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을 걷다
김종제
마음에 병이 들었을 때
허공을 걸어보시라
한겨울에도 봄햇살 지천이어서
솜이불 덮은 것처럼 따스하다
가슴에 독이 맺혔을 때
허공을 걸어보시라
구멍도 없이 확 뚫려있어
발바닥 아래로 쑤욱 빠져나가는
피눈물이 동해바다 같을 것이다
머리에 화가 들끓을 때
허공을 걸어보시라
밤새 꽁꽁 얼려놓았다가
불 가까이 들이밀어
정신의 족적조차 찾을 수 없게 만드는
허공에는 길이 없어서
꽃과 부딪혀 쓰러질 일이 없겠다
허공에는 문이 없어서
바람에 갇혀 숨막힐 일이 없겠다
허공에는 벽이 없어서
사랑에 통곡할 일이 없겠다
허공을 걷는다는 것은
허공보다 가벼워지는 일
허공보다 넓고 깊어지는 일
허공보다 가득하고 아득해지는 일
허공을 걷는다는 것은
나를 용서하고 가쁘게 놓아주는 일
* 2025년 1월 22일 수요일입니다.
빈 곳이 없으면 움직일 수 없는 법입니다.
여지를 만드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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