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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호한 것들 _ 정병근

단호한 것들 정병근 나무는 서 있는 한 모습으로 나의 눈을 푸르게 길들이고 물은 흐르는 한 천성으로 내 귀를 바다에까지 열어 놓는다 발에 밟히면서 잘 움직거리지 않는 돌들 간혹, 천 길 낭떠러지로 내 걸음을 막는다 부디 거스르지 마라, 하찮은 맹세에도 입술 베이는 풀의 결기는 있다 보지 않아도 아무 산 그 어디엔 원추리 꽃 활짝 피어서 지금쯤 한 비바람 맞으며 단호하게 지고 있을 걸 서 있는 것들, 흔들리는 것들, 잘 움직이지 않는 것들, 환하게 피고 지는 것들 추호의 망설임도 한 점 미련도 없이 제 갈길 가는 것들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들 * 2022년 6월 3일 금요일입니다. 때론 단호하게 맺고 끊을 필요가 있습니다. 한 주 마무리 잘 하시고 편안한 주말 되세요. 홍승환 드림

파란 잉크 주식회사 _ 이중원

파란 잉크 주식회사 이중원 새초름한 잎사귀에 햇살이 내리쬐어도 버스가 남기고 간 잿빛의 연기만이 망막에 재고가 남은 유일한 색채일까 발 아래 선이 있고 내 뒤로 줄이 있다 느려지는 발자국을 억지로 잡아끌어 통근의 컨베이어에 실려 가는 유리병 모래알 흐르듯이 부서지는 빛줄기가 정류장 팻말 옆의 풀 허리에 한껏 고여 메마른 마개 틈새에 떨어지는 오전 10시 빵, 하는 경적음에 뜬 눈이 부시도록 생생하게 흔들리는 푸릇한 잡초들만 염가에 세일 중인 창공, 한없이 싱그럽다 * 2022년 6월 2일 목요일입니다. 새로운 한 달을 선물 받았습니다. 파란 하늘처럼 싱그러운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내가 좋아하는 사람 _ 류시화

내가 좋아하는 사람 류시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뭇잎의 집합이 나뭇잎들이 아니라 나무라고 말하는 사람 꽃의 집합이 꽃들이 아니라 봄이라는 걸 아는 사람 물방울의 집합이 파도이고 파도의 집합이 바다라고 믿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길의 집합이 길들이 아니라 여행이라는 걸 발견한 사람 절망의 집합이 절망들이 아니라 희망이 될 수도 있음을 슬픔의 집합이 슬픔들이 아니라 힘이 될 수도 있음을 잊지 않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벽의 집합이 벽들이 아니라 감옥임을 깨달은 사람 하지만 문은 벽에 산다는 걸 기억하는 사람 날개의 집합이 날개들이 아니라 비상임을 믿는 사람 그리움의 집합이 사랑임을 아는 사람 * 2022년 5월 31일 화요일입니다. 때론 현상을 다르게 해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긍정으로 해석하는 ..

경고 _ 김제숙

경고 김제숙 마음이 살지 않는 빈집은 철거합니다 진심 없는 간보기는 과감히 사절합니다 포장만 요란한 사랑은 영원히 결별입니다 여적 못 꺼낸 마음 버스 그만 떠납니다 쟁여놓은 시간들 유효기간 코앞입니다 인생은 리바이벌이 없습니다, 결단코! * 2022년 5월 30일 월요일입니다. 새로움을 원할 때는 기존의 편하고 익숙함을 버려야 합니다. 새롭게 출발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풀잎에 맺힌 _ 성석제

풀잎에 맺힌 성석제 톡 떨어지고 톡 오가며 톡 마시고 먹고 톡 소리지르고 톡 해해거리고 톡 따고 톡 잃고 톡 집권하고 톡 실각하고 톡 죽는다 톡 톡 톡 톡 톡 톡 톡 토독 토도독 그리고 그 밖의 수많은 톡 토독이여 너의 안녕이여 커다란 눈물 한 방울, 풀잎에 맺힌 이슬에 무엇이 다르랴 * 2022년 5월 27일 금요일입니다. 하늘이 예술 작품 같은 아침입니다. 한 주 마무리 잘 하시고 편안한 주말 되세요. 홍승환 드림

