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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가을 _ 문정희

사람의 가을 문정희 나의 신은 나입니다. 이 가을날 내가 가진 모든 언어로 내가 나의 신입니다 별과 별 사이 너와 나 사이 가을이 왔습니다 맨 처음 신이 가지고 온 검으로 자르고 잘라서 모든 것은 홀로 빛납니다. 저 낱낱이 하나인 잎들 저 자유로이 홀로 인 새들 저 잎과 저 새를 언어로 옮기는 일이 시를 쓰는 일이, 이 가을 산을 옮기는 일만큼 힘이 듭니다 저 하나로 완성입니다. 새, 별, 꽃, 잎, 산, 옷, 밥, 집, 땅, 피, 몸, 물, 불, 꿈, 섬 그리고 너, 나 이미 한편의 시입니다 비로소 내가 나의 신입니다. 이 가을날 * 2023년 11월 6일 월요일입니다. 가을비가 요란하게 내리는 아침입니다. 새로운 한 주 힘차게 출발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먼 후일 _ 김소월

먼 후일 김소월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 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리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리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 때에 '잊었노라.' * 2023년 11월 3일 금요일입니다. 작은 것들이 쌓여 큰 것이 이루어집니다. 미루어놨던 것들을 시작하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11월에 _ 이해인

11월에 이해인 나뭇잎에 지는 세월 고향은 가까이 있고 나의 모습 더없이 초라함을 깨달았네 푸른 계절 보내고 돌아와 묵도하는 생각의 나무여 영혼의 책갈피에 소중히 끼운 잎새 하나 하나 연륜 헤며 슬픔의 눈부심을 긍정하는 오후 햇빛에 실리어 오는 행복의 물방울 튕기며 어디론지 떠나고 싶다 조용히 겨울을 넘겨보는 11월의 나무 위에 연처럼 걸려 있는 남은 이야기 하나 지금 아닌 머언 훗날 넓은 하늘가에 너울대는 나비가 될 수 있을까 별밭에 꽃밭에 나뭇잎 지는 세월 나의 원은 너무 커서 차라리 갈대처럼 여위어 간다 * 2023년 11월 1일 수요일입니다. 새로움은 늘 약간의 긴장감을 줍니다. 긴장감을 즐기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불행은 언젠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 _ 신현림

불행은 언젠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 신현림 "불행은 언젠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 나폴레옹의 이 말은 10년 동안 내 머릿속을 돌아다니는 송곳이었다 게으름을 피울 때마다 내 많은 실패를 돌아볼 때마다 송곳은 가차없이 지르고 찔러왔다 모든 불행엔 충고의 송곳이 있다 자만치 말라는, 마음 낮춰 살라는 송곳 불행의 우물을 잘 들여다보라는 송곳 바닥까지 떨어져서 다시 솟아오는 햇살의 송곳 송곳은 이제 지팡이처럼 내게 다가와 신들린 듯 거친 바다처럼 밀어간다 * 2023년 10월 31일 화요일입니다. 모든 일에는 수많은 징후들이 있는 법입니다. 작은 것들을 살펴보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그리움은 게 한 마리의 걸음마처럼 _ 유하

그리움은 게 한 마리의 걸음마처럼 유하 끝간 데 없는 갯벌 위를 걷습니다 모든 것이 고요하기만 합니다 문득 손톱만한 게 한 마리 휙 내 앞을 지나갑니다 어쩐지 그 게 한 마리의 걸음마가 바닷물을 기다리는 갯벌의 마음처럼 느껴집니다 그 마음 그토록 허허롭고 고요하기에 푸른 물살, 온통 그 품에 억장 무너지듯 안기고 마는 걸까요 아아 바닷물처럼 출렁이는 당신이여 난 게 한 마리 지날 수 없는 꽉찬 그리움으로 그대를 담으려 했습니다 그대 밀물로 밀려올 줄 알았습니다 텅텅 빈 갯벌 위, 난 지금 한 마리 작은 게처럼 고요히 걸어갑니다 이것이, 내 그리움의 첫 걸음마입니다. * 2023년 10월 30일 월요일입니다. 작은 걸음들이 모여 큰 여행을 만드는 법입니다. 꾸준히 움직이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가을 _ 강은교

