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시 906

따뜻한 얼음 _ 박남준

따뜻한 얼음                           박남준  옷을 껴입듯 한겹 또 한겹추위가 더할수록 얼음의 두께가 깊어지는 것은버들치며 송사리 품 안에 숨 쉬는 것들을따뜻하게 키우고 싶기 때문이다철모르는 돌팔매로부터겁 많은 물고기들을 두 눈 동그란 것들을놀라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얼음이 맑고 반짝이는 것은그 아래 작고 여린 것들이 푸른빛을 잃지 않고봄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겨울 모진 것 그래도 견딜 만한 것은제 몸의 온기란 온기 세상에 다 전하고스스로 차디찬 알몸의 몸이 되어버린 얼음이 있기 때문이다쫓기고 내몰린 것들을 껴안고 눈물지어본 이들은 알 것이다햇살 아래 녹아내린 얼음의 투명한 눈물자위를아 몸을 다 바쳐서 피워내는 사랑이라니그 빛나는 것이라니  * 2024년 11월 26..

하루를 습작하며 _ 목필균

하루를 습작하며                               목필균  어디 다시 살아볼 하루가 있었나요언제나 잘 살아보겠다고 마음만 먹었지 마음의 텃밭에 조각조각 나누어진하루를 호미질 하며돌멩이 골라내고 잡풀 뽑아주지만모래알처럼 부서지는 토질에 실하지 못한들꽃 모종이 시들어져 있네요가시 돋친 선인장이라면 모를까누가 모진 모래바람 그리 잘 견디겠어요 일기장 속엔 수없이 반성문을 써가면서기름진 거름 한 줌 뿌려주면서깊은 밤까지 애태워 보아도완결된 하루는 없고붉게 퇴고한 원고지만 하루치 무게로내려앉네요  * 2024년 11월 25일 월요일입니다.아무리 좋은 책을 읽고 좋은 말을 들어도행동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 것도 바뀌지 않습니다.움직이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후회는 아름답다 _ 심재휘

후회는 아름답다                                심재휘  나태한 천장을 향해 중얼거려 보지만보고 싶다는 말은 이제 관습적입니다 햇빛을 향해 몸을 뒤척이는 창가의 꽃들그들의 맹목은 또 얼마나 무섭습니까 비록 우리가 가진 것이 때늦은 후회밖에 없다 할지라도후회는 늘 절실하므로 아름다웠습니다 어떤 그리움보다도나의 후회 속에서 그대는 늘 보고 싶었습니다  * 2024년 11월 22일 금요일 절기상 소설입니다.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는 모든 걸 내려놓는 게 방법일 수 있습니다.가볍게 움직이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개떡 _ 이향아

개떡                         이향아  '개떡'이라는 말을마치 세상을 포기하듯 발음하지 말라.그 수더분하고 찰진 반죽을 알고 있다면그러지는 못할 것이다.재수가 개떡 같은 날.그렇게 수더분하고 끈끈한 운수가흔치 않은 인정으로 옷자락을 끌고가지 말어 아주 가지는 말어사정없이 붙잡아 엉겨붙어서개떡이 사촌보다 편안하게 기대는 날.그의 무릎을 베고 누울까 말까개떡처럼 일이 순히 풀리는 날이면이러다 열에 하나 혹시라도 백에 하나호강스런 걱정도 하면서 신수패를 뗀다.  * 2024년 11월 15일 금요일입니다.행복은 몸에 좋습니다. 하지만 마음의 힘을 길러주는 것은 슬픔입니다.건강한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부드러운 직선 _ 도종환