장미의 저녁 _ 이윤정

장미의 저녁 이윤정 장미는 우리에게 저녁을 보여 준다 안쪽에 낯선 햇살이 있다 낯선 향기를 한 장씩 꺼내 준다 장미는 우리에게 입맞춤을 던진다 한 잎 두 잎 던지는 진한 입맞춤으로 저녁을 건내준다 내가 만나는 장미와 장미 사이로 저녁이 지나간다 장미는 장미 사이를 들여다보며 사람들이 걸어간다 내가 보는 장미와 장미가 보는 나 사이 하나 되는 순간에 저녁은 지나간다 기울어져 가는 저녁 사이로 장미가 핀다 당신으로 하여 저녁이 붉어지는 장미는 내일도 저녁을 들고 올까 나의 장미는 당신이 들고 오는 저녁이다 * 2022년 5월 26일 목요일입니다. 거리 곳곳에 붉은 장미가 한창입니다. 5월의 맑은 하늘과 함께 하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서울역 _ 유안진

서울역 유안진 나 자신이면서도 나 아니게 사는 나처럼 서울이면서도 서울이 아닌 여기는 세상의 한복판 벌집 쑤신 듯 팔도의 목청 제 빛깔대로 잉잉거리는 여기는 바람 일고 물결 엉키는 가슴팍도 한가운데 뒤웅박팔자들 어긋목지는 여기는 만남은 헤어짐과 떠남은 돌아옴과 동행되는 나란한 철길에서 문득 터득되는 세상살이의 이치 나 자신이면서도 나 아니어야 살 수 있는 나처럼 서울이면서도 서울이 아니어야 구실하는 역아 역아 서울역아 * 2022년 5월 25일 수요일입니다. 자유로움은 능력을 전제로 할 때 빛을 발하는 법입니다. 실력도 없고 열정도 없는 분들이 자유를 논하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결례와 허술함을 범하지 않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인생의 길 _ 정연복

인생의 길 정연복 인생의 길은 산행(山行) 같은 것 가파른 오르막 다음에는 편안한 내리막이 있고 오르막의 길이 길면 내리막의 길도 덩달아 길어진다 그래서 인생은 그럭저럭 살아갈 만한 것 완전한 행복이나 완전한 불행은 세상에 없는 것 살아가는 일이 괴롭고 슬픈 날에는 인생의 오르막을 걷고 있다고 마음 편히 생각하라 머잖아 그 오르막의 끝에 기쁨과 행복의 길이 있음을 기억하라 내가 나를 위로하며 한 발 한 발 걸어가는 인생의 길은 그래서 알록달록 총천연색 길 오르막과 내리막이 교차하는 고달파도 고마운 길이여 오! 너와 나의 인생의 길이여 * 2022년 5월 24일 화요일입니다. 언제나 좋음과 나쁨을 같이 생각해야 합니다. 다음을 생각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길 _ 정호승

길 정호승 나 돌아갈 수 없어라 너에게로 그리운 사람들의 별빛이 되어 아리랑을 부르는 저녁별 되어 내 굳이 너를 마지막 본 날을 잊어버리자고 하얀 손수건을 흔들며 울어보아도 하늘에는 비 내리고 별들도 길을 잃어 나 돌아갈 수 없어라 너에게로 * 2022년 5월 23일 월요일입니다. 새벽에 손흥민 선수가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이 되었습니다. 손기정, 차범근, 박찬호, 박세리, 김연아, 박태환... 이 조그마한 나라에서, 정말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자랑스런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초대 _ 류시화

초대 류시화 손을 내밀어 보라 다친 새를 초대하듯이 가만히 날개를 접고 있는 자신에게 상처에게 손을 내밀어 보라 언 꽃나무를 초대하듯이 겹겹이 꽃잎을 오므리고 있는 자신에게 신비에게 손을 내밀어 보라 부서진 적 있는 심장을 초대하듯이 숨죽이고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자신에게 기쁨에게 * 2022년 5월 20일 금요일입니다. 가끔은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허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족함을 즐기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