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시 한 편_좋은글, 일기

사는 이유 _ 최영미

시 쓰는 마케터 2023. 2. 8. 08:27

 

 

사는 이유

 

                           최영미

 

 

투명한 것은 날 취하게 한다.

시가 그렇고

술이 그렇고

아가의 뒤뚱한 걸음마가

어제 만난 그의 지친 얼굴이

안부없는 사랑이 그렇고

지하철을 접수한 여중생들의 깔깔웃음이

생각나면 구길 수 있는 흰 종이가

창 밖의 비가 그렇고

빗소리를 죽이는 강아지의 컹컹거림이

매일 되풀이되는 어머니의 넋두리가 그렇다.

 

누군가와 싸울 때마다 난 투명해진다.

치열하게

비어가며

투명해진다.

아직 건재하다는 증명

아직 진통할 수 있다는 증명

아직 살아 있다는 무엇.

 

투명한 것끼리 투명하게 싸운 날은

아무리 마셔도 술이

오르지 않는다.

 

 

* 2023년 2월 8일 수요일입니다.

'사람'을 한 글자로 만들면 '삶'이 됩니다.

좋은 사람과 함께하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