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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_ 이준관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이준관 구부러진 길을 가면 나비의 밥그릇 같은 민들레를 만날 수 있고 감자를 심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날이 저물면 울타리 너머로 밥 먹으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구부러진 하천에 물고기가 많이 모여 살 듯이 들꽃도 많이 피고 별도 많이 뜨는 구부러진 길. 구부러진 길은 산을 품고 마음을 품고 구불구불 간다. 그 구부러진 길처럼 살아온 사람이 나는 또한 좋다. 흙투성이 감자처럼 울퉁불퉁 살아온 사람의 구불구불 구부러진 삶이 좋다. 구부러진 주름살에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고 가는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 * 2022년 6월 20일 월요일입니다. 때로는 느리게 돌아가는 길에서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즐거운 한 주의 시작 되세요. 홍승환 드림

마중물과 마중불 _ 하청호

마중물과 마중불 하청호 외갓집 낡은 펌프는 마중물을 넣어야 물이 나온다.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땅 속 깊은 곳 물을 이끌어 올려주는 거다. 아궁이에 불을 땔 때도 마중불이 있어야 한다. 한 개비 성냥불이 마중불이 되어 나무 속 단단히 쟁여져 있는 불을 지피는 거다. 나도 누군가의 마음을 이끌어 올려주는 마중물이 되고 싶다. 나도 누군가의 마음을 따뜻하게 지펴주는 마중불이 되고 싶다. * 2022년 6월 17일 금요일입니다. 어려운 시작을 도와주는 누군가가 있으면 큰 힘이 됩니다. 누군가에게 마중물과 마중불이 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사람 _ 박찬

사람 박찬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생각이 무슨 솔굉이처럼 뭉쳐 팍팍한 사람 말고 새참 무렵 또랑에 휘휘 손 씻고 쉰내 나는 보리밥 한 사발 찬물에 말아 나눌 낯 모를 순한 사람 그런 사람 하나쯤 만나고 싶다 * 2022년 6월 16일 목요일입니다. 착하고 순한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주변을 돌아보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우리가 물이 되어 _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 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 만 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 2022년 6월 15일 수요일입니다. 유연, 포용, 변화... 물에게서 배웁니다. 비 오는 수요일 건강한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느낌 _ 까비르

느낌 까비르 '앎'이라는 말보다 '느낌'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더 좋다 느낌 쪽이 보다 본질에 가깝기 때문이다. '앎'은 두뇌적이다. 그러나 '느낌'은 전체적이다. 느낄 때 머리만으로 느끼지 않는다. 가슴만으로 느끼지 않는다. 그대 전 존재의 세포 하나하나가 그대로 느낌 그 자체가 되어 느낀다. 느낌은 전체적이다. 느낌은 유기적이다. * 2022년 6월 14일 화요일입니다.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이해하고 느끼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내 안의 소금 원피스 _ 김혜순

내 안의 소금 원피스 김혜순 슬픔을 참으면 몸에서 소금이 난다 짜디짠 당신의 표정 일평생 바다의 격렬한 타격에 강타당한 외로운 섬 같은 짐승의 눈빛 짧은 속눈썹 울타리 사이 파랑주의보 높아 바닷물 들이치는 날도 있었지만 소금의 건축이 허물어지지는 않았다 따가운 흐느낌처럼 손끝에서 피던 소금꽃 소금, 내 고꾸라진 그림자를 가루 내어 가로등 아래 뿌렸다 소금, 내 몸속에서 유전하는 바다의 건축 소금, 우리는 부둥켜안고 서로의 몸속에서 바다를 채집하려 했다. 오늘은 일어나자마자 염전이 문을 열었다. 나는 아침부터 바다의 건축이 올라오는 소리 들었다. 나는 몸속에 입었다. 소금 원피스 한 벌. * 2022년 6월 13일 월요일입니다. 해결되지 않은 과거는 언제든 현재의 나에게 다시 찾아 온다고 합니다. 문제를 ..

당신에겐 눈물이 있다 _ 이어령

당신에겐 눈물이 있다 이어령 당신에게 눈물이 있다는 것은 영혼이 있다는 것 사랑이 있다는 것 누군가를 사랑하고 애타게 그리워한다는 것 그리고 뉘우친다는 것 내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 흘리는 눈물은 비가 그치자 나타난 무지개처럼 아름답다 눈물에 젖은 빵을 먹는 것은 가난 때문이 아니다 가난을 넘어서는 사랑의 눈물에서만 영혼의 무지개가 뜬다. * 2022년 6월 10일 금요일입니다. 인간다움이 있어야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법입니다. 한 주 마무리 잘 하시고 편안한 주말 되세요. 홍승환 드림

새들도 언어로 소식을 전한다 _ 유진택

새들도 언어로 소식을 전한다 유진택 산속도 오래되면 등뼈가 휘어지는 법이다 산등성이마다 튀어나온 굵은 바위들이 봄날이면 몸살나게 뒤척인다 산등성이 곳곳에 박힌 굵은 뿌리를 홍역처럼 꽃망울을 앓아 피우고 고사목으로 굳어진 나무, 등뼈처럼 허리가 휜다 이 깊은 산속에도 진달래는 지천인데 그 꽃향기 아랫마을 내려가지 못해 산속에만 꽃내음이 가득 찬다 진달래 뿌리는 엉키고 엉켜 그 속에서 잔뿌리가 나고 꽃들도 지치고 지쳐 여린 꽃잎 다시 지는데 아무도 없는 이 산속 진달래는 왜 피는가 보아줄 이도 없는데 연지곤지 예쁘게 단장하고 분홍색 색동저고리로 손짓하지만 나는 잘 안다, 새들이 수시로 들락이는 저 산속 낙타처럼 누워 있는 산등성이로 와서 우리들이 알 수 없는 언어로 몇마디 지껄이고 가면 진달래는 더 붉어 홍..

시간 _ 조병화

시간 조병화 시간도 머물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동안은 묵묵히 흐르는 유구한 시간도 발을 멈추고 사랑, 그 옆에서 기다려주곤 합니다. 덧없는 것이 시간이라기도 하고 허무한 것이 시간이라기도 하고 무정한 것이 시간이라기도 하고 잔인한 것이 시간이라기도 하고 속절없는 것이 시간이라기도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 만큼 사랑 옆에선 발을 멈추고 시간이 중단된 우주를 마련해 주곤 합니다. 언제까지나, 그러다간 사랑이 지나가면 겉잡을 수 없는 시간의 속도, 아, 그러한 세월의 길을, 사람은 인생이라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속절없이. * 2022년 6월 8일 수요일입니다. 시간의 속도는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시간을 조율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6월엔 내가 _ 이해인

6월엔 내가 이해인 숲속에 나무들이 일제히 낯을 씻고 환호하는 유월 유월엔 내가 빨갛게 목타는 장미가 되고 끝없는 산향기에 흠뻑 취하는 뻐꾸기가 된다 생명을 향해 하얗게 쏟아 버린 아카시아 꽃타래 유월엔 내가 사랑하는 이를 위해 더욱 살아 산기슭에 엎디어 찬비 맞아도 좋은 바위가 된다. * 2022년 6월 7일 화요일입니다. 현충일 연휴 편히 잘 쉬셨나요? 쉼표 다음 문장을 잘 써 내려가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