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시 1005

밑줄 _ 신지혜

밑줄 신지혜 바지랑대 높이 굵은 밑줄 한 줄 그렸습니다 얹힌 게 아무것도 없는 밑줄이 제 혼자 춤춥니다 이따금씩 휘휘 구름의 말씀뿐인데, 우르르 천둥 번개 호통뿐인데, 웬걸? 소중한 말씀들은 다 어딜 가고 밑줄만 달랑 남아 본시부터 비어 있는 말씀이 진짜라는 말씀, 조용하고 엄숙한 말씀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인지요 잘 삭힌 고요, 空의 말씀이 형용할 수 없이 깊어, 밑줄 가늘게 한 번 더 파르르 빛납니다 * 2023년 6월 28일 수요일입니다. 오래 된 책 속에서 밑줄을 그은 곳들을 발견합니다. 공감과 감동으로 밑줄을 긋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등 _ 서안나

등 서안나 등이 가려울 때가 있다 시원하게 긁고 싶지만 손이 닿지 않는 곳 그곳은 내 몸에서 가장 반대편에 있는 곳 신은 내 몸에 내가 결코 닿을 수 없는 곳을 만드셨다 삶은 종종 그런 것이다 지척에 두고서도 닿지 못한다 나의 처음과 끝을 한눈으로 보지 못한다 앞모습만 볼 수 있는 두 개의 어두운 눈으로 나의 세상은 재단되었다 손바닥 하나로는 다 쓸어주지 못하는 우주처럼 넓은 내 몸 뒤편엔 입도 없고 팔과 다리도 없는 눈먼 내가 살고 있다 나의 배후에는 나의 정면과 한 번도 마주 보지 못하는 내가 살고 있다 * 2023년 6월 27일 화요일입니다. 무엇이든 해결하려면 먼저 움직여야 합니다. 하기 싫은 것들을 시작하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비 내리는 날 _ 양현근

비 내리는 날 양현근 미운 이름도 고운 이름도 잊어버리는 날 여름산 넉넉히 풀어지는 낮은 목소리의 비가 내리면 나도 비처럼 조용히 가라앉고 싶다 흩어지고 넘어져 어느 한 줌 강어귀 적시는 무심함이고 싶다 울먹임 치렁한 모래톱 뻘내음 흥건히 젖으라, 적시라. * 2023년 6월 26일 월요일입니다. 중요한 것을 전달하고 얻기 위해서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중요합니다. 비효율과 오류를 줄이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휴식 _ 원성스님

휴식 원성스님 모진 하루에 쫓겨 미루어 놓았던 일을 거두고 시간에 얽매여 조급한 삶의 줄다리기를 잠시 늦추고 언어의 전쟁에 시달린 복잡한 머릿속을 비워내고 걱정거리에 지친 번뇌 망상을 던져 버리고 끈질긴 집착에 타 들어가는 내 안의 욕심들을 날려보내고 무거운 옷에 힘들었던 아상(我相)의 에고를 벗어 던지고 기나긴 그리움에 가슴 아팠던 가녀린 감정들을 지워 버리고 저지른 죄에 상처 입은 그늘진 상념을 지워 버리고 저지른 죄에 상처 입은 그늘진 상념을 묻어 버리고 한낮 햇살 아래 휴식. * 2023년 6월 23일 금요일입니다. 나를 중심으로 한 생각은 자칫 아상(아집)으로 나타납니다. 고통의 근본인 아상을 버리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푸른 힘이 은유의 길을 만든다 _ 배한봉

푸른 힘이 은유의 길을 만든다 배한봉 바람이 불고 잎들이 뒤척거린다 그 아래 잎들의 신음이 쌓여 그림자가 얼룩지고 있다 산책나온 아침, 눈이 동그래진다 나뭇잎에 허공 길이 뚫리고 거기 헛발 디딘 햇빛 금싸라기를 쏟아 세상이 다 환해진다 아, 나뭇잎 허공 벌레먹은 이 자리가 우화를 기다리는 은유의 길이라니 허공에 빠진 내 생각을 뜯어 먹으며 또 살찐 벌레 한 마리 지나간다 * 2023년 6월 22일 목요일입니다. 강한 요소가 엑셀 역할을 약한 요소가 브레이크 역할을 합니다. 엑셀과 브레이크를 적절히 사용하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비처럼 오는 당신 _ 김궁원

비처럼 오시는 당신 김궁원 비가 오는 날에는 오시는 당신 이제 빗소리 익숙해질 때도 된 것 같은데 아직도 비가 오면 기다리는 마음은 길에 서 있고 언제나 비가 되어 오시는 당신 때문에 가슴을 적시고도 남는 빗소리는 비에 젖은 마음을 휘젓습니다. 비 오는 거리 종일토록 내리더니 기다리는 마음마저 다 적시려는지 주룩주룩 창 밖에는 당신 같은 비가 내리네. * 2023년 6월 21일 수요일입니다. 비상식이 계속된다고 상식이 되지는 않습니다. 상식적인 말과 행동의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매듭을 푸는 나무 _ 김윤자

매듭을 푸는 나무 김윤자 나무가 손끝이 가늘어진 것은 바람이 묶어 놓은 매듭을 푸느라 닳아진 까닭이다 나무가 등이 시리도록 꼿꼿한 것은 교과서가 얹어준 거름으로 진리를 먹었기 때문이다 나무가 [하늘이 파랗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은 하늘을 가까이서 보았기 때문이다 나무가 밤에도 누워 잘 수 없는 것은 낮에 태양이 쏟아 놓은 사랑을 올올이 엮고 있기 때문이다 나무가 순순히 쓰러져 죽어가는 것은 또 하나의 희망이 발 아래에서 움트기 때문이다 * 2023년 6월 20일 화요일입니다. 진화와 성장을 이끄는 것은 안락함이 아니라 위기감입니다. 안락함을 버리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그 한 마디를 못한다 _ 김철현

그 한 마디를 못한다 김철현 한 마디면 되는 것을 그 한 마디를 못하고 산다 "미안하다." 마음에 담아 두고 병들어하면서도 그 한 마디를 못하고 산다 "보고 싶다." 숱한 말들을 쏟아내며 살지만 정작 그 한 마디를 못하고 산다 "사랑한다." * 2023년 6월 16일 금요일입니다. 한 마디 말로 천 냥 빚도 갚는 법입니다. 곱고 바른 말을 사용하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물방울의 역사 _ 이영옥

물방울의 역사 이영옥 연잎에 떨군 물방울이 맑은 구슬로 또르륵 굴러가는 것은 연잎에 스며들지 않도록 제 몸 고요하게 껴안았기 때문이다 오직 꽃 피울 생각에 골똘한 수련을 건들지 않고 그저 가볍게 스치기만 하려고 자신을 정갈하게 말아 쥔 까닭이다 그러나 물방울의 투명한 잔등 속에는 얼마나 많은 그리움의 포자들이 출렁거렸는지 수 만 갈래로 흩어지려는 물길을 달래며 눈물의 방을 궁굴려 왔는지 깨끗하다는 말 속에 숨은 외로움은 왜 그리 끔찍했는지 물 위에 닿는 순간 물방울은 잠시 흔들렸던 세상을 먼저 버리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부서진다 흔적 하나 남기지 않는 가장 아픈 방법으로 * 2023년 6월 15일 목요일입니다.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는 법입니다. 좋은 결과의 원인을 만드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