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언시 1161

주전자가 끓는 겨울 _ 남혜란

주전자가 끓는 겨울                                    남혜란  유리창 한 장 가득 겨울이 찍혀 있다흰눈이 내리는 것으로 한결 으늑하다 엄마는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뜨개질을 하시고가스레인지 위에는 주전자가 끓고 있다 칙칙폭폭 칙칙폭폭 수증기를 뿜으면서먼 동화의 나라로 꿈결처럼 떠나간다 나도 그 기차에 훌쩍 올라타고눈 내리는 벌판을 한없이 달려간다 기차는 가지 않으면서도 자꾸만 떠나가고엄마의 뜨개질은 차츰 모습을 드러낸다 아무리 춥고 먼 곳에 나가도겨울 바람 한 점 들어올 수 없는그런 옷이 되어간다  * 2025년 2월 18일 화요일입니다.숨만 쉬고 사는 나날보다 가슴 벅찬 순간이 더 좋습니다.가슴 벅찬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나이 듦에 대하여 _ 최홍윤

나이 듦에 대하여                                 최홍윤  얼추 얼추 하다또 한 해가 저문다묵은 그리움에 내 두 눈이 침침해지고가는귀 멀고정신이 깜빡깜빡해지는 날도 오고야 말 거다 그렇다백발이 성성한 것도 하늘이 내린 축복이며좀 더 멀리 볼 줄을 알고때로는 못 본채도 하라는 신의 명령일 게다나이 들수록시시콜콜한 소리, 잡소리는 듣지 말고 악몽과 같은 지난 일기억조차 싫은 추억일랑 잊고좋은 생각만 하라고,아름다운 추억만 되뇌라고,내 정신도 푸른 신호등처럼순간순간 깜빡깜빡해 줄 거다  * 2025년 2월 17일 월요일입니다.모든 일은 양면성이 있는 법입니다.긍정의 면을 바라보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겨울나무 _ 정한용

겨울나무                     정한용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가만 들여다보면거기에도 중심 줄기의 무게가 있다땅에서 나무를 지나 저 하늘까지의 거리처음 바람이 비롯된 곳부터 불어가야 할 목적지까지의 곤고함그 가운데서 그 깊이를 측량하며나무는 서 있다뿌리가 빨아들인 지난 여름의 빗방울과대륙 쪽에서 물어온 공기의 입자들이 거기에서 만난다만나 서로의 선물을 건네고 협상하고 새 힘을 세우며내일 올 봄을 위하여 거대한 잎을 준비한다중심은 깊고 무거워겨울 찬 흙에 꽃은 발톱으로 세상이 고요하다  * 2025년 2월 14일 금요일입니다.개나리 나무에 새순들이 살짝 보이기 시작했습니다.봄이 멀지 않았습니다. 홍승환 드림

바람의 시 _ 이해인

바람의 시                         이해인  바람이 부네내 혼에 불을 놓으며바람이 부네 영원을 약속하던그대의 푸른 목소리도바람으로 감겨오네 바다 안에 탄생한내 이름을 부르며내 목에 감기는 바람이승의 빛과 어둠 사이를오늘도 바람이 부네 당신을 몰랐다면너무 막막해서내가 떠났을 세상이 마음에적막한 불을 붙이며바람이 부네 그대가 바람이어서나도 바람이 되는 기쁨꿈을 꾸네 바람으로길을 가네 바람으로  * 2025년 2월 13일 목요일입니다.맨날 최선을 다하지는 마세요. 피곤해서 못 삽니다.쉼표를 생각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때로는 강도 아프다 _ 김구식

때로는 강도 아프다                                    김구식  조금만 아파도 강을 찾았었다늘 거기 있어 편안한 강에팔매질하며 던져버린 게 많았지만그 바닥을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그저 강이니까 걸러내고그저 물이니가 제 길 가는 줄 알았다 해질 녘 붉은 상처도강은 깊이 끌어안고 있었고나는 긴 그림자만 떠안겨 주었다피울음을 토하기 시작했을 때도강은 같이 흘러주지 않는 것들을꼬옥 감싸고 있었다 등 떠밀려 굽은 갈대의 손짓바다 어귀까지 따라온 붕어의 도약아파도 같이 흐르면삶은 뒤섞여서도 아름다우리라고불현듯 내 가슴에도푸른 강 한 줄기가 흐르는 것이었다  * 2025년 2월 12일 수요일입니다.모든 걸 감싸주는 것들은 속앓이가 있는 법입니다.보이지 않는 것들을 이해하는 하루 되시기 바..

