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시 956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_ 고두현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고두현 저 바다 단풍 드는 거 보세요. 낮은 파도에도 멀미하는 노을 해안선이 돌아앉아 머리 풀고 흰 목덜미 말리는 동안 미풍에 말려 올라가는 다홍 치맛단 좀 보세요. 남해 물건리에서 미조항 가는 삼삽리 물미해안, 허리에 낭창낭창 감기는 바람을 밀어내며 길은 잘 익은 햇살 따라 부드럽게 휘어지고 섬들은 수평선 끝을 잡아 그대 처음 만난 날처럼 팽팽하게 잡아당기는데 지난 여름 푸른 상처 온몸으로 막아주던 방풍림이 얼굴 붉히며 바알갛게 옷을 벗는 풍경 은점 지나 노구 지나 단감빛으로 물드는 노을 남도에서 가장 빨리 가을이 닿는 삼십리 해안 길, 그대에게 먼저 보여주려고 저토록 몸이 달아 뒤채는 파도 그렇게 돌아앉아 있지만 말고 속 타는 저 바다 단풍 드는 거 좀 보아요. * 2023년..

다락방 _ 나태주

다락방 나태주 이담에 집을 마련한다면 지붕 위에 다락방 하나 달린 집을 마련하겠습니다. 문틈으로 하늘 구름도 잘 보이고 바람의 옷소매도 잘 보일 뿐더러 밤이면 별이 하나 둘 돋아나는 것도 곧잘 볼 수 있는 그러한 다락방을 하나 마련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속상하거나 답답한 날은 다락방에 꽁꽁 숨으렵니다. 그대도 짐작 못하고 하느님도 찾지 못하시도록. * 2023년 11월 10일 금요일입니다. 적당한 생각은 지혜를 주지만, 과도한 생각은 걱정만 쌓입니다. 생각만 하지 말고 움직이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_ 류시화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류시화 시를 쓴다는 것이 더구나 나를 뒤돌아본다는 것이 싫었다 언제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나였다 다시는 세월에 대해 말하지 말자 내 가슴에 피를 묻히고 날아간 새에 대해 나는 꿈꾸어선 안 될 것들을 꿈꾸고 있었다 죽을 때까지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것이 나는 두려웠다 다시는 묻지말자 내 마음을 지나 손짓하며 사라진 그것들을 저 세월들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는 법이 없다 고개를 꺾고 뒤돌아보는 새는 이미 죽은 새다 * 2023년 11월 9일 목요일입니다. 성공을 확신하는 것이 성공의 첫걸음입니다. 자신감을 갖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가을의 창문을 열면 _ 이외수

가을의 창문을 열면 이외수 어디쯤 오고 있을까 세월이 흐를수록 마음도 깊어지는 사람 하나 단풍나무 불붙어 몸살나는 그리움으로 사태질 때 물게뭉게 개어가는 하늘이 예뻐 한참을 올려다 보니 그곳에 당신 얼굴이 환하게 웃고 계십니다. 그대 모습 그대 생각에 머물면 난 자꾸만 가슴이 뜁니다. * 2023년 11월 8일 수요일입니다. 오늘 그것을 할 수 없다면, 대부분은 영영 못하게 되는 법입니다. 실천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사람의 가을 _ 문정희

사람의 가을 문정희 나의 신은 나입니다. 이 가을날 내가 가진 모든 언어로 내가 나의 신입니다 별과 별 사이 너와 나 사이 가을이 왔습니다 맨 처음 신이 가지고 온 검으로 자르고 잘라서 모든 것은 홀로 빛납니다. 저 낱낱이 하나인 잎들 저 자유로이 홀로 인 새들 저 잎과 저 새를 언어로 옮기는 일이 시를 쓰는 일이, 이 가을 산을 옮기는 일만큼 힘이 듭니다 저 하나로 완성입니다. 새, 별, 꽃, 잎, 산, 옷, 밥, 집, 땅, 피, 몸, 물, 불, 꿈, 섬 그리고 너, 나 이미 한편의 시입니다 비로소 내가 나의 신입니다. 이 가을날 * 2023년 11월 6일 월요일입니다. 가을비가 요란하게 내리는 아침입니다. 새로운 한 주 힘차게 출발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먼 후일 _ 김소월

