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시 152

생의 감각 _ 김광섭

생(生)의 감각 김광섭 여명에서 종이 울린다. 새벽별이 반짝이고 사람들이 같이 산다는 것이다. 닭이 운다, 개가 짖는다. 오는 사람이 있고 가는 사람이 있다. 오는 사람이 내게로 오고 가는 사람이 다 내게서 간다. 아픔에 하늘이 무너지는 때가 있었다. 깨진 그 하늘이 아물 때에도 가슴에 뼈가 서지 못해서 푸르런 빛은 장마에 황야처럼 넘쳐 흐르는 흐린 강물 위에 떠 갔다. 나는 무너지는 둑에 혼자 서 있었다. 기슭에는 채송화가 무더기로 피어서 생의 감각을 흔들어 주었다. * 2021년 2월 23일 화요일입니다.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이 언제인가요? 시간을 흘려보내지 말고 지배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그 숲에 당신이 왔습니다 _ 김용택

그 숲에 당신이 왔습니다 김용택 그 숲에 당신이 왔습니다 나 홀로 걷는 그 숲에 당신이 왔습니다 어린 참나무 잎이 지기 전에 그대가 와서 반짝이는 이슬을 텁니다 나는 캄캄하게 젖고 내 옷깃은 자꾸 젖어 그대를 돌아봅니다 어린 참나무 잎이 마르기 전에도 숲에는 새들이 날고 바람이 일어 그대를 향해 감추어두었던 길 하나를 그대에게 들킵니다 그대에게 닿을 것만 같은 아슬아슬한 내 마음 가장자리에서 이슬이 반짝 떨어집니다 산다는 것이나 사랑한다는 일이나 그러한 것들이 때로는 낯설다며 돌아다 보면 이슬처럼 반짝 떨어지는 내 슬픈 물음이 그대 환한 손등에 젖습니다 사랑합니다 숲은 끝이 없고 인생도 사랑도 그러합니다 그 숲 그 숲에 당신이 문득 나를 깨우는 이슬로 왔습니다 * 2021년 2월 4일 목요일입니다. 모든..

사모 _ 조지훈

사모 조지훈 사랑을 다해 사랑하였노라고 정작 할말이 남아 있었음을 알았을 때 당신은 이미 남의 사람이 되어 있었다 불러야할 뜨거운 노래를 가슴으로 죽이고 당신은 멀리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마 곱스런 눈웃음이 사라지기 전 두고 두고 아름다움으로 잊어 달라지만 남자에게서 여자란 기쁨 아니면 슬픔 다섯 손가락 끝을 잘라 핏물 오선을 그려 혼자라도 외롭지 않은 밤에 울어 보리라 울어서 멍든 눈흘김으로 미워서 미워지도록 사랑하리라 한 잔은 떠나버린 너를 위하여 또 한 잔은 너와의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 그리고 또 한 잔은 이미 초라해진 나를 위하여 그리고 마지막 한 잔은 미리 알고 정하신 하나님을 위하여 * 2021년 2월 1일 월요일입니다. 새로운 한 달이 힘차게 시작되었습니다. 기다림의 깊은 뜻을 배우는 하루 ..

못잊어 _ 김소월

못잊어 김소월 못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그러나 또 한편 이르겠지요 『 그리워 살뜰이 못 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나지요?』 * 2021년 1월 29일 금요일입니다. 세월이 갈수록 착하고 선한 사람들이 더 좋아집니다.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너를 기다리는 동안 _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 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 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지금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

혼자는 외롭고 둘은 그립다 _ 김현태

혼자는 외롭고 둘은 그립다 김현태 언제부턴가 혼자라는 사실이 괜히 서글프게 느껴진다면 그건 때가 온 것이다 사랑을 할 때가 온 것이다 꽃이 꽃보다 더 아름답게 보이고 바다가 바다보다 더 외롭게 보이고 모든 사람이 아픈 그리움으로 보일 때 사랑은 밀물처럼 마음을 적시며 서서히 다가오는 것이다 사랑을 하려면 먼저, 자연을 향해 마음을 열어야 한다 물 속에 핀 어린 나무의 그림자를 사랑해야 하고 하늘을 들었다, 놨다 하는 새들을 사랑해야 한다 파도를 일으키는 구름들을 사랑해야 한다 홀로 선 소나무는 외롭다 그러나 둘이 되면 그리운 법이다 이젠 두려워 마라 언젠가 찾아와 줄지도 모르는 그런 사랑을 위해 마음을 조금씩 내어주면 되는 것이다 * 2021년 1월 26일 화요일입니다. 혼자서는 빨리 갈 수 있지만 여럿..

빈 집 _ 기형도

빈집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 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 2020년 12월 7일 월요일 절기상 대설입니다. 코로나19의 재확산이 심상치 않은 상황입니다. 개인위생과 생활방역을 잘 지키는 한 주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수선화에게 _ 정호승

수선화에게 정호승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걷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 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않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 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 2020년 11월 26일 목요일입니다. 세계적인 축구 선수 마라도나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고 하네요. 어릴 적 영웅들의 사망소식이 하나 둘 늘어남에 시간의 흐름을 깨닫게 됩니다. 소중한 하루 알차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사랑한다는 것 _ 안도현

사랑한다는 것 안도현 길가에 민들레 한송이 피어나면 꽃잎으로 온 하늘을 다 받치고 살듯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오직 한 사람을 사무치게 사랑한다는 것은 이 세상을 전체를 비로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차고 맑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고 우리가 서로 뜨겁게 사랑한다는 것은 그대는 나의 세상을 나는 그대의 세상을 함께 짊어지고 새벽을 향해 걸어가겠다는 것입니다. * 2020년 11월 25일 수요일입니다. 배려가 계속된다고 그게 자신의 권리인 줄 알면 안 됩니다. 친절한 사람의 배려를 고마워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연인 _ 정호승

연인 정호승 사랑이란 오래 갈수록 처음처럼 그렇게 짜릿짜릿한 게 아니야 그냥 무덤덤해지면서 그윽해지는 거야 아무리 좋은 향기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면 그건 지독한 냄새야 살짝 사라져야만 진정한 향기야 사랑도 그와 같은 거야 사랑도 오래되면 평생을 같이하는 친구처럼 어떤 우정 같은 게 생기는 거야 * 2020년 11월 24일 화요일입니다. 시간이 지나야 보이는 진실들이 있는 법입니다. 가식된 자신의 언행을 돌아보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