가을 강은교 기쁨을 따라갔네 작은 오두막이었네 슬픔과 둘이 살고 있었네 슬픔이 집을 비울 때는 기쁨이 집을 지킨다고 하였네 어느 하루 찬 바람 불던 날 살짝 가보았네 작은 마당에는 붉은 감 매달린 나무 한 그루 서성서성 눈물을 줍고 있었고 뒤에 있던 산, 날개를 펴고 있었네 산이 말했네 어서 가보게, 그대의 집으로...... * 2023년 10월 27일 금요일입니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한 법입니다. 조금 더 노력하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그대 가까이 있었으면 _ 박우복

그대 가까이 있었으면 박우복 가을에는 그대 가까이 있었으면 좋겠다 강둑에 걸터 앉아 흔들거리는 갈대 사이로 강물을 흘려 보내며 세상 시름도 같이 보내고 가늘어져 가는 햇살을 마시며 곱게 물들어 가는 이파리들 속에 가슴에 묻어둔 이야기 같이 묶어서 낙엽이 지는 날 함께 보내고 사위어 가는 모닥불을 보며 어깨를 감싸고 잠이 들었다가 햇살이 빛나는 아침에 억새가 만들어준 은빛 물결을 타고 우리가 꿈꾸던 곳으로 떠날 수 있도록 가까이. * 2023년 10월 26일 목요일입니다. 살아가면서 너무 늦거나 이른 건 없습니다. 새로운 걸 시작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낙엽, 그 가을 _ 정재희

낙엽, 그 가을 정재희 총총한 걸음으로 오가는 것들 옷깃 여며 이리 빗겨 선 자리마저 꼬리 무는 이 번잡 글쎄, 부끄러움이라네요. 소문에 소문을 물고 잎이 지더니 흩날리는 마음 주체 못해 먼 산 떠도는 나를 바람이라네요. 돌고 돌아 이만치서 멈추어 보면 다 그만한 것 알만도 한데 아직 버리지 못한 욕심이라네요. 꼭꼭 숨겨둔 속내까지 이리 다 보내고 나서 울 너머 발돋움으로 건너다보면 키 작은 내 안부마저 그리움이 되네요. * 2023년 10월 25일 수요일입니다. 한 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리는 법입니다. 생각을 전환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가을꽃 _ 정호승

가을꽃 정호승 이제는 지는 꽃이 아름답구나 언제나 너는 오지 않고 가고 눈물도 없는 강가에 서면 이제는 지는 꽃도 눈부시구나 진리에 굶주린 사내 하나 빈 소주병을 들고 서 있던 거리에도 종소리 처럼 낙엽은 떨어지고 黃菊도 꽃을 떨고 뿌리는 내리나니 그동안 나를 이긴 것은 사랑이었다고 눈물이 아니라 사랑이었다고 물 깊은 밤 차가운 땅에서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꽃이여 * 2023년 10월 24일 화요일입니다. 여러 번 해보지 않으면 익숙해지지 않는 법입니다. 여러 번 반복해보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그리움을 견디는 힘으로 _ 유하

그리움을 견디는 힘으로 유하 붉게 익은 과일이 떨어지듯, 문득 그대 이름을 불러볼 때 단숨에 몰려오는, 생애 첫 가을 햇살의 길을 따라 참새가 날아오고 바람은 한짐 푸른 하늘을 내 눈 속에 부려놓는다 마음 닿는 곳이 반딧불일지라도 그대 단 한 번 눈길 속에 한세상이 피고 지는구나 나 이 순간, 살아 있다 나 지금 세상과 한없는 한 몸으로 서 있다 그리움을 견디는 힘으로 먼 곳의 새가 나를 통과한다 바람이 내 운명의 전부를 통과해낸다 * 2023년 10월 23일 월요일입니다. "뽑으려 하니 모두 잡초였지만, 품으려 하니 모두 꽃이었다." 생각을 전환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