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시 한 편_좋은글, 일기

퓨즈가 나간 숲 _ 한혜영

시 쓰는 마케터 2022. 5. 13. 08:17

 

 

퓨즈가 나간 숲

 

                               한혜영

 

 

퓨즈가 나간 숲은 깜깜하다. 

나무 꼭대기 새집조차 어둡다.

길이란 길은 모두 지워지고 온전한 것이 있다면

푸르던 기억에 항거하는 단단한 그리움이다.

한 계절 사랑의 불 환하게 밝혔던 나무들 열매들 그리고 새들,

그 사랑의 흔적을 죄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물론 그냥 상처다. 이 겨울의 어둠 아니 한줄기 빛을 참고,

그래 빛이야말로 얼마나 많은 것들에게 상처가 되었나.

눈부신, 찬란한, 아름다운 따위의 형용사와 눈이 맞아 저지른 빛의 횡포,

가지마다 넘치는 축복인양 위선의 잎새 덕지덕지 달아주며 오늘의 상처를 마련했었다.

누구라도 헛발 자주 내딛고 나뒹굴던 시절,

쌈짓돈 마냥 숨겨둔 사랑의 잎새 하나만 있어도 가슴은 이리 훗훗한 그리움이다.

어딘가에 한 뭉치 퓨즈가 분명 있을 것이다.

계절과 계절의 끈을 잇고 명치 끝을 꾸욱 누르면

혼곤한 잠의 머리 절레절레 흔들며 숲은 그날처럼 홀연히 일어날 것이다.

때문에 새들은 이 겨울 떠나지 않고 하늘 받들어 빈 숲을 지키고 있다.

 

 

* 2022년 5월 13일 금요일입니다.

깊이가 없으면 시간이 지나면 정체가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한 주 마무리 잘 하시고 새로운 퓨즈를 마련하는 주말 되세요.

 

홍승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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