2020년 6월 1일 월요일입니다. 남들과 똑같이 해서는 인정받을 수 없는 시대입니다. 남다름을 보여주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지구 신발 _ 함민복

지구 신발 함민복 너 지구 신발 신어 봤니? 맨발로 뻘에 한번 들어가 봐 말랑말랑한 뻘이 간질간질 발가락 사이로 스며들며 금방 발에 딱 맞는 신발 한 켤례가 된다 그게 지구 신발이야 지구 신발은 까칠까칠 칠게 발에도 낭창낭창 도요새 발에도 보들보들 아이들 발에도 우락부락 어른들 발에도 다 딱 맞아 지구 신발 한번 꼭 신어 보렴 * 2020년 4월 8일 수요일입니다. 맨발로 땅을 밟고 흙을 밟아 본게 언제이신가요? 바쁜 일상중에도 소소로운 여유를 찾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