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보는 어디 있는가
정끝별
미라보
하면 파리의 세느강 위에 우뚝 선 다리였다가
옥탑방 벽에 붙어 있던 바람둥이 혁명가였다가
물리학자였다가 정치가였다가
당신이었다가
퐁네프의 연인들이 달리는 사랑이었다가
미라보, 미라보
하면 신촌이나 부산 어디쯤 호텔이었다가
파리젠느 감자를 곁들인 스테이크였다가
벗은 다리를 감춰주던 침대시트였다가
영등포동에 있는 웨딩타운이었다가
당신 사는 상계동이나 대전의 아파트였다가
엔티크한 삼인용 소파였다가
흐르는 강물처럼 흘러 보낸 사랑이었다가
미라보, 미라보, 미라보
하면 세면대에서 놓쳐버린 은반지였다가
간곡히 비어 있는 꽃병 속 그늘이었다가
꼭꼭 숨어사는 누군가의 ID였다가
마른하늘에 살풋 걸리는 무지개였다가
문득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미라보, 미라보는 얼마나 격렬한가
이 얼마나 멸렬한가
* 2024년 3월 8일 금요일입니다.
'미라보(Mirabeau)'는 프랑스어로 "아름다운 풍경"을 뜻하는 말입니다.
물론 다리의 이름이기도 하고 작가, 지명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같은 단어라도 어떤 경험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아름다운 풍경인 미라보로 가득한 하루였으면 좋겠습니다.
홍승환 드림
'아침의 시 한 편_좋은글,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자를 눌러 쓴 시간이 대문 밖으로 걸어나간다 _ 권천학 (19) | 2024.03.12 |
---|---|
그렇게 친해지는 거야 _ 노여심 (25) | 2024.03.11 |
비는 느낌표로 내린다 _ 신현락 (24) | 2024.03.07 |
종이봉투에 갇힌 길 _ 김종성 (19) | 2024.03.06 |
빨래집게 _ 김경복 (24) | 2024.03.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