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시 953

소리를 위하여 _ 전재승

소리를 위하여                            전재승  깊은 밤,머리맡에 침잠하듯 들리는소리가 있다. 내 의식의 심연에조약돌 던지며가장 고요로운 시각에만 파문을 일으키며찾아오는 순례자가 있다. 아, 그 소리망각했던 기억의 저편 강에서들려오는 물무늬의 동그란 울림. 그 맑디맑은 공명음을 질긴 귀로 들으며시한 폭탄처럼 풀어지는시간의 태엽을온몸으로 감고 싶어진다. 나를 향하여 부르는단 한 번의 순간을 위하여이 밤을잠 못 이루고 깨어 있을 때,밤은 깊어도 잠은 멀다.  * 2024년 10월 29일 화요일입니다.가끔은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내버려둘 줄 알아야 합니다.바람에 몸을 맡겨보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가을에 오십시오 _ 송해월

가을에 오십시오                                  송해월  그대가을에 오십시오 국화꽃 향기천지에 빗물처럼 스민 날 서늘한 바람에까츨한 우리 살갗거듭거듭 부비어대도 모자라기만 할가을에 오십시오 그리움은행잎처럼 노오랗게 물들면한 잎 한 잎 또옥 똑 따내어눈물로 쓴 연서 바람에 실려 보내지 않고는몸살이 나 못 배길 것 같은 그런 날 날이면 날마다그리움에 죽어가던 내 설움에도비로소 난 이름을 붙이렵니다내 영혼을 던졌노라고 그대 가을에 오십시오  * 2024년 10월 28일 월요일입니다.쉼표가 없는 악보는 노래가 될 수 없습니다.마음의 여유를 찾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간격 _ 안도현

간격                       안도현  숲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때는 몰랐다나무와 나무가 모여어깨와 어깨를 대고숲을 이루는 줄 알았다나무와 나무 사이넓거나 좁은 간격이 있다는 걸생각하지 못했다벌어질 대로 최대한 벌어진,한데 붙으면 도저히 안 되는,기어이 떨어져 서 있어야 하는,나무와 나무 사이그 간격과 간격이 모여울울창창 숲을 이룬다는 것을산불이 휩쓸고 지나간숲에 들어가 보고서야 알았다  * 2024년 10월 25일 금요일입니다.비어 있어야 필요할 때 쓸모가 있는 법입니다.여백을 만드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아무도 없는 별 _ 도종환

아무도 없는 별                                  도종환  아무도 없는 별에선그대도 나도 살 수 없다달맞이꽃이 피지 않는 별에선해바라기도 함께 피어나지 않고폭풍우와 해일이 없는 곳에선등 푸른 물고기도 그대의 애인도살 수 없다때로는 화산이 터져 불줄기가온 땅을 휩쓸고 지나고그대를 미워하는 마음 산을 덮어도미움과 사랑과 용서의 긴 밤이 없는 곳에선반딧불이 한 마리도 살 수 없다때로는 빗줄기가 마을을 다 덮고도 남았는데어느 날은 물 한 방울 만날 수 없어목마름으로 쓰러져도그 물로 인해 우리가 사는 것이다강물이 흐르지 않는 별에선그대도 나도 살 수 없다낙엽이 지고 산불에산맥의 허리가 다 타들어가도외로운 긴 밤과 기다림의 새벽이 있어서우리가 이 별에 사는 것이다  * 2024년 10월 2..

참나무의 상처 _ 안국훈

참나무의 상처                            안국훈  참나무는 날마다그늘 내려놓고 참바람 인다톡톡 도토리 흙으로 돌아간 자리그리움은 추억의 속도보다 빨리 자란다 어둠 속에 홀로 머문다한동안 두 눈 꼭 감은 채로먼 하늘 바라보면 눈물겨운 삶어디 너 혼자뿐이더냐 오래된 삶의 흔적그리움 사무친 푸른 이파리는장수풍뎅이 가슴에 안고밤새 산자락 지킨다 나무에서 떨어져 죽으려는 새야세상에 상처 없는 새는태어나자마자 죽은 어린 새뿐이다어디 상처 없는 삶 있더냐  * 2024년 10월 23일 수요일입니다.좋은 말을 건네야 좋은 결과들이 나옵니다.좋은 말들로 가득한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오늘도 그대는 멀리 있다 _ 나태주

