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시 62

하얀 눈밭에 _ 하영순

하얀 눈밭에 하영순 시골길 하얗게 쌓인 눈밭에 강아지처럼 뒹굴고 싶어 자동차를 세워놓고 마음은 뒹굴고 나는 걸었다 발자국 하나 없는 옥양목 같은 눈밭 뽀드득 뽀드득 들리는 소리 눈이 내게 무슨 말을 하는 걸까 한참을 걷다 돌아오면서 그 말뜻을 알았다 이 형광등 네 발자국을 보라는 말이었구나 눈밭에 그대로 흘려 놓은 내 마음 살며시 지켜보는 저 햇살 에구 부끄러워라! * 2024년 2월 22일 목요일입니다.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면 도태되기 마련입니다. 새로운 것들에 관심을 기울여보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겨울을 지키는 나무 _ 김길자

겨울을 지키는 나무 김길자 동장군아 내 살갗을 비집고 깊숙이 들어오는 냉혹한 겨울바람에 나는 걸칠 옷도 없어 춥다 너희들과 동거하는 그때부터 손등이 에이는 잔인한 날에도 마음만은 얼지 않으려 온 힘을 다 기울이었다 강촌에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온 산에 뿌옇게 물들이다 말고 사라지듯 하루살이 해도 질 때면 아름답게 빛을 발하는 것을 보며 한파에도 봄을 키우려는 나무에게 함박눈 받는 은총은 긴 기다림의 축복이었다 * 2024년 2월 20일 화요일입니다. 조금 돌아가는 길을 선택하면 붐비지 않습니다. 부지런하게 조금 먼저 출발하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겨울나기 _ 도종환

겨울나기 도종환 아침에 내린 비가 이파리 위에서 신음소리를 내며 어는 저녁에도 푸른 빛을 잃지 않고 겨울을 나는 나무들이 있다 하늘과 땅에서 얻은 것들 다 되돌려주려고 고갯마루에서 건넛산을 바라보는 스님의 뒷모습처럼 서서 빈 가지로 겨울을 나는 나무들이 있다 이제는 꽃 한 송이 남지 않고 수레바퀴 지나간 자국 아래 부스러진 잎사귀와 끌려간 줄기의 흔적만 희미한데 그래도 뿌리 하나로 겨울을 나는 꽃들이 있다 비바람 뿌리고 눈서리 너무 길어 떨어진 잎 이 세상 거리에 황망히 흩어진 뒤 뿌리까지 얼고 만 밤 씨앗 하나 살아서 겨울을 나는 것들도 있다 이 겨울 우리 몇몇만 언 손을 마주 잡고 떨고 있는 듯해도 모두들 어떻게든 살아 견디고 있다 모두들 어떻게든 살아 이기고 있다 * 2024년 1월 25일 목요일입..

눈 온 아침 _ 신경림

눈 온 아침 신경림 잘 잤느나고 오늘따라 눈발이 차다고 이 겨울을 어찌 나려느냐고 내년에도 또 꽃을 피울 거냐고 늙은 나무들은 늙은 나무들끼리 버려진 사람들은 버려진 사람들끼리 기침을 하면서 눈을 털면서 * 2024년 1월 22일 월요일입니다.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면 엉뚱한 답변을 하기 마련입니다. 핵심을 간파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이 겨울에 _ 박찬욱

이 겨울에 박찬욱 수평선 가로누워 구름을 베고 은빛 햇살 물 마시면 겨울 하늘은 눈이 시게 차다 둥지 찾아온 겨울새 멀고 먼 이야기 모래 속 진주 캐어 내던 겨울 바다는 그리움에 자란다 눈 꽃송이 마음 부르고 노랗게 묵은 세월 서리빛 가지 꿈 돋을 때 겨울 바람은 생명을 부른다 잡힐 듯 손 끝에 머무는 북두칠성 싸늘한 하늘 언저리 이 겨울밤은 별꽃 속에 피어 있다 * 2024년 1월 18일 목요일입니다. 집착하지 않으면 마음이 물처럼 흐르는 법입니다. 미련을 갖지 않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눈 _ 이희자

눈 이희자 속절없이 하얗도록 얼어붙은 속내 좀처럼 말하지 않는다 해 기운 저녁으로 살포시 내려와 뼈마디 헐거워진 나무 위에 앉는다 날개 접은 학인 듯 아득한 풍경으로 잠기는 고요의 저 너그러움 따사로운 손길이면 또 걷잡을 수 없어 그만 무너지고야 마는, 울음 같은 눈물의. * 2024년 1월 17일 수요일입니다. 누군가의 편리함은 누군가의 불편함입니다. 수고하는 이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고드름 _ 김귀녀

고드름 김귀녀 밤새 내린 하얀 눈이 태양 빛에 서러워 울다가 한밤중엔 얼음기둥이 되었다가 처마 끝에 매달려 그리움 되다가 한낮엔 제 살을 녹인다 그 옛날 가슴앓이 하던 내 눈물도 함께 뚝! 뚝! 녹아내린다 짧게 혹은 길게 느낌표 만들어 놓고 깊은 밤 명상에 잠기다가 태양 빛에 한 방울 두 방울 마침표 찍는다 겨울뿌리가 아침을 밀어내던 날 내 가슴속 창가에는 어린 날의 추억들이 낮고 허름한 양철 지붕 위에서 눈 녹는 소리를 낸다 * 2024년 1월 16일 화요일입니다. 회피가 반복되면 시작하는 법을 잊게 됩니다. 귀찮음을 극복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겨울나기 _ 임영준

겨울나기 임영준 그래 아무리 밉다 곱다 해도 된서리에 쪼그라들어 비굴해진다 해도 뿌리 하나만큼은 꿋꿋이 뻗치고 있으니 또 어찌어찌 견디게 되겠지 오롯이 살아지겠지 혹독한 겨울을 딛고 한 치라도 더 파고들어 이 세상 한 줌 흙이라도 되겠지 * 2024년 1월 12일 금요일입니다. 충고는 그것이 가장 필요한 사람들이 가장 듣기 싫어합니다. 거슬리는 말들을 새겨 듣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한순간에, 눈보라처럼 _ 박노해

한순간에, 눈보라처럼 박노해 창밖엔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다 방 안은 따뜻했고 아늑했고 그때 돌 하나가 날아와 우리를 감싸주던 유리창이 와장창 내려앉았다 한순간에 눈보라처럼 진실이 몰아쳐왔다 한꺼번에 차단된 생의 진실이 엄습해왔다 * 2024년 1월 11일 목요일입니다. 행복이란 결심이고 결정입니다. 마음먹고 실행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겨울 아침 풍경 _ 김종길

겨울 아침 풍경 김종길 안개인지 서릿발인지 시야는 온통 우윳빛이다 먼 숲은 가즈런히 세워놓은 팽이버섯, 아니면 콩나물 그 너머로 방울토마토만한 아침 해가 솟는다 겨울 아침 풍경은 한 접시 신선한 샐러드 다만 초록빛 푸성쉬만이 빠진 * 2024년 1월 8일 월요일입니다. 눈 앞에 있는 일을 묵묵히 해내는 게 최선일 때도 있습니다. 지구력을 키우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