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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_ 이외수

1월 이외수 아무도 가지 않은 길 위에 내가 서 있다 이제는 뒤돌아보지 않겠다 한밤중에 바람은 날개를 푸득거리며 몸부림치고 절망의 수풀들 무성하게 자라 오르는 망명지 아무리 아픈 진실도 아직은 꽃이 되지 않는다 내가 기다리는 해빙기는 어디쯤 있을까 얼음 밑으로 소리 죽여 흐르는 불면의 강물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할수록 시간은 날카로운 파편으로 추억을 살해한다 모래바람 서걱거리는 황무지 얼마나 더 걸어야 내가 심은 감성의 낱말들 해맑은 풀꽃으로 피어날까 오랜 폭설 끝에 하늘은 이마를 드러내고 나무들 결빙된 햇빛의 미립자를 털어 내며 일어선다 백색의 풍경 속으로 날아가는 새 한 마리 눈부시다 * 2021년 1월 11일 월요일입니다. 끝까지 해낸다는 것이 성공의 최소 필요충분조건입니다. 지속할 수 있는 최선을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내린다 나타샤를 사랑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은앙응앙 울을 것이다 * 2021년 1월 7일 목요일입니다. 어제 저녁 내린 눈으로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버렸네요. 체감온도 영하 2..

겨울 고해 _ 홍수희

겨울 고해 홍수희 겨울밤엔 하늘도 빙판길입니다 내 마음 외로울 때마다 하나 둘 쏘아 올렸던 작은 기도 점점이 차가운 하늘밭에서 자꾸만 미끄러져 떨어지더니 잠들었던 내 무딘 영혼에 날카로운 파편으로 아프게 박혀옵니다 사랑이 되지 못한 바램 같은 것 실천이 되지 못한 독백 같은 것 더러는 아아, 별이 되지 못한 희망 같은 것 다시 돌아다보면 너를 위한 기도마저도 나를 위한 안위의 기도였다는 그것 온 세상이 꽁꽁 얼어 눈빛이 맑아질 때야 비로소 보이는 그것 겨울은, 나에게도 숨어있던 나를 보게 합니다 * 2021년 1월 6일 수요일입니다. 동장군의 위력을 발휘하는 아침입니다. 건강한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길을 보면 - 박노해

길을 보면 박노해 길을 보면 눈물이 난다 누군가 처음 걸었던 길 없는 길 여러 사람이 걷고 걸어 길이 된 길 그 길 하나를 만들기 위해 앞서 걷다 쓰러져간 사람들 자신의 흰 뼈를 이정표로 세워두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떠나간 사람들 길을 걸으면 그 발자국 소리가 울린다 * 2021년 1월 5일 화요일입니다.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건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맨날 같은 길을 가서는 발전할 수 없습니다. 새로운 길을 도전해 보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새해 인사 _ 김현승

새해 인사 김현승 오늘은 오늘에만 서 있지 말고, 오늘은 내일과 또 오늘 사이를 발 굴러라. 건너 뛰듯 건너 뛰듯 오늘과 또 내일 사이를 뛰어라. 새옷 입고 아니, 헌옷이라도 빨아 입고, 널뛰듯 널뛰듯 이쪽과 저쪽 오늘과 내일의 리듬 사이를 발 굴러라 발 굴러라. 춤 추어라 춤 추어라. * 2021년 1월 4일 월요일 새해의 첫 출근일입니다. 자, 다시 한 번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달력 12장을 힘차게 출발 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평행선 _ 김남조

평행선 김남조 우리는 서로 만나본 적도 없지만 헤어져 본 적도 없습니다. 무슨 인연으로 태어났기에 어쩔 수 없는 거리를 두고 가야만 합니까 가까와지면 가까와질까 두려워하고 멀어지면 멀어질까 두려워하고 나는 그를 부르며 그는 나를 부르며 스스로를 져버리며 가야만 합니까 우리는 아직 하나가 되어본 적도 없지만은 둘이 되어본 적도 없습니다 * 2020년 12월 30일 수요일입니다. 매서운 추위를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아침입니다. 건강 챙기시고 차분히 한 해를 정리하는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12월이라는 종착역 _ 안성란

