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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 _ 조지훈

사모 조지훈 사랑을 다해 사랑하였노라고 정작 할 말이 남아있음을 알았을 때 당신은 이미 남의 사람이 되어 있었다 불러야 할 뜨거운 노래를 가슴으로 죽이며 당신은 멀리로 잃어지고 있었다. 하마 곱스런 웃음이 사라지기 전 두고 두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잊어달라지만 남자에게서 여자란 기쁨 아니면 슬픔 다섯 손가락 끝을 잘라 핏물 오선을 그려 혼자라도 외롭지 않을 밤에 울어보리라 울어서 멍든 눈흘김으로 미워서 미워지도록 사랑하리라 한 잔은 떠나버린 너를 위하여 또 한 잔은 너와의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 그리고 또 한 잔은 이미 초라해진 나를 위하여 마지막 한잔은 미리 알고 정하신 하나님을 위하여 * 2021년 9월 23일 목요일입니다. 5일간의 한가위 연휴 편히 쉬셨습니까?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열매를 맺는 하루 ..

한가위에 드리는 기도 _ 이채

한가위에 드리는 기도 이채 잠시 오해했다면 고백하고 한동안 미워했다면 뉘우치고 황금빛 들녁의 넉넉한 마음으로 먼저 다가가는 화해의 걸음이게 하소서 아버지처럼 인자하고 어머니처럼 포근한 보름달, 그 넓음으로 작은 것의 소중함을 알게 하시고 큰 것일수록 의연할 수 있게 하소서 잘 익은 한가위처럼 잘 다려진 숙성된 빛으로 나를 발효시키는 성숙함이게 하소서 대낮같이 비추는 천지의 보름달, 그 깊음으로 화안의 친절한 미소로 일상의 기쁨을 이웃과 나눌 수 있게 하시고 춥고 낮은 곳일수록 베풀 수 있는 따뜻한 관심의 시간을 갖게 하소서 포용의 그릇이 클수록 많은 것을 담을 수 있음을 깨닫게 하소서 어제를 돌아보고 오늘을 가다듬는 기도 소박한 꿈을 꾸는 내일의 희망이게 하소서 고운 인연들에 감사하며 함께 기대며 살아가..

단단한 고요 _ 김선우

단단한 고요 김선우 마른 잎사귀에 도토리알 얼굴 부비는 소리 후두둑 뛰어내려 저마다 멍드는 소리 멍석 위에 나란히 잠든 반들거리는 몸 위로 살짝살짝 늦가을 햇볕 발 디디는 소리 먼 길 날아온 늙은 잠자리 채머리 떠는 소리 맷돌 속에서 껍질 타지며 가슴 동당거리는 소리 사그락사그락 고운 뼛가루 저희끼리 소근대며 어루만져주는 소리 보드랍고 찰진 것들 물 속에 가라앉으며 안녕 안녕 가벼운 것들에게 이별인사 하는 소리 아궁이 불 위에서 가슴이 확 열리며 저희끼리 다시 엉기는 소리 식어가며 단단해지며 서로 핥아주는 소리 도마 위에 다갈빛 도토리묵 한 모 모든 소리들이 흘러 들어간 뒤에 비로소 생겨난 저 고요 저토록 시끄러운, 저토록 단단한 * 2021년 9월 16일 목요일입니다. 여러 과정을 겪어야 단단해지는 법..

참 좋은 말 _ 천양희

참 좋은 말 천양희 내 몸에서 가장 강한 것은 혀 한 잎의 혀로 참, 좋은 말을 쓴다 미소를 한 육백 개나 가지고 싶다는 말 네가 웃는 것으로 세상 끝났으면 좋겠다는 말 오늘 죽을 사람처럼 사랑하라는 말 내 마음에서 가장 강한 것은 슬픔 한 줄기의 슬픔으로 참, 좋은 말의 힘이 된다 바닥이 없다면 하늘도 없다는 말 물방울 작으나 큰 그릇 채운다는 말 짧은 노래는 후렴이 없다는 말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은 말 한 송이의 말로 참, 좋은 말을 꽃피운다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이란 말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는 말 옛날은 가는 것이나 아니라 이렇게 자꾸 온다는 말 * 2021년 9월 15일 수요일입니다. 매일 하루하루를 수고스럽게 보낸다면, 변화는 당연히 일어납니다. 성장을..