오늘도 그대는 멀리 있다                                             나태주  전화 걸면 날마다어디 있냐고 무엇하냐고누구와 있냐고 또 별일 없냐고밥은 거르지 않았는지 잠은 설치지 않았는지묻고 또 묻는다 하기는 아침에 일어나햇빛이 부신 걸로 보아밤사이 별일 없긴 없었는가 보다 오늘도 그대는 멀리 있다 이제 지구 전체가 그대 몸이고 맘이다  * 2024년 10월 22일 화요일입니다.잡식동물을 뜻하는 '옴니보어'는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갖는다는 뜻도 있습니다.젠더의 경계가 사라지고 라이프 사이클이 뒤섞이고 있습니다.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오래된 가을 _ 천양희

오래된 가을                            천양희  돌아오지 않기 위해 혼자떠나 본 적이 있는가 새벽 강에 나가 홀로울어 본 적이 있는가 늦은 것이 있다고후회해 본 적이 있는가 한 잎 낙엽같이버림받은 기분에 젖은 적이 있는가 바람 속에 오래서 있어 본 적이 있는가 한 사람을 나보다더 사랑한 적이 있는가 증오보다 사랑이조금 더 아프다고 말한 적이 있는가그런 날이 있는가 가을은 눈으로 보지 않고마음으로 보는 것 보라, 추억을 통해 우리는 지나간다  * 2024년 10월 21일 월요일입니다.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 가을 날씨입니다.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고 건강한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시월 _ 만성

시월                         만성  10월은 시월이다적당히 시원하고 적당히 쓸쓸하다혼자도 좋고 누구와 오랜만에 만나도 좋다선선한 아침도 좋고 노곤한 저녁도 좋다시간에서 행간을 읽을 수 있는 계절이다10월은 시가 어울리는 계절이다  * 2024년10월 18일 금요일입니다.단풍이 조금씩 보이면서 가을이 성큼 다가온 한 주입니다.한 주 마무리 잘 하시고 편안한 주말 되세요. 홍승환 드림

흔들린다 _ 함민복

흔들린다                           함민복  집에 그늘이 들어 아주 베어버린다고참죽나무 균형 살피며 가지 먼저 베는익선이 형이 아슬아슬하다 나무는 가지를 벨 때마다 흔들림이 심해지고흔들림에 흔들림 가지가 무성해져나무는 부들부들 몸통을 떤다 나무는 최선을 다해 중심을 잡고 있었구나가지 하나 이파리 하나하나까지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렸었구나흔들려 덜 흔들렸었구나흔들림의 중심에 나무는 서 있었구나 그늘을 다스리는 일도 숨을 쉬는 일도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이직하는 일도다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리고흔들려 흔들리지 않으려고가지 뻗고 이파리 틔우는 일이었구나  * 2024년 10월 17일 목요일입니다.흔들리지 않으면 부러지는 법입니다.유연함을 배우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길을 찾는 영혼 _ 정유찬

길을 찾는 영혼                                정유찬  그것은순수한 명상으로 잔잔해진신성한 연못이다 그러면서도열망으로 가득 찬 불덩이가 아닌차라리 푸른 불꽃 열정과 갈증 사이를 오가며여러 차이와 경계를 허물고어둔 길을 어둡게 두지 않을 빛 비록 타고난 방황처럼발걸음 어지러이 느껴질 때조차캄캄한 어둠을 비추는 것이다 그러한 방랑은태초부터 지금까지 이어진거룩하고 숙명적인 사색의 본능이니 사실, 길을 찾지 않는 영혼은 없다  * 2024년 10월 16일 수요일입니다.매일 반복되는 행동들로 캐릭터가 만들어집니다.좋은 행동들을 많이 하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