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시 152

마디, 푸른 한 마디 _ 정일근

마디, 푸른 한 마디 정일근 피릴 만들기 위해 대나무 전부가 필요한 건 아니다 노래가 되기 위해 대나무 마디마디 다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가장 아름다운 소린 마디 푸른 한 마디면 족하다 내가 당신에게 드리는 사랑의 고백도 마찬가지다 당신을 눈부처로 모신 내 두 눈 보면 알 것이다 고백하기에 두 눈도 바다처럼 넘치는 문장이다 눈물샘에 비치는 한 방울 눈물만 봐도 다 알 것이다 * 2023년 3월 9일 목요일입니다. 어설픈 100개보다는 확실한 1개가 좋을 수 있습니다. 1당 100의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30cm _ 박지웅

30cm 박지웅 거짓말을 할 수 없는 거리 마음을 숨길 수 없는 거리 눈빛이 흔들리면 반드시 들키는 거리 기어이 마음이 동하는 거리 눈시울을 만나는 최초의 거리 심장 소리가 전해지는 최후의 거리 눈망울마저 사라지고 눈빛만 남는 거리 눈에서 가장 빛나는 별까지의 거리 말하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거리 눈 감고 있어도 볼 수 있는 거리 숨결이 숨결을 겨우 버티는 거리 키스에서 한 걸음도 남지 않은 거리 이 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누가 30cm 안에 들어온다면 그 곳을 고스란히 내어준다면 당신은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 2023년 2월 23일 목요일입니다. 거리감이 느껴질 때는 거리를 좁히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먼저 다가가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함부로 애틋하게 _ 정유희

함부로 애틋하게 정유희 나는 네가 비싸도 좋으니 거짓이 아니기를 바란다 나는 네가 싸구려라도 좋으니 가짜가 아니기를 바란다 만약 값비싼 거짓이거나 휘황찬란한 거짓이라면 나는 네가 끝까지 속일 수 있기를 바란다 내 기꺼이 환하게 속아 넘어가 주마 함부로 애틋하게 속아 넘어가 주마 * 2022년 7월 11일 월요일입니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심신이 피곤해지는 법입니다. 한 주의 시작, 마음을 다스리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있지 _ 이병률

있지 이병률 있지 가만히 서랍에서 꺼내는 말 벗어 던진 옷 같은 말 있지 문득 던지는 말 던지는 곳이 어디인지 모르므로 도착하지도 않는 말 있지 더없이 있자 하고 싶은데 말할 수 없음이 그렇고 그런 말 있지 전기 설비를 마친 새 집에 등을 켤 때 있지.라는 소리와 함께 켜지는 것 같아 소스라치게도 되는 하지만 들어도 들어도 저울에 올릴 수 없는 말 있지 그러다가도 그러다가도 혼자가 아닌 말 침묵 사이에 있다가도 말 사이에 있다가도 덩그마니 혼자이기만 한 말 있지 수상하고 수상하도록 무엇이 있다는 것인지 무엇으로 청천벽력을 가능하게 하겠다는 것인지 포개고 자꾸 포개지는 순박한 그 말에는 참 모두가 있지 * 2022년 6월 23일 목요일입니다. 오늘부터 장마가 시작된다고 하네요. 외출하실 때 우산 챙기시고 ..

분홍지우개 _ 안도현

분홍지우개 안도현 분홍지우개로 그대에게 쓴 편지를 지웁니다. 설레이다 써버린 사랑한다는 말을 조금씩 지워 나갑니다. 그래도 지운 자리에 다시 살아나는 그대 보고 싶은 생각 분홍지우개로 지울 수 없는 그리운 그 생각의 끝을 없애려고 혼자 눈을 감아봅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지워질 것 같습니다. * 2022년 5월 4일 수요일입니다. 어린 시절 분홍지우개는 틀린 것들을 없애주는 신비한 물건이었습니다. 지우개로 지울 수 없는 것들을 바로잡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좋은 사랑이 되고 싶다 _ 유인숙

좋은 사랑이 되고 싶다 유인숙 아, 내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메어야 할 짐이 있다면 찡그린 얼굴로 돌아서거나 버거워하지 않는 삶 하찮은 것조차 기뻐하는 삶이고 싶다 한순간이라도 서로의 짐을 나누어지고 때로는 그 삶의 무게만큼 기울어져 힘이 들어도 나에게 주어진 몫이거니 기꺼운 마음으로 순응하고 싶다 사랑을 가슴으로 품고 주고 또 주어도 달라하지 않는 소망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그의 눈빛을 보며 기다릴 줄 아는 자가 되고 싶다 슬픔도 안으로 끌어안고 기쁨도 가슴에 담을 줄 아는 그래서 행복하다고 노래할 줄 아는 가장 소중한 사람의 참 좋은 사랑이 되고 싶다 * 2022년 3월 16일 수요일입니다. 작은 것들이 켜켜이 쌓여 삶이 되고 역사가 되는 법입니다. 하찮아 보이는 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하루 되시기 바랍..

마음 한철 _ 박준

마음 한철 박준 미인은 통영에 가자마자 새로 머리를 했다 귀밑을 타고 내려온 머리가 미인의 입술에 붙었다가 떨어졌다 내색은 안 했지만 나는 오랜만에 동백을 보았고 미인은 처음 동백을 보는 것 같았다 "우리 여기서 한 일 년 살다 갈까?" 절벽에서 바다를 보던 미인의 말을 나는 "여기가 동양의 나폴리래" 하는 싱거운 말로 받아냈다 불어오는 바람이 미인의 맑은 눈을 시리게 했다 통영의 절벽은 산의 영정과 많이 닮아 있었다 미인이 절벽 쪽으로 한 발 더 나아가며 내 손을 꼭 잡았고 나는 한 발 뒤로 물러서며 미인의 손을 꼭 잡았다 한철 머무는 마음에게 서로의 전부를 쥐여주던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 2022년 2월 10일 목요일입니다. 작은 일에 감사할 줄 알아야 삶이 윤택해지는 법입니다. 마음을 표현하는 ..

내가 좋아하는 사람 _ 나태주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나태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슬퍼할 일을 마땅히 슬퍼하고 괴로워할 일을 마땅히 괴로워하는 사람 남의 앞에 섰을 때 교만하지 않고 남의 뒤에 섰을 때 비굴하지 않은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미워할 것을 마땅히 미워하고 사랑할 것을 마땅히 사랑하는 그저 보통의 사람 * 2022년 1월 10일 월요일입니다. 그저 보통의 사람이 많지 않음을 느끼는 요즘입니다. 마땅히 해야 할 것들을 잊지 않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행복 _ 유치환

행복 유치환 사랑 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머랄드빛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이 와선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도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방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 2022년 1월 4일 화요..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_ 정희성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정희성 어느날 당신과 내가 날과 씨로 만나서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우리들의 꿈이 만나 한 폭의 비단이 된다면 나는 기다리리 추운 길목에서 오랜 침묵과 외로움 끝에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 볼 때 어느 겨울인들 우리들의 사랑을 춥게하리 외롭고 긴 기다림 끝에 어느날 당신과 내가 만나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 2021년 11월 25일 목요일입니다. 조급해 할수록 빈 틈이 많이 발생하는 법입니다. 천천히 여유를 갖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