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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듯한 말 _ 이은봉

따듯한 말 이은봉 말에는 다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지 차가운 말에는 차가운 마음이 담겨 있고 따듯한 말에는 따듯한 마음이 담겨 있지 따듯한 말은 사전 속에 있지 않고 바쁘게 뛰어다니는 나날의 삶 속에 있지 밥솥의 밥처럼 말도 서로 나눌 때 따듯해지지 따듯한 세상을 위해 따듯한 말 나누어야지 국솥의 국 나누듯 따듯한 말 나누어야지 따듯한 말은 배추 속처럼 뽀얗고 부드럽지 언제나 가슴 둥그렇게 부풀어 오르게 하지 둥글게 부풀어 오르는 말을 나누다 보면 무쇠 밥솥의 찰진 밥을 나눌 때처럼 세상 둥그렇고 찰지게 익어가지 주걱 위 밀가루 반죽 젓가락으로 뚝뜩 떼서 만든 구수한 수제비 같은 말 만들고 싶지 따듯한 말로 가득한 세상 만들고 싶지 * 2023년 2월 20일 월요일입니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 법..

내가 좋아하는 사람 _ 나태주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나태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슬퍼할 일을 마땅히 슬퍼하고 괴로워할 일을 마땅히 괴로워하는 사람 남의 앞에 섰을 때 교만하지 않고 남의 뒤에 섰을 때 비굴하지 않은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미워할 것을 마땅히 미워하고 사랑할 것을 마땅히 사랑하는 그저 보통의 사람 * 2023년 2월 17일 금요일입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모습에 사람들은 분노합니다. 한 주 마무리 잘 하시고 편안한 주말 되세요. 홍승환 드림

아버지의 나이 _ 정호승

아버지의 나이 정호승 나는 이제 나무에 기댈 줄 알게 되었다 나무에 기대어 흐느껴 울 줄 알게 되었다 나무의 그림자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 나무의 그림자가 될 줄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왜 나무 그늘을 찾아 지게를 내려놓고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셨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 강물을 따라 흐를 줄도 알게 되었다 강물을 따라 흘러가다가 절벽을 휘감아 돌 때가 가장 찬란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해질 무렵 아버지가 왜 강가에 지게를 내려놓고 종아리를 씻고 돌아와 내 이름을 한 번씩 불러보셨는지 알게 되었다 * 2023년 2월 16일 목요일입니다. 생각이 깊어져야 언행에 깊이가 생기는 법입니다. 생각의 깊이를 더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교감 _ 천양희

교감 천양희 사랑 때문에 절망하고 절망 때문에 사랑한다고 사람들이 말했을 때 그 말에 우린 서로 '그래 맞아' 그렇게 말했었지요 희망 때문에 절망하고 절망 때문에 희망한다고 사람들이 말했을 때 그 말에 우린 서로 '그래 맞아, 바로 그거야' 그렇게 말했었지요. * 2023년 2월 15일 수요일입니다. 세상 어떤 일도 완벽하게 한 쪽에 유리한 건 없습니다. 좋은 쪽을 발견하고 해석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토닥토닥 _ 김재진

토닥토닥 김재진 나는 너를 토닥거리고 너는 나를 토닥거린다. 삶이 자꾸 아프다고 말하고 너는 자꾸 괜찮다고 말한다. 바람이 불어도 괜찮다. 혼자 있어도 괜찮다. 너는 자꾸 토닥거린다. 나도 자꾸 토닥거린다. 다 지나간다고 다 지나갈 거라고 토닥거리다가 잠든다. * 2023년 2월 14일 화요일입니다. 사랑의 마음을 전하는 발렌타이데이입니다. 누군가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빗방울은 구두를 신었을까 _ 송진권

빗방울은 구두를 신었을까 송진권 아직 발굽도 여물지 않은 어린 것들이 소란스레 함석지붕에서 놀다가 마당까지 내려와 잘박잘박 논다 징도 박을 수 없는 무른 발들이 물거품을 만들었다가 톡톡 터뜨리다 히히히힝 웃다가 아주까지 이파리에 매달려 또록또록 눈알을 굴리며 논다 마당 그득 동그라미 그리며 논다 놀다가 빼꼼히 지붕을 타고 내려가 방바닥에 받쳐둔 양동이 속으로도 들어가 논다 비스듬히 기운 집안 신발도 신지 않은 무른 발들이 찰방찰방 뛰며 논다 기우뚱 집 한 채 파문에 일렁일렁 논다 * 2023년 2월 10일 금요일입니다. 상식에 어긋나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하면 비난을 받기 마련입니다. 한 주 마무리 잘 하시고 편안한 주말 되세요. 홍승환 드림

고마운 일 _ 양광모

고마운 일 양광모 감사할 일이 있다는 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꽃다운 미소를 지어주고 햇살 같은 말을 건네주고 나를 위해 자신의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리하여 그와 함께 가난한 세상을 부자처럼 살아가는 일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갖는다는 건 또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사람아 너와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는 건 그 누군가에게 또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 2023년 2월 9일 목요일입니다. 고마운 사람들이 많아야 진정한 부자입니다. 누군가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사는 이유 _ 최영미

사는 이유 최영미 투명한 것은 날 취하게 한다. 시가 그렇고 술이 그렇고 아가의 뒤뚱한 걸음마가 어제 만난 그의 지친 얼굴이 안부없는 사랑이 그렇고 지하철을 접수한 여중생들의 깔깔웃음이 생각나면 구길 수 있는 흰 종이가 창 밖의 비가 그렇고 빗소리를 죽이는 강아지의 컹컹거림이 매일 되풀이되는 어머니의 넋두리가 그렇다. 누군가와 싸울 때마다 난 투명해진다. 치열하게 비어가며 투명해진다. 아직 건재하다는 증명 아직 진통할 수 있다는 증명 아직 살아 있다는 무엇. 투명한 것끼리 투명하게 싸운 날은 아무리 마셔도 술이 오르지 않는다. * 2023년 2월 8일 수요일입니다. '사람'을 한 글자로 만들면 '삶'이 됩니다. 좋은 사람과 함께하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동행 _ 고영민

동행 고영민 길가 돌멩이 하나를 골라 발로 차면서 왔다 저만치 차놓고 다가가 다시 멀리 차면서 왔다 먼 길을 한달음에 왔다 집에 당도하여 대문을 밀고 들어가려니 그 돌멩이 모난 눈으로 나를 멀끔히 쳐다본다 영문도 모른 채 내 발에 차여 끌려온 돌멩이 하나 책임 못 질 돌멩이를 집 앞까지 데려왔다 * 2023년 2월 7일 화요일입니다. 무언가에 집중하다 보면 정작 중요한 걸 놓칠 수 있습니다. 잠깐 잠깐 집중에서 벗어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