겨울풍경을 찍다 _ 안시아

겨울풍경을 찍다                              안시아  불룩하게 내려앉은 하늘,시위를 당긴다 아!발자국이 느낌표로 찍혀 나온다골목을 돌아 나온 바퀴 곡선은기호처럼 삼거리를 표시하고가늘게 휘어진 가로수 가지 끝잎새의 무게가 매달려 있다오늘 지켜야할 약속 때문에외투는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어느 간이역 편도행 열차에 오른다포장마차는 밤이라는 경계를 오가며긴 줄기마다 알전구를 피워 올린다입간판에는 구룡포 갈매기가자음모음 제대로 설 얼어있다소나무 한 그루 좌표를 긋는 하늘 아래,길들이 저녁의 불빛을 한데 끌어모은다서로에게 저물어가는 풍경들,모두 지나간 것처럼 시간은사진이 된다  * 2025년 2월 10일 월요일입니다.포기하면 끝이지만 계속하면 성공을 향한 과정입니다.지속력을 찾는 하루 되..

좋아서 좋은 사람 _ 오광수

좋아서 좋은 사람                                  오광수  커피 한 잔을 나누어도그냥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그 사람의 눈빛은 따뜻한 커피와 같아서함께하면 햇살이 가득 모인 창가에 앉아 있는 것 같고커피잔을 든 두 손을 통해서는그 사람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화만 가볍게 주고받아도그냥 좋은 기억으로 남는 사람이 있습니다그 사람의 말 속에는 진솔함이 담긴 예의가 있어통화하는 시간에는 나로 하여금 귀한 사람이 되게 하고조용하고 또렷한 음성을 통해서는그 사람도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에 댓글만 봐도그냥 반갑고 고마운 사람이 있습니다그 사람의 글 속에는 힘을 주는 진지한 관심이 있어마냥 부끄러웠다가는 깨닫게 하기도 해서 그저 고맙고짧은 글이지만 그 ..

장애물 _ 이정하

장애물                     이정하  사랑하기란 참 쉬운 일이 아닙니다.참사랑을 하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습니다.왜냐하면, 마음에서 마음으로 가는 길에는수많은 장애물이 있기 때문이지요.그 험한 길을 가다보면그대로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고원래의 자리로 되돌아오고 싶을 때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주의 깊게 다시 한 번 살펴보십시오.혹시 그 장애물들이 자기 스스로 만든 것이지 않은지실제로 사랑이라는 노정에는타인이 만들어놓은 장애물은 극히 드뭅니다.그 대부분 자신이 상처받기 두려운 나머지스스로 금을 그어놓은 자기변명이기 십상입니다.마음에서 마음으로 가는 길,진정으로 마음을 얻어야 갈 수 있는 길.  * 2025년 2월 6일 목요일입니다.진정성이 있어야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법입니다.진심을..

겨울꽃 _ 김남조

겨울꽃                      김남조  눈길에 안고 온 꽃눈을 털고 내밀어주는 꽃반은 얼음이면서이거 뜨거워라생명이여언 살 갈피갈피불씨 감추고아프고 아리게꽃빛 눈부시느니 겨우 안심이다네 앞에서 울게 됨으로나 다시 사람이 되었어줄기 잘리고잎은 얼어 서걱이면서얼굴 가득 웃고 있는겨울꽃 앞에오랫 동안 잊었던눈물 샘솟아이제 나또다시 사람 되었어  * 2025년 2월 3일 절기상 입춘입니다.2월에는 부디 기쁘고 행복한 일들이 많았으면 좋겠네요.감기 조심하시고 건강한 한 주 되세요. 홍승환 드림

짧은 노래 _ 류시화

짧은 노래                      류시화  벌레처럼낮게 엎드려 살아야지풀잎만큼의 높이라도 서둘러 내려와야지벌레처럼 어디서든 한 철만 살다가야지나를 아파하지 말아야지다만 무심해야지울 일이 있어도 벌레의 울음만큼만 울고허무해도벌레만큼만 허무해야지죽어서는 또벌레의 껍질처럼 그냥 버려져야지  * 2025년 1월 24일 금요일입니다.임시공휴일로 넉넉히 긴 설연휴가 되었네요.을사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행복한 연휴 되세요. 홍승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