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시 1331

따뜻한 얼음 _ 박남준

따뜻한 얼음                           박남준  옷을 껴입듯 한겹 또 한겹추위가 더할수록 얼음의 두께가 깊어지는 것은버들치며 송사리 품 안에 숨 쉬는 것들을따뜻하게 키우고 싶기 때문이다철모르는 돌팔매로부터겁 많은 물고기들을 두 눈 동그란 것들을놀라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얼음이 맑고 반짝이는 것은그 아래 작고 여린 것들이 푸른빛을 잃지 않고봄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겨울 모진 것 그래도 견딜 만한 것은제 몸의 온기란 온기 세상에 다 전하고스스로 차디찬 알몸의 몸이 되어버린 얼음이 있기 때문이다쫓기고 내몰린 것들을 껴안고 눈물지어본 이들은 알 것이다햇살 아래 녹아내린 얼음의 투명한 눈물자위를아 몸을 다 바쳐서 피워내는 사랑이라니그 빛나는 것이라니  * 2024년 11월 26..

하루를 습작하며 _ 목필균

하루를 습작하며                               목필균  어디 다시 살아볼 하루가 있었나요언제나 잘 살아보겠다고 마음만 먹었지 마음의 텃밭에 조각조각 나누어진하루를 호미질 하며돌멩이 골라내고 잡풀 뽑아주지만모래알처럼 부서지는 토질에 실하지 못한들꽃 모종이 시들어져 있네요가시 돋친 선인장이라면 모를까누가 모진 모래바람 그리 잘 견디겠어요 일기장 속엔 수없이 반성문을 써가면서기름진 거름 한 줌 뿌려주면서깊은 밤까지 애태워 보아도완결된 하루는 없고붉게 퇴고한 원고지만 하루치 무게로내려앉네요  * 2024년 11월 25일 월요일입니다.아무리 좋은 책을 읽고 좋은 말을 들어도행동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 것도 바뀌지 않습니다.움직이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후회는 아름답다 _ 심재휘

후회는 아름답다                                심재휘  나태한 천장을 향해 중얼거려 보지만보고 싶다는 말은 이제 관습적입니다 햇빛을 향해 몸을 뒤척이는 창가의 꽃들그들의 맹목은 또 얼마나 무섭습니까 비록 우리가 가진 것이 때늦은 후회밖에 없다 할지라도후회는 늘 절실하므로 아름다웠습니다 어떤 그리움보다도나의 후회 속에서 그대는 늘 보고 싶었습니다  * 2024년 11월 22일 금요일 절기상 소설입니다.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는 모든 걸 내려놓는 게 방법일 수 있습니다.가볍게 움직이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요요 _ 정끝별

요요                       정끝별  당신이 나를 지루해할까 봐내가 먼저 멀리 당신을 던져봅니다달아날 수 있도록 풀어줌으로써나는 당신을 포기합니다포기의 복수포기의 쾌락그리고 포기의 보상 당신은 늘 첫 떨림으로 달려옵니다 던졌다 당기고풀렸다 되감기고사라졌다 되돌아오는 천 갈래 던져진 그물 길오요, 오요, 오 요요  * 2024년 11월 20일 수요일입니다.시작하기에 완벽한 순간은 없습니다.지금 바로 시작해보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무말랭이 _ 안도현

무말랭이                         안도현  외할머니가 살점을 납작납작하게 썰어말리고 있다내 입에 넣어 씹기 좋을만큼 가지런해서 슬프다가을볕이 살점 위에 감미료를 편편(片片) 뿌리고 있다 몸에 남은 물기를 꼭 짜버리고이레 만에 외할머니는 꼬들꼬들해졌다 그해 가을 나는 외갓집 고방에서 귀뚜라미가 되어 글썽글썽 울었다  * 2024년 11월 19일 화요일입니다.적당한 생각은 지혜를 주지만 과도한 생각은 때를 놓치게 합니다.생각보다는 실행하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가을 하늘 _ 이해인

가을 하늘                         이해인  맑고 푸르게웃기만 하는하늘은 천국 그 아래서누구도죄를 지을 수 없다하느님 엄마도거기 계시다 모질게야단치지 않고도나를 참회하게 만드는하늘은나의 사랑  * 2024년 11월 18일 월요일입니다.갑자기 겨울에 가까운 날씨가 되었네요.감기 조심하시고 건강한 한 주 되세요. 홍승환 드림

개떡 _ 이향아

개떡                         이향아  '개떡'이라는 말을마치 세상을 포기하듯 발음하지 말라.그 수더분하고 찰진 반죽을 알고 있다면그러지는 못할 것이다.재수가 개떡 같은 날.그렇게 수더분하고 끈끈한 운수가흔치 않은 인정으로 옷자락을 끌고가지 말어 아주 가지는 말어사정없이 붙잡아 엉겨붙어서개떡이 사촌보다 편안하게 기대는 날.그의 무릎을 베고 누울까 말까개떡처럼 일이 순히 풀리는 날이면이러다 열에 하나 혹시라도 백에 하나호강스런 걱정도 하면서 신수패를 뗀다.  * 2024년 11월 15일 금요일입니다.행복은 몸에 좋습니다. 하지만 마음의 힘을 길러주는 것은 슬픔입니다.건강한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가을빛 _ 이해인

가을빛                       이해인  가을엔 바람도하늘빛이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주고 받은 말들도기도의 말들도모두 너무 투명해서두려운 가을빛이다 들국화와 억새풀이 바람 속에그리움을 풀어헤친 언덕길에서 우린 모두 말을 아끼며깊어지고 싶다  * 2024년 11월 14일 목요일 수능일입니다.수험생과 수험생 부모님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스스로를 칭찬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부드러운 직선 _ 도종환

부드러운 직선                               도종환  높은 구름이 지나가는 쪽빛 하늘 아래사뿐히 추켜세운 추녀를 보라 한다뒷산의 너그러운 능선과 조화를 이룬지붕의 부드러운 선을 보라 한다어깨를 두드리며 그는 내게이제 다시 부드러워지라 한다몇 발짝 물러서서 흐르듯 이어지는 처마를 보며나도 웃음으로 답하며 고개를 끄덕인다그러나 저 유려한 곡선의 집 한 채가곧게 다듬은 나무들로 이루어진 것을 본다휘어지지 않는 정신들이있어야 할 곳마다 자리 잡아지붕을 받치고 있는 걸 본다사철 푸른 홍송 숲에 묻혀 모나지 않게담백하게 뒷산 품에 들어 있는 절집이굽은 나무로 지어져 있지 않음을 본다한 생애를 곧게 산 나무의 직선이 모여가장 부드러운 자태로 않아 있는  * 2024년 11월 12일 화요일입니다..

가을의 기도 _ 김현승

가을의 기도                          김현승  가을에는기도하게 하소서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사랑하게 하소서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호올로 있게 하소서나의 영혼,굽이치는 바다와백합의 골짜기를 지나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 2024년 11월 11일 월요일입니다.하기 싫은 일들을 미루다 보면 끝내 하지 못하는 법입니다.큰 짐이 되기 전에 미리미리 해결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