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 86

새벽편지 _ 곽재구

새벽편지 곽재구 새벽에 깨어나반짝이는 별을 보고 있으면이 세상 깊은 어디에 마르지 않는사랑의 샘 하나 출렁이고 있을 것만 같다고통과 쓰라림과 목마름의 정령들은 잠들고눈시울이 붉어진 인간의 혼들만 깜빡이는아무도 모르는 고요한 그 시각에아름다움은 새벽의 창을 열고우리들 가슴의 깊숙한 뜨거움과 만난다다시 고통하는 법을 익히기 시작해야겠다이제 밝아올 아침의 자유로운 새소리를 듣기 위하여따스한 햇살과 바람과 라일락 꽃향기를 맡기 위하여진정으로 진정으로 너를 사랑한다는 한마디새벽 편지를 쓰기 위하여새벽에 깨어나반짝이는 별을 보고 있으면이 세상 깊은 어디에 마르지 않는희망의 샘 하나 출렁이고 있을 것만 같다. * 2026년 1월 2일 금요일입니다.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습니..

달에게서 배운다 _ 류시화

달에게서 배운다 류시화 달에게서 배운다자신을 완성하는 데시간이 걸린다는 것을그 속도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낮이나 밤이나자전하고 공전하며단 하루도 멈춤 없이궁극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을그리고 그 길에서 다른 존재들을 비춘다는 것을그리고 자기 완성을 확인하기 위해부수고 다시 시작한다는 것을완성된 상태에서 정지해 있는 일보다더 어두운 건 없다는 것을 * 2025년 12월 31일 한 해의 마지막 날입니다.올 한 해 수고한 모두에게 감사해야겠습니다.한 해 마무리 잘 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홍승환 드림 =================================== Learning from the moon ..

구부러진 길 _ 이준관

구부러진 길 이준관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구부러진 길을 가면나비의 밥그릇 같은 민들레를 만날 수 있고감자를 심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날이 저물면 울타리 너머로 밥 먹으라고 부르는어머니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구부러진 하천에 물고기가 많이 모여 살듯이들꽃도 많이 피고 별도 많이 드는 구부러진 길.구부러진 길은 산을 품고 마을을 품고구불구불 간다.그 구부러진 길처럼 살아온 사람이 나는 또한 좋다.반듯한 길 쉽게 살아온 사람보다흙투성이 감자처럼 울퉁불퉁 살아온 사람의구불구불 구부러진 삶이 좋다.구부러진 주름살에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고 가는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 2025년 12월 30일 화요일입니다.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게..

쇠똥구리 _ 이산하

쇠똥구리 이산하 소똥을탁구공만하게똘똘 뭉쳐뒷발로 굴리며 간다처음 보니 귀엽고다시 보니, 장엄하다 꼴을 뜯던 소가무심히 보고 있다 저녁 노을이 지고 있다 * 2025년 12월 29일 월요일입니다.어느덧 한 해의 마지막 주입니다.한 해 마무리 잘 하시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 The Dung Beetle Lee San-ha Rolling a ball of ox dungas small as a ping-pong ball,tightly bunched,it goes, pushing it with its hind legs.Cute at first ..

물푸레나무 _ 김태정

물푸레나무 김태정 물푸레나무는물에 담근 가지가그 물, 파르스름하게 물들인다고 해서물푸레나무라지요가지가 물을 파르스름 물들이는 건지물이 가지를 파르스름 물올리는 건지그건 잘 모르겠지만물푸레나무를 새각하는 저녁 어스름어쩌면 물푸레나무는 저 푸른 어스름을닮았을지 몰라 나이 마흔이 다 되도록부끄럽게도 아직 한번도 본 적 없는물푸레나무, 그 파르스름한 빛은 어디서 오는 건지물 속에서 물이 오른 물푸레나무그 파르스름한 빛깔이 보고 싶습니다물푸레나무빛이 스며든 물그 파르스름한 빛깔이 보고 싶습니다그것은 어쩌면이 세상에서 내가 갖지 못할 빛깔일 것만 같아어쩌면 나에게아주 슬픈 빛깔일지도 모르겠지만가지가 물을 파르스름 물들이며 잔잔히물이 가지를 파르스름 물올리며 찬찬히가난한 연인들..