나는 이런 세상을 꿈꾼다 _ 서태우

나는 이런 세상을 꿈꾼다 서태우 나는 이런 세상을 꿈꾼다 너무 눈부시지도 않으며 그렇다 하여 칙칙하게 색칠되어서도 안 되는 세상 그저 아름답다는 말보다 그래도 아름답다 말해 줄 수 있는 세상 내가 꿈꾸는 세상은 작은 오해 하나로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주고 그 상처가 서로의 영혼을 곪아 터지게 하여 끝내 몸과 영혼이 죽어가는 세상이 아닌 이해하고 용서하며 보듬어 주기에 더욱 아름다운 세상이다 감히 내가 꿈꾸는 세상은 넘어져도 일어설 수 있는 격려와 따뜻한 눈물이 별이 되는 그런 세상을 꿈꾼다 태어날 때는 외롭게 혼자 왔을지라도 떠날 때는 아름다운 인연으로 외롭지 않게 웃으며 떠날 수 있는 세상 나는 오늘도 그런 세상을 꿈꾼다. * 2021년 9월 14일 화요일입니다. 관점을 달리 하면 해석도 달라지게 마련..

사랑하는 별 하나 _ 이성선

사랑하는 별 하나 이성선 나도 별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외로워 쳐다보면 눈 마주쳐 마음 비춰주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도 꽃이 될 수 있을까. 세상일이 괴로워 쓸쓸히 밖으로 나서는 날에 가슴에 화안히 안기어 눈물짓듯 웃어주는 하얀 들꽃이 될 수 있을까. 가슴에 사랑하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외로울 때 부르면 다가오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마음 어두운 밤 깊을수록 우러러 쳐다보면 반짝이는 그 맑은 눈빛으로 나를 씻어 길을 비추어주는 그런 사람 하나 갖고 싶다. * 2021년 9월 13일 월요일입니다.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긴 어렵지만, 깨끗이 닦아낼 수는 있습니다. 대안을 생각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너에게 묻는다 _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자신의 몸뚱아리를 다 태우며 뜨끈뜨근한 아랫목을 만들었던 저 연탄재를 누가 발로 함부로 찰 수 있는가? 자신의 목숨을 다 버리고 이제 하얀 껍데기만 남아있는 저 연탄재를 누가 함부로 발길질 할 수 있는가 * 2021년 9월 10일 금요일입니다. 하고자 하면 '방법'이 보이고, 하기 싫어하면 '핑계'가 생각나는 법입니다. 방법을 찾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마음의 욕심 _ 나명욱

마음의 욕심 나명욱 그 마음 비워내는 일 그 일이 인생 행복의 첫걸음이다 욕심을 버리고 가벼워지는 일 하늘이 무너지든 땅이 꺼지든 그도 그날의 운명일 것이라고 오늘 그가 나에게 했던 쓸쓸한 말 한마디도 내 마음의 평안과 즐거울 날의 기대로 나를 위한 내 지갑 속에 채워지지 않는 물질의 힘도 결국 언젠가는 사라질 종잇장에 불과할 우리의 운명은 우리의 의무를 다하는 일 나 하나의 마음이 가벼워지면 주위가 환하게 밝아오는 그 마음 주는 일 * 2021년 9월 9일 목요일입니다. 성장을 위해서는 안전한 알 속에서 나와야만 가능한 법입니다. 빨간약을 선택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감자 한 알 _ 임영준

감자 한 알 임영준 봉지 안에 숨어 있던 감자 한 알에 삐죽빼죽 싹이 나온 것을 보고 열 살짜리 딸아이가 버려진 화분에 서툰 손길로 묻어둔 것이 나날이 불쑥 솟아오르더니 이젠 울타리를 휘감아 도는 제법 번듯한 생명이 되었는데 마치 아무런 연고나 배경이 없어도 굳건히 자리를 잡은 이민자 같구나 덩그러니 뿌려져도 튼실하게 잘 자라난 내 아이들 같구나 감자 한 알도 그들을 어여삐 여겨 무성하게 뻗어 가는 것 같구나 낯선 나라 날 선 세상에 무성한 줄기 굴강한 뿌리가 되라고 버려질 뻔한 보잘것 없는 감자 한 알도 우리에게 자신감을 보태는구나 그러니 어려울 게 무엇이겠는가 * 2021년 9월 8일 수요일입니다. 대체할 수 있는 것들과 대체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대체할 수 없는 것들을 챙기는 하루 되시기 바..

가을비 낙엽 위에 _ 황금찬

가을비 낙엽 위에 황금찬 어제 낙엽이 지더니 오늘은 종일 비가 온다. 가을비는 낙엽 위에 내리고 그 위에 다시 낙엽이 쌓인다. 이 길로 누가 걸어갔을까? 오늘엔 내가 가고 내일은 또 누가 걸어가리라 가을비는 낙엽 위에 내리고 그 위에 다시 낙엽이 진다. * 2021년 9월 7일 화요일입니다. 겸손은 가장 확실하게 다른 이들에게 베풀 수 있는 자신감입니다. 다른 이들을 배려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