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세탁소
김종제
홍제동 산 1번지
미로의 골목길 들어가면
할아버지 한 분이
시간이 고요히 가라앉은 듯한
낡은 재봉틀 의자에 앉아
손님이 맡기고 간 물건을
부지런히 뜯어 고치고 있다
지친 마음 잠깐 벗어주면
구겨지거나 헤진 곳을
하루만에 깨끗이 처리해 준다고
방금 산 새 옷처럼
흠 하나 없이 만들어서
삯도 받지 않고
당신에게 건네준다는 세탁소다
간판도 떨어져 나가고
바람 조금 불어도 덜컹거리는
문짝의 세탁소 안에서
휴일도 없이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가슴에 고랑을 판 사람들
세월에 홧병 든 사람들의
한을 다리고 설움을 깁고 있다
홍제동 인왕산 자락에
잠깐 놀러 왔다가
그냥 눌러 앉고 말았다는
무학을 닮은 노인네가
세탁소 열어놓은 것이
몇 백 년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옷걸이에 수북하게 걸려있는
인생들을 오늘도 수선하고 있다
* 2021년 4월 9일 금요일입니다.
가끔은 마음도 세탁기에 넣어 돌릴 수 있으면 좋겠네요.
마음을 세탁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아침의 시 한 편_좋은글,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즐거운 무게 _ 박상천 (18) | 2021.04.13 |
---|---|
꿈을 생각하며 _ 김현승 (14) | 2021.04.12 |
굽이 돌아가는 길 _ 박노해 (24) | 2021.04.08 |
흔들리며 피는 꽃 _ 도종환 (16) | 2021.04.07 |
봄, 봄이여 _ 임영준 (22) | 2021.04.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