성탄편지 _ 이해인

성탄편지 이해인 친구여, 알고 계시지요?사랑하는 그대에게제가 드릴 성탄 선물은오래 전부터가슴에 별이 되어 박힌 예수님의 사랑그 사랑 안에 꽃피고 열매 맺은우정의 기쁨과 평화인 것을.슬픈 이를 위로하고미운 이를 용서하며우리 모두 누군가의 집이 되어등불을 밝히고 싶은 성탄절잊었던 이름들을 기억하고먼데 있는 이들을가까이 불러들이며 문을 엽니다.죄가 많아 숨고 싶은우리의 가난한 부끄러움도기도로 봉헌하며하얀 성탄을 맞이해야겠지요?자연의 파괴로 앓고 있는 지구와구원을 갈망하는 인류에게구세주로 오시는 예수님을우리 다시 그대에게 드립니다일상의 삶 안에서새로이 태어나는 주님의 뜻을우리도 성모님처럼겸손히 받아 안기로 해요.그동안 못다 부른 감사의 노래를함께 부르기로 해요.친구여..

쇼펜하우어 필경사 _ 김지명

쇼펜하우어 필경사 김지명 안개 낀 풍경이 나를 점령한다가능한 이성을 다해 착해지려 한다배수진을 친 곳에 야생 골짜기라고 쓴다가시덤불 속에 붉은 별이 흩어져 있다산양이 혀를 거두어 절벽을 오른다숨을 모은 안개가 물방울 탄환을 쏜다적막을 디딘 새들만이 소음을 경청한다저녁 숲이 방언을 흘려보낸다무릎 꿇은 개가 마른 뼈를 깨물어댄다절벽 한 쪽이 절개되고창자 같은 도량이 넓어진다사마뒤 날개가 짙어진다산봉우리 몇 개가 북쪽으로 옮겨간다초록에서 트림 냄새가 난다밤마다 낮은 거래되고낮이 초록을 흥정하는 동안멀리 안광이 흔들린다흘레붙은 개가 신음을 흘린다당신이 자서전에서 외출하고 있다 * 2025년 12월 23일 화요일입니다.모든 사실은 각자의 시각에 따라 다..

슬픔 _ 김채수

슬픔 김채수 나는 슬픔을 말하는 사람보다그것을 간직하는 사람을 더 좋아한다. 슬픔을 간직하는 사람보다그것을 아는 사람을 더 좋아한다. 슬픔을 아는 사람보다슬퍼할 줄 아는 사람을나는 더 좋아한다. * 2025년 12월 22일 월요일입니다.지난 주 금요일은 24년 전 떠나신 아버님의 기일이었습니다.아버지의 나이에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착잡해지네요.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고 건강 챙기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 Sorrow Kim Chae-soo Rather than those who speak of sorrow,I prefer..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_ 김종삼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김종삼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나는 시인이 못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서울역 앞을 걸었다.저녁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빈대떡을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그런 사람들이엄청난 고생 되어도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그런 사람들이이 세상에서 알파이고고귀한 인류이고영원한 광명이고다름 아닌 시인이라고. * 2025년 12월 18일 목요일입니다.맘씨 좋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명랑하고 맘 좋은 인정있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 Someone asked me..

나무 _ 신경림

나무 신경림 나무를 길러본 사람만이 안다반듯하게 잘 자란 나무는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을너무 잘나고 큰 나무는제 치레하느라 오히려좋은 열매를 갖지 못한다는 것을한군데쯤 부러지거나 가지를 친 나무에또는 못나고 볼품없이 자란 나무에보다 실하고단단한 열매가 맺힌다는 것을 나무를 길러본 사람만이 안다우쭐대며 웃자란 나무는이웃 나무가 자라는 것을 가로막는다는 것을햇빛과 바람을 독차지해서동무 나무가 꽃 피고 열매 맺는 것을훼방한다는 것을그래서 뽑거나베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사람이 사는 일이 어찌 꼭 이와 같을까만 * 2025년 12월 17일 수요일입니다.겉모습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보이지 않는 진실을 찾아내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