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자 박노해 종자로 골라내진 씨앗들은 울부짖었다 가을날 똑같이 거두어졌건만 다들 고귀한 식탁 위에 오르는데 왜 나는 선택받지 못한 운명인지요 남들은 축복 속에 바쳐지는데 나는 바람 찬 허공에 매달려 온몸이 얼어붙고 말라가야 하는지요 씨앗들은 눈 녹은 찬물에 몸을 불리고 바람 찬 해토의 대지에 뿌려져 또 한 번 캄캄한 땅 속에 묻혀 살이 썩어내리고 뼈가 녹아내렸다 씨앗들은 침묵의 몸부림 속에 두 눈마저 감지 못하고 썩어 사라지며 숨이 넘어가는 최후의 그 순간, 마침내 자기를 마주쳤다 한 알의 씨앗이 수많은 불꽃이 되어 검은 대지에 피어나는 찬란한 새싹을 파릇파릇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위대한 첫 발을 내딛는 자신의 모습을 겨울에서 봄으로 죽음에서 부활로 한 생에서 영원으로 * 2021년 2월 16일 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