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605

8월의 시 _ 오세영

8월의 시 오세영 8월은 오르는 길을 멈추고 한번쯤 돌아가는 길을 생각하게 만드는 달이다. 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 가는 파도가 오는 파도를 만나듯 인생이란 가는 것이 또한 오는 것 풀섶에 산나리, 초롱꽃이 한창인데 세상은 온통 초록으로 법석이는데 8월은 정상에 오르기 전 한번쯤 녹음에 지쳐 단풍이 드는 가을 산을 생각하는 달이다. * 2022년 8월 1일 월요일입니다. 무더위와 태풍으로 시작하는 8월입니다. 더운 날 주변 사람들에게 먼저 웃어주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생각도 예방주사를 맞았으면 좋겠다 _ 이중삼

생각도 예방주사를 맞았으면 좋겠다 이중삼 아이들 집에 가고 없는 운동장 시계 바늘 같은 오후 그림자 삽살개 한 마리가 끌며 간다 나와 다른 나와의 대화 생각이 서술하기 시작하자 살아 온 날처럼 살아 갈 날이 욕심이라는 바이러스에 면역을 잃으며 시간의 비탈길로 좀생이별처럼 흩어진다 욕심에 눈 멀지 않게 생각도 예방 주사를 맞았으면 좋겠다 또 다른 내가 아이들 다 가고 없는 운동장에서 뛰논다 굴렁쇠 굴리며 * 2022년 7월 29일 아침부터 무더운 금요일입니다. 나쁜 생각들을 없애주는 예방주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한 주의 마무리 잘 하시고 행복한 주말 되세요. 홍승환 드림

기다린다 _ 조병준

기다린다 조병준 기다려야 할 때가 있다. 천지 사방이 온통 눈으로 덮여 눈 뜬 것과 눈 감은 것이 다르지 않을 때 홀로 눈밭에 서서 기다려야 할 때가 있다. 누구도 다가오지 않는 시간, 그래서 멈춘 시간 속에 함께 멈춰 있어야 할 때가 있다. 기다리는 것 말고는 다른 어떤 일을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런 기다림의 시간을 겪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당신, 지금 기다리고 있는가? * 2022년 7월 28일 목요일입니다. 기다림이 있어야 제대로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조급해 하지 않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강가에서 _ 윤제림

강가에서 윤제림 처음엔 이렇게 썼다. 다 잊으니까 꽃도 핀다. 다 잊으니까 강물도 저렇게 천천히 흐른다. 틀렸다 이제 다시 쓴다. 아무 것도 못 잊으니까 꽃도 핀다. 아무 것도 못 잊으니까, 강물도 저렇게 시퍼렇게 흐른다. * 2022년 7월 27일 수요일입니다. 처음에 생각했던 것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무엇이든 다시 쓸 수 있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거울 _ 이현주

거울 이현주 오늘도 내 안에 간직한 거울을 닦는다. 먼지가 덮인 거울을 깨끗이 닦으며 잠시 내가 거울을 잊었구나. 새 아파트로 이사와 현관 앞에 전신거울을 달며 내 안에 간직했던 거울을 생각해냈다. 벽 거울 속을 들여다보며 내 속에 거울을 닦는다. 벽 거울 속을 들여다보며 내 눈빛을 다듬는다. 눈빛에 깊이를 가늠해 본다. 관상을 찬찬히 보며 관상을 바로 잡는다. 나를 바로 세우는 것 나를 잊지 않게 해주는 것 바로 내 안에 거울이다. * 2022년 7월 26일 화요일입니다.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여러가지 거울이 있습니다. 몸가짐과 행동을 바로 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그립다고 말했다 _ 정현종

그립다고 말했다 정현종 두루 그립다고 너는 말했다 그러자 너는 꽃이 되었다 그립다는 말 세상은 떠돌아 나도 같이 떠돌아 가는 데마다 꽃이 피었다 닿는 것마다 꽃이 되었다 그리운 마음 허공과 같으니 그 기운 막막히 퍼져 퍼지고 퍼져 마음도 허공도 한 꽃송이! 두루 그립다고 너는 말했다 * 2022년 7월 25일 월요일입니다.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된다고 하네요. 건강한 한 주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_ 나희덕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나희덕 살았을 때의 어떤 말보다 아름다웠던 한마디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그 말이 잎을 노랗게 물들였다 지나가는 소나기가 앞을 스쳤을 뿐인데 때로는 여름에도 낙엽이 진다 온통 물든 것들은 어디로 가나 사라짐으로 하여 남겨진 말들은 아름다울 수 있었다 말이 아니어도, 잦아지는 숨소리 일그러진 표정과 차마 감지 못한 두 눈까지도 더 이상 아프지 않은 그 순간 삶을 꿰매는 마지막 한땀처럼 낙엽이 진다 낙엽이 내 젖은 신발창에 따라와 문턱을 넘는다, 아직은 여름인데. * 2022년 7월 22일 금요일입니다. 믿지 못하면 쓰지 말고, 쓰면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고 맡기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빗속에 단잠 _ 유성순

빗속에 단잠 유성순 장마로 인하여 흐릿한 날씨에 연일 내리는 비를 맞으며 다리품을 여기저기로 팔다가 참 오랜 만에 꿀 맛 같은 단잠을 청했다 잠수함을 타고 보이지 않는 세상으로 걸어서 여행을 하다가 현관문 여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빗소리는 여전히 창가를 두드리고 머리맡에 돌아가는 시계는 8시에 멈추어 내 눈과 마주쳤다 빗속에 낮잠을 깜박 잊고 아침으로 착각을 한 오후 8시 하마터면 퇴근 시간에 출근 한다고 호들갑을 떨며 하루에 두 번 출근 할 뻔했던 빗속에 단잠 * 2022년 7월 21일 목요일입니다. 어제 밤부터 계속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외출하실 때 우산 챙기시고 건강한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달 칼라 현상소 _ 진창윤

달 칼라 현상소 진창윤 해가 지면 남자는 달을 줍는다 오래전부터 혼자 사는 남자는 사진 박는 것이 직업이다 가로등 아래 골판지 달 맥주병 달 자전거에 싣고 온 달들을 둘둘 말아 마루에서 안방까지 차곡차곡 쌓았다 월식의 밤, 열일곱 살 딸이 집을 나가자 달 칼라 현상소 간판 붙이고 사진관을 열었다 달이라는 말과 현상한다는 말이 좋았다 한 장의 사진에 밤하늘을 박아 팔고 싶어 달을 표적 삼아 카메라를 들이댄다 인화지에 찍혀 나오는 사진 한 장에서 달의 얼굴들을 아랫목에 말린다 디지털로 바뀐 지가 언제인데 코닥필름 회사 망한 지가 언제인데 아날로그 필름만을 고집하는 달 칼라 현상소 남자 자꾸만 얼굴을 바꾸는 달을 쫓는다 그의 앞마당에 쌓인 폐품들이 달의 얼굴로 처마에 닿아 간다 더 벗을 것도 없는 달, 고무 ..

생 _ 신달자

생 신달자 단 한 번이다 결코 재생될 수 없다 무례한 낙서를 연습이라고 말하지 마라 경험이라는 말로 허물을 덮지 마라 상호 불통을 예술이라고 하지 마라 이미 한 장의 종이는 사용 불가 * 2022년 7월 19일 화요일입니다. 되돌릴 수는 없지만 반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