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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당연필 _ 한영숙

몽당연필 한영숙 내 안에는 아직 깎지 않은 새 연필 몇 자루와 쓰다 남은 심 부러진 연필들이 한증막 장작더미처럼 수북이 쌓여있다 어쩌다 절반 넘어 닳아진 몽당연필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널려 있는 커피 자판기 아무나 뽑아낼 수 있는 복제된 일회용 컵처럼 쓰다가 몇 번 부러지면 서슴없이 던져버리는 내 부러진 시간들 언제 한 번 진득이 끝까지 써보기라도 했단 말인가 장작불보다 더 활활 타 들어가는 내 열정을, 꾹꾹 눌러 쓸 생애의 끝까지 써야 될 연필 몇 자루는 도대체 어디쯤 있을까 * 2023년 3월 21일 화요일입니다. 중간에 그만두는 일은 결과가 없는 법입니다. 끝까지 마무리 짓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신발 끈을 묶으며 _ 이수화

신발 끈을 묶으며 이수화 먼 길을 떠나려 할 땐 끈이 있는 신발을 신어야겠습니다. 시간이 좀 더 걸리고 삐걱이는 허리를 굽혀야 하는 불편과 어려움이 있겠지만 졸라맨 발목에서 숨이 콱콱 막히고 굵은 땀방울이 발등을 흐를지라도 거친 들길을 걸을 때에는 험난한 산길을 오늘 때에는 끈이 달린 신발을 신어야겠습니다. 어지간한 비틀거림에는 끄덕도 하지 않고 힘에 겨워 넘어지고 쓰러질 때에라도 또다시 발목을 일으켜 세울 수 있도록 그리운 먼 길을 걸어갈 때에는 헐거워진 가슴을 단단히 조여 매고 아린 발끝을 꼿꼿이 세워야겠습니다. * 2023년 3월 20일 월요일입니다. 조금 불편한 것들이 더 튼튼할 때가 있습니다. 한 주의 시작 힘차게 출발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나는 밤마다 꿈을 덮노라 _ 김광섭

나는 밤마다 꿈을 덮노라 김광섭 나의 마음은 고요한 물결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고, 구름이 지나가도 그림자 지는 곳. 돌을 던지는 사람, 고기를 낚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이리하여 이 물가 외로운 밤이면, 별은 고요히 물위에 뜨고 숲은 말없이 물결을 재우느니, 행여, 백조(白鳥)가 오는 날, 이 물가 어지러울까 나는 밤마다 꿈을 덮노라. * 2023년 3월 17일 금요일입니다. 꿈이 없는 삶은 지루하기 마련입니다. 작은 꿈들이라도 다시 시작하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새봄에는 _ 정성윤

새봄에는 정성윤 새봄에는 녹두 빛 하늘을 이고 시린 잎샘일랑 주섬주섬 걷어 올리고 부드러운 아지랑이만 몸에 걸친 채 한적한 산골을 발이 부르트도록 걸어 볼 것이다 그곳에는 지쳐버린 시간의 각질을 뚫고 새파란 기억의 우듬지가 이슬을 머금고 삐죽삐죽 솟아오르는 여린 풀밭이 있다 새봄에 부활하는 나의 가슴이 있다 * 2023년 3월 16일 목요일입니다. 나무의 꼭대기 줄기인 우듬지에 새싹들이 보입니다. 새봄, 새로운 기운이 솟아나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사람이 그러면 못쓴다 _ 김철현

사람이 그러면 못쓴다 김철현 사람이 그러면 못쓴다. 어려울 때 동행해 준 정이 있는데 나 좀 살만하다고 그 정을 매몰차게 내버린다면 안 되는 것이다. 사람이 그러면 못쓴다. 서로 의지하여 쌓아올린 신의가 있는데 나 좀 기분 나쁘다고 신의를 헌신짝 버리듯 팽개친다면 안 되는 것이다. 사람이 그러면 못쓴다. 살다보면 할 수 있는 것이 실수라지만 내 실수를 인정할 줄 아는 근본도 없이 다 남의 탓으로 돌린다면 그것은 정말 잘못된 일이다. 사람이 그러면 못쓴다. 목숨까지 내놓는 맹세는 못할지라도 인생에 부끄럽지 않은 의리란 있는 법 내가 먼저 배신하는 못난 짓 사람이 그러면 못쓴다. * 2023년 3월 14일 화요일입니다. "그러면 못쓴다"라고 말해주고 싶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혼난다"라고 굳게 믿습..

끈 _ 공석진

끈 공석진 불 끈 힘주는 팽팽한 욕망 질질 끌려갈 수도 툭 끊어질 수도 그저 당기면 밀어 주고 밀어 주면 당기고 애당초 끈은 탯줄에 의지하여 세상 밖으로 안내하는 생명선 숱한 인연을 나의 심장에 단단히 동여맨다 질 끈 * 2023년 3월 13일 월요일입니다. 보이지 않는 끈들이 새로운 결과를 만드는 법입니다. 질끈 인연을 동여매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봄날에는 _ 이희숙

봄날에는 이희숙 봄날에는 우리들의 시간이 봄꽃처럼 환하게 물들 수 있기를 기도하자 마주보면 부끄러워 고개 숙일지라도 밀어로 가득 찬 봄날의 속삭임을 노래하자 사랑하는 일이 나를 내어 주는 일임을 미처 다 알지 못한다 해도 닫혀있던 문이 절로 열리는 봄날에는 어여쁜 꽃송이 피워 올리는 마음으로 모든 살아있는 것을 사랑하자 농담 같은 현실 때문에 동굴 속을 헤매는 날이 있어도 꽃피는 봄날에는 너도 나도 꽃이 되어 웃어보자 * 2023년 3월 10일 금요일입니다. 그래도 겨울은 가고 봄이 올 것입니다. 한 주 마무리 잘 하시고 즐거운 주말 되세요. 홍승환 드림

마디, 푸른 한 마디 _ 정일근

마디, 푸른 한 마디 정일근 피릴 만들기 위해 대나무 전부가 필요한 건 아니다 노래가 되기 위해 대나무 마디마디 다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가장 아름다운 소린 마디 푸른 한 마디면 족하다 내가 당신에게 드리는 사랑의 고백도 마찬가지다 당신을 눈부처로 모신 내 두 눈 보면 알 것이다 고백하기에 두 눈도 바다처럼 넘치는 문장이다 눈물샘에 비치는 한 방울 눈물만 봐도 다 알 것이다 * 2023년 3월 9일 목요일입니다. 어설픈 100개보다는 확실한 1개가 좋을 수 있습니다. 1당 100의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그리 살고 싶다 _ 김명숙

그리 살고 싶다 김명숙 소슬바람도 그냥 지나칠 수 없도록 이엉 올린 초가지붕까지도 귀를 열어 놓고 울타리마다 숭숭 바람자리 만들어 툇마루에 앉아서도 강으로 흐를 수 있다면 낚시줄에 세월 걸어놓고 수면에 일렁이는 세상시름 보내면 당겨지는 낚싯줄 손맛이면 되지 그 이상의 욕심 다독여 줄 수 있고 봄나물에 밥 비벼 한입씩 떠넣어 줄 그대만 옆에 있다면 * 2023년 3월 8일 수요일입니다. 조급해 하면 항상 무언가를 놓치기 마련입니다. 미리 미리 준비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