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시 74

겨울나기 _ 탁명주

겨울나기 탁명주 겨울은 껍질이 두꺼운 계수나무다 어린 나무가 겨울앞에 꿋꿋할 수 있는 건 바람 맞을 잎이 없음이다 뿌리깊은 리듬으로 오는 설레임이 있음이다 매운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껍질속에 저장하였다가 사월 다수운 봄 햇살에 발효시켜 박하나무는 박하잎을 계수나무는 계피를 만드는 것이리라 한둥치 겨울 옷을 벗을 때마다 고갱이는 굵어지고 껍질은 단단해진다 어린 나무가 바람 소리에 귀기울이는 건 골패인 낙숫물 소문을 듣기 위함이다 껍질 속 비밀스런 세포분열에 향기짙은 녹수의 싹 힘껏 밀어올릴 물 오른 봄기운을 기다림이다 * 2018년 2월 22일 목요일입니다.변하지 않는 것들에 집중해야 합니다.반짝 유행보다는 오래 잊혀지지 않아야 합니다.저녁 비소식이 있으니 우산 챙기시고 건강한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겨울나무를 보면 _ 강세화

겨울나무를 보면 강세화 겨울나무를 보면 일생을 정직하게 살아온 한 생애를 마주한 듯 하다. 나이에 대하여 부끄럽지 않고 섭섭해하지 않는 풍모를 본다. 집착을 버리고 욕망을 버리고 간소한 마음은 얼마나 편안할까? 노염타지 않고 미안하지 않게 짐 벗은 모양은 또 얼마나 가뿐할까? 겨울나무를 보면 옹졸하게 욕하고 서둘러 분개한 것이 무안해진다. * 2018년 2월 21일 수요일입니다.서두르다 보면 놓치는 것들이 있습니다.가끔은 멈춰서서 지켜보는 지혜가 필요한 법입니다.차분한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반쯤 깨진 연탄 _ 안도현

반쯤 깨진 연탄 안도현 언젠가는 나도 활활 타오르고 싶을 것이다 나를 끝 닿는 데까지 한번 밀어붙여 보고 싶은 것이다 타고 왔던 트럭에 실려 다시 돌아가면 연탄, 처음으로 붙여진 나의 이름도 으깨어져 나의 존재도 까마득히 뭉개질 터이니 죽어도 여기서 찬란한 끝장을 한번 보고 싶은 것이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뜨거운 밑불 위에 지금은 인정머리없는 차가운, 갈라진 내 몸을 얹고 아랫쪽부터 불이 건너와 옮겨 붙기를 시간의 바통을 내가 넘겨 받는 순간이 오기를 그리하여 서서히 온몸이 벌겋게 달아오르기를 나도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나도 보고 싶은 것이다 모두들 잠든 깊은 밤에 눈에 빨갛게 불을 켜고 구들장 속이 얼마나 침침한지 손을 뻗어보고 싶은 것이다 나로 하여 푸근한 잠 자는 처녀의 등허리를 밤새도록 슬금슬금 ..

대설주의보 _ 임영준

대설주의보 임영준 막힌 가슴 실마리도 없는 거친 땅 가뜩이나 거북한 일상을 철부지들이 좌지우지하는데 족히 몇 날쯤 덮어두는 눈 천지는 어떨까 민심도 천심도 잠시 순백이 되는 은근히 고대하는 대설주의보 * 2017년 12월 18일 월요일입니다.흰 눈이 펑펑 내리는 아침입니다.한 주의 시작 순백으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