먼 후일 김소월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 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리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리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 때에 '잊었노라.' * 2023년 11월 3일 금요일입니다. 작은 것들이 쌓여 큰 것이 이루어집니다. 미루어놨던 것들을 시작하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11월에 _ 이해인

11월에 이해인 나뭇잎에 지는 세월 고향은 가까이 있고 나의 모습 더없이 초라함을 깨달았네 푸른 계절 보내고 돌아와 묵도하는 생각의 나무여 영혼의 책갈피에 소중히 끼운 잎새 하나 하나 연륜 헤며 슬픔의 눈부심을 긍정하는 오후 햇빛에 실리어 오는 행복의 물방울 튕기며 어디론지 떠나고 싶다 조용히 겨울을 넘겨보는 11월의 나무 위에 연처럼 걸려 있는 남은 이야기 하나 지금 아닌 머언 훗날 넓은 하늘가에 너울대는 나비가 될 수 있을까 별밭에 꽃밭에 나뭇잎 지는 세월 나의 원은 너무 커서 차라리 갈대처럼 여위어 간다 * 2023년 11월 1일 수요일입니다. 새로움은 늘 약간의 긴장감을 줍니다. 긴장감을 즐기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불행은 언젠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 _ 신현림

불행은 언젠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 신현림 "불행은 언젠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 나폴레옹의 이 말은 10년 동안 내 머릿속을 돌아다니는 송곳이었다 게으름을 피울 때마다 내 많은 실패를 돌아볼 때마다 송곳은 가차없이 지르고 찔러왔다 모든 불행엔 충고의 송곳이 있다 자만치 말라는, 마음 낮춰 살라는 송곳 불행의 우물을 잘 들여다보라는 송곳 바닥까지 떨어져서 다시 솟아오는 햇살의 송곳 송곳은 이제 지팡이처럼 내게 다가와 신들린 듯 거친 바다처럼 밀어간다 * 2023년 10월 31일 화요일입니다. 모든 일에는 수많은 징후들이 있는 법입니다. 작은 것들을 살펴보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그리움은 게 한 마리의 걸음마처럼 _ 유하

그리움은 게 한 마리의 걸음마처럼 유하 끝간 데 없는 갯벌 위를 걷습니다 모든 것이 고요하기만 합니다 문득 손톱만한 게 한 마리 휙 내 앞을 지나갑니다 어쩐지 그 게 한 마리의 걸음마가 바닷물을 기다리는 갯벌의 마음처럼 느껴집니다 그 마음 그토록 허허롭고 고요하기에 푸른 물살, 온통 그 품에 억장 무너지듯 안기고 마는 걸까요 아아 바닷물처럼 출렁이는 당신이여 난 게 한 마리 지날 수 없는 꽉찬 그리움으로 그대를 담으려 했습니다 그대 밀물로 밀려올 줄 알았습니다 텅텅 빈 갯벌 위, 난 지금 한 마리 작은 게처럼 고요히 걸어갑니다 이것이, 내 그리움의 첫 걸음마입니다. * 2023년 10월 30일 월요일입니다. 작은 걸음들이 모여 큰 여행을 만드는 법입니다. 꾸준히 움직이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가을 _ 강은교

가을 강은교 기쁨을 따라갔네 작은 오두막이었네 슬픔과 둘이 살고 있었네 슬픔이 집을 비울 때는 기쁨이 집을 지킨다고 하였네 어느 하루 찬 바람 불던 날 살짝 가보았네 작은 마당에는 붉은 감 매달린 나무 한 그루 서성서성 눈물을 줍고 있었고 뒤에 있던 산, 날개를 펴고 있었네 산이 말했네 어서 가보게, 그대의 집으로...... * 2023년 10월 27일 금요일입니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한 법입니다. 조금 더 노력하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