12월이라는 종착역 안성란 정신없이 달려갔다. 넘어지고 다치고 눈물을 흘리면서 달려간 길에 12월이라는 종착역에 도착하니 지나간 시간이 발목을 잡아 놓고 돌아보는 맑은 눈동자를 1년이라는 상자에 소담스럽게 담아 놓았다. 생각할 틈도 없이 여유를 간직할 틈도 없이 정신없이 또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을 남겨 버린다. 지치지도 않고 주춤거리지도 않고 시간은 또 흘러 마음에 담은 일기장을 한 쪽 두 쪽 펼쳐 보게 한다. 만남과 이별을 되풀이 하는 인생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잃어버리는 삶이라지만 무엇을 얻었냐 보다 무엇을 잃어버렸는가를 먼저 생각하며 인생을 그려놓는 일기장에 버려야 하는 것을 기록하려고 한다. 살아야 한다는 것. 살아 있다는 것. 두 가지 모두 중요하겠지만 둘 중 하나를 간직해야 한다면 살아..

물처럼 흘러라 _ 법정스님

물처럼 흘러라 법정스님 사람은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로 살든 그 속에서 물이 흐르고 꽃이 피어날 수 있어야 한다. 물이 흘러야 막히지 않고 팍팍하지 않으며 침체되지 않는다. 물은 한 곳에 고이면, 그 생기를 잃고 부패하기 마련이다. 강물처럼 어디에 갇히지 않고 영원히 흐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 2020년 12월 28일 월요일입니다. 한 해의 마지막 주가 시작되었습니다. 정리와 계획의 한 주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성탄편지 _ 이해인

성탄편지 이해인 친구여, 알고 계시지요? 사랑하는 그대에게 제가 드릴 성탄 선물은 오래 전부터 가슴에 별이 되어 박힌 예수님의 사랑 그 사랑 안에 꽃피고 열매 맺은 우정의 기쁨과 평화인 것을. 슬픈 이를 위로하고 미운 이를 용서하며 우리 모두 누군가의 집이 되어 등불을 밝히고 싶은 성탄절 잊었던 이름들을 기억하고 먼데 있는 이들을 가까이 불러들이며 문을 엽니다. 죄가 많아 숨고 싶은 우리의 가난한 부끄러움도 기도로 봉헌하며 하얀 성탄을 맞이해야겠지요? 자연의 파괴로 앓고 있는 지구와 구원을 갈망하는 인류에게 구세주로 오시는 예수님을 우리 다시 그대에게 드립니다 일상의 삶 안에서 새로이 태어나는 주님의 뜻을 우리도 성모님처럼 겸손히 받아 안기로 해요. 그동안 못다 부른 감사의 노래를 함께 부르기로 해요. ..

12월의 독백 _ 오광수

12월의 독백 오광수 남은 달력 한 장이 작은 바람에도 팔랑거리는 세월인데 한 해를 채웠다는 가슴은 내놓을 게 없습니다. 욕심을 버리자고 다잡은 마음이었는데 손 하나는 펼치면서 뒤에 감춘 손은 꼭 쥐고 있는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비우면 채워지는 이치를 이젠 어렴풋이 알련만 한 치 앞도 모르는 숙맥이 되어 또 누굴 원망하며 미워합니다. 돌려보면 아쉬운 필름만이 허공에 돌고 다시 잡으려 손을 내밀어 봐도 기약의 언질도 받지 못한 채 빈손입니다. 그러나 그러나 말입니다. 해마다 이맘 때쯤 텅 빈 가슴을 또 드러내어도 내년에는 더 나을 것 같은 마음이 드는데 어쩝니까? * 2020년 12월 22일 목요일입니다. 연초에 세웠던 계획들을 정리해봐야 할 시기입니다. Plan-Do-See의 순환구조에서 검토하고 보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