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시 300

지구 신발 _ 함민복

지구 신발 함민복 너 지구 신발 신어 봤니? 맨발로 뻘에 한번 들어가 봐 말랑말랑한 뻘이 간질간질 발가락 사이로 스며들며 금방 발에 딱 맞는 신발 한 켤례가 된다 그게 지구 신발이야 지구 신발은 까칠까칠 칠게 발에도 낭창낭창 도요새 발에도 보들보들 아이들 발에도 우락부락 어른들 발에도 다 딱 맞아 지구 신발 한번 꼭 신어 보렴 * 2020년 4월 8일 수요일입니다. 맨발로 땅을 밟고 흙을 밟아 본게 언제이신가요? 바쁜 일상중에도 소소로운 여유를 찾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멀리 가는 물 _ 도종환

멀리 가는 물 도종환 어떤 강물이든 처음엔 맑은 마음 가벼운 걸음으로 산골짝을 나선다.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해 가는 물줄기는 그러나 세상 속을 지나면서 흐린 손으로 옆에 서는 물과도 만나야 한다. 이미 더럽혀진 물이나 썩을 대로 썩은 물과도 만나야 한다. 이 세상 그런 여러 물과 만나며 그만 거기 멈추어 버리는 물은 얼마나 많은가. 제 몸도 버리고 마음도 삭은 채 길을 잃은 물들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다시 제 모습으로 돌아오는 물을 보라. 흐린 것들까지 흐리지 않게 만들어 데리고 가는 물을 보라 결국 다시 맑아지며 먼길을 가지 않는가. 때묻은 많은 것들과 함께 섞여 흐르지만 본래의 제 심성을 다 이지러뜨리지 않으며 제 얼굴 제 마음을 잃지 않으며 멀리 가는 물이 있지 않는가. * 2020년 4월 7일..

내 마음은 _ 김동명

내 마음은 김동명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저어 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같이 그대 뱃전에 부서지리다. 내 마음은 촛불이오 그대 저 문을 닫아 주오. 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 고요히 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 없이 타오리다. * 2020년 3월 30일 월요일입니다. 마음이 아름답지 못한 사람은 언행에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선한 마음을 갖는 한 주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풀잎이 아름다운 이유 _ 김무화

풀잎이 아름다운 이유 김무화 풀잎이 아름다운 이유는 바람에 흔들리기 때문이다. 풀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은 바람의 향기를 알았기 때문이다. 바람 앞에 고개 숙일 줄 아는 풀잎은 바람의 향기를 사랑할 뿐 절대 바람에 꺾이지 않는다. 풀잎이 아름다운 것은 바람의 향기를 사랑하고도 그 바람에 꺾이지 않기 때문이다. * 2020년 3월 25일 수요일입니다. 흔들리지 않으면 부러지기 마련입니다. 부드러운 유연함을 갖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너도 느리게 살아봐 _ 장영희

너도 느리게 살아봐 장영희 수술과 암술이 어느 봄날 벌 나비를 만나 눈빛 주고받고 하늘 여행 다니는 바람과 어울려 향기롭게 사랑하면 튼실한 씨앗 품을 수 있지. 그 사랑 깨달으려면 아주 천천히 가면서 느리게 살아야 한다. 너울너울 춤추며 산 넘고 물 건너는 빛나는 민들레 홀씨 그 질긴 생명의 경이로움 알려면 꼭 그만큼 천천히 걸어야 한단다. 번쩍 하고 지나가는 관계 속에서는 다사로운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하고 사랑 한 올 나누지 못한다 쏜살같이 살면 마음의 눈으로 봐야 할 것 볼 수 없단다. 마음의 절름밭이일수록 생각이 외곬으로 기울수록 느리게 살아야 하는 의미를 가슴에 새겨야 한단다. 아이야 , 너도 느리게 살아 봐. * 2020년 3월 23일 월요일입니다. 느리게 천천히 보아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여유 _ 헨리 데이비스

