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 19

여섯줄의 시 _ 류시화

여섯줄의 시 류시화 너의 눈에 나의 눈을 묻고너의 입술에 나의 입술을 묻고너의 얼굴에 나의 얼굴을 묻고말하렴, 오랫동안 망설여 왔던 말을말하렴, 네 숨 속에 숨은 진실을말하렴, 침묵의 언어로 말하렴 * 2025년 7월 31일 목요일입니다.조용한 침묵에도 다양한 뜻이 담겨있는 법입니다.침묵을 읽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 Six-line poem Ryu Shi-hwa Bury my eyes in yours,Bury my lips in yours,Bury my face in yours. Speak, the words you'..

사모 _ 조지훈

사모 조지훈 사랑을 다해 사랑하였노라고정작 할 말이 남아 있었음을 알았을 때당신은 이미 남의 사람이 되어 있었다.불러야 할 뜨거운 노래를 가슴으로 죽이고당신을 멀리로 잃어지고 있었다.하마 곱스런 눈웃음이 사라지기 전두고두고 아름다움으로 잊어 달라지만남자에게서 여자란 기쁨 아니면 슬픔다섯 손가락 끝을 잘라 핏물 오선을 그려혼자라도 외롭지 않을 밤에 울어 보리라.울어서 멍든 눈 흘김으로미워서 미워지도록 사랑하리라.한 잔은 떠나버린 너를 위하여또 한잔은 너와의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그리고 또 한 잔은 이미 초라해진 나를 위하여마지막 한 잔은 미리 알고 정하신 하느님을 위하여 * 2025년 7월 30일 수요일입니다.아무리 많아 보이는 것들도 차근차근 해나가면 됩니다.하나..

알 수 없어요 _ 한용운

알 수 없어요 한용운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 위의 고요한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작은 시내는 구비구비 누구의 노래입니까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詩)입니까.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

수선화에게 _ 정호승

수선화에게 정호승 울지 마라외로우니까 사람이다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 2025년 7월 24일 목요일입니다.예측하지 못한 일이 발생했을 때는 그냥 시간을 흘러보내보세요.그 또한 지나고나면 그저 그런 일이 될 수 있답니다. 홍승환 드림 ======================================..

별 - 류시화

별 류시화 별은 어디서 반짝임을 얻는 걸까별은 어떻게 진흙을 목숨으로 바꾸는 걸까별은 왜 존재하는 걸까과학자가 말했다, 그것은 원자들의 핵융합 때문이라고목사가 말했다,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하나님의 증거라고점성학자가 말했다, 그것은 수레바퀴 같은 내 운명의 계시라고시인은 말했다, 별은 내 눈물이라고마지막으로 나는 신비주의자에게 가서 물었다신비주의자는 별 따위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그는 뭉툭한 손가락으로 내 가슴을 툭툭 치며 말했다 차라리네 안에 있는 별에나 관심을 가지라고그 설명을 듣는 동안에어느새 나는 나이를 먹었다나는 더욱 알 수 없는 눈으로별들을 바라본다이제 내가 바라는 것은인도의 어떤 노인처럼명상할 때의 고요함과 빵 한 조각만으로만족하는 것내가 가장 싫어..

흔들리며 피는 꽃 _ 도종환

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다 흔들리며 피었나니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 2025년 7월 22일 화요일입니다.한 마디 말로 천냥 빚을 갚는 법입니다.예쁘고 고운 말들 많이 하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 Shaking and blooming flowers ..

마음세탁소 _ 김종제

마음세탁소 김종제 홍제동 산 1번지미로의 골목길 들어가면할아버지 한 분이시간이 고요히 가라앉은 듯한낡은 재봉틀 의자에 앉아손님이 맡기고 간 물건을부지런히 뜯어 고치고 있다.지친 마음 잠깐 벗어주면구겨지거나 헤진 곳을하루만에 깨끗이 처리해 준다고방금 산 새옷처럼흠 하나 없이 만들어서삯도 받지 않고당신에게 건네준다는 세탁소다.간판도 떨어져나가고바람 조금 불어도 덜컹거리는문짝의 세탁소 안에서휴일도 없이 새벽부터 한밤중까지가슴에 고랑을 판 사람들세월에 홧병 든 사람들의한을 다리고 설움을 깁고 있다.홍제동 인왕산 자락에잠깐 놀러 왔다가그냥 눌러 앉고 말았다는무학을 닮은 노인네가세탁소 열어놓은 것이몇 백 년 되었는지 모르겠다고옷걸이에 수북하게 걸려있는인생들을 ..

비 _ 한용운

비 한용운 비는 가장 큰 권위를 가지고,가장 좋은 기회를 줍니다.비는 해를 가리고 하늘을 가리고,세상 사람의 눈을 가립니다. 그러나 비는 번개와 무지개를 가리지 않습니다.나는 번개가 되어 무지개를 타고,당신에게가서 사랑의 팔에감기고자 합니다. 비오는 날 가만히 가서 당신의 침묵을 가져온대도,당신의 주인은 알 수가 없습니다.만일 당신이 비오는 날에 오신다면,나는 연잎으로 웃옷을 지어서보내겠습니다. 당신이 비오는 날에 연잎옷을 입고 오시면,이 세상에는 알 사람이 없습니다.당신이 비 가운데로 가만히 오셔서나의 눈물을 가져가신대도영원한 비밀이 될 것입니다.비는 가장 큰 권위를 가지고,가장 좋은 기회를 줍니다. * 2025년 7월 17일 목요일입니다.삶은 많이 달라지는 ..

방문객 _ 정현종

방문객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그의 과거와현재와그리고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 2025년 7월 16일 수요일입니다.결국 모든 것은 사람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입니다.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 Visitors Hyunjong JungThe arrival of a man isactually a tremend..

즐거운 편지 _ 황동규

즐거운 편지 황동규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다만 그 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 2025년 7월15일 화요일입니다.즐거움은 본인이 스스로 만드는 법입니다.주변의 작은 즐거움들을 찾는 하루 되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