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시 963

마디, 푸른 한 마디 _ 정일근

마디, 푸른 한 마디 정일근 피릴 만들기 위해 대나무 전부가 필요한 건 아니다 노래가 되기 위해 대나무 마디마디 다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가장 아름다운 소린 마디 푸른 한 마디면 족하다 내가 당신에게 드리는 사랑의 고백도 마찬가지다 당신을 눈부처로 모신 내 두 눈 보면 알 것이다 고백하기에 두 눈도 바다처럼 넘치는 문장이다 눈물샘에 비치는 한 방울 눈물만 봐도 다 알 것이다 * 2023년 3월 9일 목요일입니다. 어설픈 100개보다는 확실한 1개가 좋을 수 있습니다. 1당 100의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그리 살고 싶다 _ 김명숙

그리 살고 싶다 김명숙 소슬바람도 그냥 지나칠 수 없도록 이엉 올린 초가지붕까지도 귀를 열어 놓고 울타리마다 숭숭 바람자리 만들어 툇마루에 앉아서도 강으로 흐를 수 있다면 낚시줄에 세월 걸어놓고 수면에 일렁이는 세상시름 보내면 당겨지는 낚싯줄 손맛이면 되지 그 이상의 욕심 다독여 줄 수 있고 봄나물에 밥 비벼 한입씩 떠넣어 줄 그대만 옆에 있다면 * 2023년 3월 8일 수요일입니다. 조급해 하면 항상 무언가를 놓치기 마련입니다. 미리 미리 준비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씀바귀 _ 김리영

씀바귀 김리영 밭도랑 옆에 주저앉아 누가 캐어갈 것 같지도 않은 엎어져 매 맞은 것처럼 쭈그러진 씀바귀 빗속에 휘는 키 큰 소나무보다 오히려 비 맞을 준비가 되었는지 바닥에 마음 다 펼쳐놓은 조그만 풀더미의 몸, 씀바귀에도 장대비는 와서 아프게 적시며 삶을 가르쳐 준다. * 2023년 3월 7일 화요일입니다. 몸에 좋은 약은 쓴 법입니다. 쓴 맛을 참아내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내일 이야기 _ 김근이

내일 이야기 김근이 내일 이야기는 어제 내가 만들어 놓은 이야기 내일에서 어제로 돌아가는 이야기 내일 이야기는 내일로 다가가면 아직도 내일 속에 머물고 어제에서는 언제나 내일에 남아있는 이야기 내일은 언제나 그 자리에 남아 있는데 나는 내일도 내일을 기다린다. * 2023년 3월 6일 월요일입니다. 개구리가 겨울 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입니다. 봄을 맞이하는 한 주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호수 _ 이형기

호수 이형기 어길 수 없는 약속처럼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다. 나무와 같이 무성하던 청춘이 어느덧 잎 지는 이 호숫가에서 호수처럼 눈을 뜨고 밤을 새운다. 이제 사랑은 나를 울리지 않는다. 조용히 우러르는 눈이 있을 뿐이다. 불고 가는 바람에도 불고 가는 바람같이 떨던 것이 이렇게 고요해질 수 있는 신비는 어디서 오는가. 참으로 기다림이란 이 차고 슬픈 호수 같은 것을 또 하나 마음 속에 지니는 일이다. * 2023년 3월 3일 금요일입니다. 봄을 시샘하는 찬 바람이 매서운 아침입니다. 한 주 마무리 잘 하시고 편안한 주말 되세요. 홍승환 드림

헌책, 말을 걸다 _ 강보철

헌책, 말을 걸다 강보철 책 속에 간직한 누군가의 추억 뽀르르 속삭이는 빛바랜 볼펜 글씨 그 시절 어디에 있냐고, 책 속에 간직한 누군가의 냄새 살포시 다가오는 메마른 단풍잎 그 시절 어디갔냐고, 책 속에 간직한 누군가의 흔적 접힌 자국 꼼지락하며 아는 체 그 시절 그랬다고, 책 속에 간직한 누군가의 비밀 반으로 접은 구화폐 오백 원 그 시절 말을 건다. * 2023년 3월 2일 목요일입니다. 봄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서는 3월입니다. 새로움과 함께 하는 봄 날의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나하나 꽃피어 _ 조동화

나하나 꽃피어 조동화 나 하나 꽃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피고 나도 꽃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나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냐고도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 2023년 2월 28일 화요일입니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되는 법입니다. 먼저 시작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봄 일기 _ 이해인

봄 일기 이해인 봄이 일어서니 내 마음도 기쁘게 일어서야지 나도 어서 희망이 되어야지 누군가에게 다가가 봄이 되려면 내가 먼저 봄이 되어야지 그렇구나 그렇구나 마음에 흐르는 시냇물 소리 * 2023년 2월 27일 월요일입니다. 누군가에게 봄이 되려면 내가 먼저 봄이 되어야 합니다. 봄 기운 가득한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너는 푸르다 _ 유종우

너는 푸르다 유종우 너는 푸르다 가늠할 수 없는 기억이 머무는 바람 소리가 비치는 바다 아래서 물방울들, 그 속을 헤매다 튕겨 올라 물과 물이 분리되며 수면 위에 무수한 항성의 몸짓을 입힌다. 밀물과 썰물 그 넘나드는 조수 속에서 하늘가에 스며들어 타오르는 찰나의 환희여! 코끝을 스치는 빗물처럼 내 곁에 잠시 머물다 갈매기 떼 은빛 날갯짓이 손짓하는 공간 저 너머로 바람처럼 아득히 멀어져 간다 * 2023년 2월 24일 금요일입니다. 푸릇푸릇한 것들이 봄기운을 타고 올라옵니다. 한 주 마무리 잘 하시고 편안한 주말 되세요. 홍승환 드림

30cm _ 박지웅

30cm 박지웅 거짓말을 할 수 없는 거리 마음을 숨길 수 없는 거리 눈빛이 흔들리면 반드시 들키는 거리 기어이 마음이 동하는 거리 눈시울을 만나는 최초의 거리 심장 소리가 전해지는 최후의 거리 눈망울마저 사라지고 눈빛만 남는 거리 눈에서 가장 빛나는 별까지의 거리 말하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거리 눈 감고 있어도 볼 수 있는 거리 숨결이 숨결을 겨우 버티는 거리 키스에서 한 걸음도 남지 않은 거리 이 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누가 30cm 안에 들어온다면 그 곳을 고스란히 내어준다면 당신은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 2023년 2월 23일 목요일입니다. 거리감이 느껴질 때는 거리를 좁히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먼저 다가가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