여유 헨리 데이비스 그것이 무슨 인생인가, 근심으로 가득 차 잠시 멈춰 서 바라볼 시간조차 없다면. 나뭇가지 아래서 양과 소의 순수한 눈길에 펼쳐진 풍경을 차분히 바라볼 시간이 없다면. 숲을 지나면서 수풀 속에 도토리를 숨기는 작은 다람쥐들을 바라볼 시간이 없다면. 대낮에도 마치 밤하늘처럼 반짝이는 별들을 가득 품은 시냇물을 바라볼 시간이 없다면. 아름다운 여인의 다정한 눈길에 고개를 돌려 춤추는 그 고운 발을 바라볼 시간이 없다면. 눈가에서 시작된 그녀의 환한 미소가 입가로 번질 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다면. 얼마나 가여운 인생인가, 근심으로 가득 차 잠시 멈춰 서 바라볼 시간조차 없다면. * 2020년 3월 19일 목요일입니다. 오늘 오후에는 태풍급 바람이 분다고 하네요. 바쁜 시간 속에서도 잠깐의 ..

인생 _ 김정한

인생 김정한 매일 조금씩 떠납니다 아름다운 시간과도 조금씩 이별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도 조금씩 이별을 합니다 때로는 미칠 만큼 가슴 가득히 사랑의 꽃을 피운 적도 있었고 때로는 그리움에 온밤을 새하얗게 지새운 적도 있었지만 오늘은 다 비우고 떠나렵니다 이제, 오랜 고뇌 저편에 상실의 우울증으로 있던 나를 버려두고 빈 몸으로 먼 길을 떠나렵니다 한걸음 두 걸음 옮길 때 마다 매달리며 쫓아오는 물결 같은 그리움이 나를 힘들게 하지만 살다 보면 꺾이고 부딪치고 채이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생의 무대, 그 처연한 시간 위에서 각본대로 살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때로는 지독한 사랑이 나를 여러 번 살렸고 때로는 지독한 외로움이 나를 수없이 죽였습니다 금새 찾아온 가을도 떠나는 소리가 들립니다 구름 가..

너와 나는 _ 이해인

너와 나는 이해인 돌아도 끝없는 둥근 세상 너와 나는 밤낮을 같이하는 두 개의 시계바늘 네가 길면 나는 짧고 네가 짧으면 나는 길고 사랑으로 못 박히면 돌이킬 수 없네 서로를 받쳐 주는 원 안에 빛을 향해 눈뜨는 숙명의 반려 한순간도 쉴 틈이 없는 너와 나는 영원을 똑딱이는 두 개의 시계바늘 * 2020년 3월 13일 금요일입니다. 코로나 펜데믹 선언으로 전 세계가 패닉 상태입니다. 치료제 개발, 확산세 감소 등 하루 빨리 상황이 개선되길 기원합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건강한 주말 보내세요. 홍승환 드림

꽃을 보려면 _ 정호승

꽃을 보려면 정호승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보려면 고요히 눈이 녹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잎을 보려면 흙의 가슴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어머니를 만나려면 들에 나가 먼저 봄이 되어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보려면 평생 버리지 않았던 칼을 버려라 * 2020년 3월 11일 수요일입니다. 편견과 아집을 버리지 않으면 변화를 만들 수 없습니다. 나쁜 습관들을 버리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다시 피는 꽃 _ 도종환

다시 피는 꽃 도종환 가장 아름다운 걸 버릴 줄 알아 꽃은 다시 핀다 제 몸 가장 빛나는 꽃을 저를 키워준 들판에 거름으로 돌려보낼 줄 알아 꽃은 봄이면 다시 살아난다 가장 소중한 걸 미련없이 버릴 줄 알아 나무는 다시 푸른 잎을 낸다 하늘 아래 가장 자랑스럽던 열매도 저를 있게 한 숲이 원하면 되돌려줄 줄 알아 나무는 봄이면 다시 생명을 얻는다 변치 않고 아름답게 있는 것은 없다 영원히 가진 것을 누릴 수는 없다 나무도 풀 한 포기도 사람도 그걸 바라는 건 욕심이다 바다까지 갔다가 제가 태어난 강으로 돌아와 제 목숨 다 던져 수천의 알을 낳고 조용히 물밑으로 돌아가는 연어를 보라 물고기 한마리도 영원히 살고자 할 때는 저를 버리고 가는 걸 보라 저를 살게 한 강물의 소리 알아듣고 물밑 가장 낮은 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