부드러운 직선                               도종환  높은 구름이 지나가는 쪽빛 하늘 아래사뿐히 추켜세운 추녀를 보라 한다뒷산의 너그러운 능선과 조화를 이룬지붕의 부드러운 선을 보라 한다어깨를 두드리며 그는 내게이제 다시 부드러워지라 한다몇 발짝 물러서서 흐르듯 이어지는 처마를 보며나도 웃음으로 답하며 고개를 끄덕인다그러나 저 유려한 곡선의 집 한 채가곧게 다듬은 나무들로 이루어진 것을 본다휘어지지 않는 정신들이있어야 할 곳마다 자리 잡아지붕을 받치고 있는 걸 본다사철 푸른 홍송 숲에 묻혀 모나지 않게담백하게 뒷산 품에 들어 있는 절집이굽은 나무로 지어져 있지 않음을 본다한 생애를 곧게 산 나무의 직선이 모여가장 부드러운 자태로 않아 있는  * 2024년 11월 12일 화요일입니다..

가을의 기도 _ 김현승

가을의 기도                          김현승  가을에는기도하게 하소서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사랑하게 하소서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호올로 있게 하소서나의 영혼,굽이치는 바다와백합의 골짜기를 지나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 2024년 11월 11일 월요일입니다.하기 싫은 일들을 미루다 보면 끝내 하지 못하는 법입니다.큰 짐이 되기 전에 미리미리 해결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가을의 향기 _ 김현승

가을의 향기                             김현승남쪽에선과수원에 임금(林檎)이 익는 냄새서쪽에선 노을이 타는 내음산 위엔 마른 풀의 향기들가엔 장미들이 시드는 향기당신에겐 떠나는 향기내게는 눈물과 같은 술의 향기모든 육체는 가고 말아도풍성한 향기의 이름으로 남는상하고 아름다운 것들이여높고 깊은 하늘과 같은 것들이여* 2024년 11월 7일 목요일입니다.다른 사람을 바꾸는 것보다는 본인을 바꾸는 게 쉽습니다.스스로 먼저 바꿔보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홍승환 드림

가을의 노래 _ 유자효

가을의 노래                             유자효  잃을 줄 알게 하소서가짐보다도더 소중한 것이잃음인 것을 이 가을뚝뚝 지는낙과의 지혜로은혜로이 베푸소서 떠날 줄 알게 하소서머무름보다더 빛나는 것이떠남인 것을 이 저문 들녘철새들이 남겨둔보금자리가약속의 훈장이 되게 하소서  * 2024년 11월 6일 수요일입니다.언제나 현재에 집중할 수 있다면 반드시 행복해집니다.집중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우리들 사이 _ 신달자

우리들 사이                            신달자  말은 시시해졌다글은 실증이 났지당신에게 감격을 줄내겐 아무것도 없다충격을 줄 혹은받을 아픔도 남아 있지 않다밤엔 붉고낮에는 하얀 평범한 달그것이 큰 바위라는 것을이젠 훤히 알아매력이 없어서 그저 그런 달밤 12시에 흘리는나의 눈물은 우스워졌다잘 기억 할 수 없는첫날의 우리 두 눈의 불꽃그 빛을 흉내낼 수 없다지금며칠을 몸숨겨새롭게 당신을 그리워 하고 싶다손바닥 위에 마주 서서도무지 잘 보이지 않는 우리나 혼자 뛰어내려우러러 당신을 생각하고 싶다  * 2024년 11월 5일 화요일입니다.진심을 다하면 알아주기 마련입니다.최선을 다하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가을 그리고 풀꽃 _ 김지향

가을 그리고 풀꽃                                 김지향  도심지에서는몸이 가루가 되어 날리는 햇빛변두리에 와서 성한 몸이 된다 뜨겁게 살아도가루가 되지 않는 법을뜨겁게 배우는 변두리의 풀꽃들약하고 작은 변두리 풀꽃 속에살고 있는 굵은 힘줄을불붙이는 법을가을의 햇빛에게 배운 풀꽃은죽도록 떠나지 않는 가을을 갖고 싶어늙지도 않는다  * 2024년 11월 4일 월요일입니다.모두를 만족시키는 선택은 없는 법입니다.자신을 위한 선택을 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