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기쁨에게
정호승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
내가 어둠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번도 평등하게 웃어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 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 2021년 11월 19일 금요일입니다.
앞만 보고 계속 정진한다면 도달하기 마련입니다.
속도보다는 방향을 생각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아침의 시 한 편_좋은글,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1월 마음의 기척 _ 박노해 (15) | 2021.11.23 |
---|---|
산다는 것 _ 배현순 (10) | 2021.11.22 |
짠 맛을 잃은 바닷물처럼 _ 류시화 (12) | 2021.11.18 |
지금은 우리가 _ 박준 (10) | 2021.11.17 |
내 몸 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_ 김선우 (6) | 2021.1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