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시 4

물 위를 걸으며 _ 정호승

물 위를 걸으며 정호승 물 속에 빠져 죽어도 좋다고 생각하고 물 위를 걸으면 물 속에 발이 빠지지 않는다 물 속에 빠져 한마리 물고기의 시체가 되어도 좋다고 생각하고 물 위를 걸으면 물 속에 무릎이 빠지지 않는다 그러니 사랑하는 이여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주어진 물 위를 걸어가는 이 짧은 시간 동안 물 속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지 말고 출렁출렁 부지런히 물 위를 걸어가라 눈을 항상 먼 수평선에 두고 두려워하지 말고 * 2024년 1월 23일 화요일입니다. 어떤 현상을 잘 받아들이는 사람일수록 삶의 만족감이 높다고 합니다. 이해하고 수용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우리가 물이 되어 _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 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 만 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 2022년 6월 15일 수요일입니다. 유연, 포용, 변화... 물에게서 배웁니다. 비 오는 수요일 건강한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물처럼 흘러라 _ 법정스님

물처럼 흘러라 법정스님 사람은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로 살든 그 속에서 물이 흐르고 꽃이 피어날 수 있어야 한다. 물이 흘러야 막히지 않고 팍팍하지 않으며 침체되지 않는다. 물은 한 곳에 고이면, 그 생기를 잃고 부패하기 마련이다. 강물처럼 어디에 갇히지 않고 영원히 흐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 2021년 6월 9일 수요일입니다. 어떤 형태로든 적응할 수 있는 물처럼 유연해야 합니다. 유유히 움직이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멀리 가는 물 _ 도종환

멀리 가는 물 도종환 어떤 강물이든 처음엔 맑은 마음 가벼운 걸음으로 산골짝을 나선다.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해 가는 물줄기는 그러나 세상 속을 지나면서 흐린 손으로 옆에 서는 물과도 만나야 한다. 이미 더럽혀진 물이나 썩을 대로 썩은 물과도 만나야 한다. 이 세상 그런 여러 물과 만나며 그만 거기 멈추어 버리는 물은 얼마나 많은가. 제 몸도 버리고 마음도 삭은 채 길을 잃은 물들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다시 제 모습으로 돌아오는 물을 보라. 흐린 것들까지 흐리지 않게 만들어 데리고 가는 물을 보라 결국 다시 맑아지며 먼길을 가지 않는가. 때묻은 많은 것들과 함께 섞여 흐르지만 본래의 제 심성을 다 이지러뜨리지 않으며 제 얼굴 제 마음을 잃지 않으며 멀리 가는 물이 있지 않는가. * 2019년 4월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