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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되기 _ 박노해

사랑이 되기 박노해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아니다 그런 게 아니다 인간은 사랑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 여기 왔다 사람은 사랑받는 대상보다 사랑하는 존재가 되고픈 것 사랑받기보다 사랑을 하기 사랑이 되기 * 2023년 4월 4일 화요일입니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게 더 기쁠 때가 있습니다. 주변에 사랑을 나누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봄날 _ 김지원

봄날 김지원 봄에 겨운 가지들이 봄빛 속을 배회하고 있네 간밤에 스친 빗소리에도 봄바다는 그리움으로 출렁이고 멀리 떠난 배 한 척 가물거리며 돌아올 기약 없네 무심코 빈 가지에 돋아난 봄풀들이 앞다투어 초록빛 말(言)들을 풀어 놓는데 부푼 가지 끝에는 낯선 시간처럼 잊혀진 기억들만 매달려 있네 * 2023년 4월 3일 월요일입니다. 봄기운 가득한 새로운 달이 시작되었습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봄날 되세요. 홍승환 드림

아직도 사람은 순수하다 _ 김종해

아직도 사람은 순수하다 김종해 죽을 때까지 사람은 땅을 제 것인 것처럼 사고 팔지만 하늘을 사들이거나 팔려고 내놓지 않는다 하늘을 손대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사람들은 아직 순수하다 하늘에 깔려 있는 별들마저 사람들이 뒷거래하지 않는 걸 보면 이 세상 사람들은 아직도 순수하다 * 2023년 3월 31일 금요일입니다. 2023년 1분기 마무리 잘 하시고, 행복하고 멋진 2분기 되시길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책 _ 남유정

책 남유정 읽다가 그만둔 책을 펼친다 밑줄을 긋다가 행간의 여백으로 들어간다 여: 우리가 어떻게 만났지? 남: 어느 날 네가 내 앞에 있었어 우리가 누군가를 오독(誤讀)하는 순간 바로 사랑이 싹트는 때다 세상 우연이 우르르 강변으로 기차역으로 길모퉁이로 달려간다 바다에는 하얀 등대 불면의 밤들이 몰려와 춤을 춘다 * 2023년 3월 30일 목요일입니다. 게으른 사람들의 가장 흔한 변명은 시간이 없다는 말입니다. 하기 싫지만 중요한 것들을 먼저 해내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호랑이는 고양이과다 _ 최정례

호랑이는 고양이과다 최정례 고양이가 자라서 호랑이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장미 열매 속에 교태스런 꽃잎과 사나운 가시를 감추었듯이 고양이 속에는 호랑이가 있다 작게 말아 구긴 꽃잎같이 오므린 빨간 혀 속에 현기증 나게 노란 눈알 속에 달빛은 충실하게 수세기를 흘러내렸을 것이고 고양이는 은빛 잠 속에서 이빨을 갈고 발톱을 뜯으며 짐승 속의 피와 야성을 쓰다듬고 쓰다듬었을 것이고 자기 본래의 어두운 시간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처럼 고양이, 눈 속에 살구빛 호랑이 눈알을 굴리고 있다 독수리가 앉았다 날아가버린 한 그루 살구나무처럼 * 2023년 3월 29일 수요일입니다. 숨겨진 본성이 가끔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속 싶은 내면을 바라보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봄날의 산책 _ 박순희

봄날의 산책 박순희 어떤 길은 사람의 얼굴을 닮았다 낯설지 않은 길, 길을 음미하며 찬찬히 걷다보면 나는 어느새 내가 잘 알고 있는 사람의 마음에 들어서 있는 것이다. 따뜻한 바람을 맞으며 흔들흔들 걸음을 옮기면 그 사람의 음성이 들려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을 닮은 물푸레나무 아래 앉아 이야기하듯 잠깐 졸기도 하는 것이다. 맨몸을 드러내며 그 사람 앞에서 춤추다 무거운 햇살에 와르르 무너지기도 하는 것이다. * 2023년 3월 28일 화요일입니다. 일교차가 심해 주위에 감기로 고생하는 분이 많네요. 잠시 쉼표를 찍고 건강 챙기시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바보처럼 살라하네 _ 하영순

바보처럼 살라하네 하영순 밤새 숨었다가 아침에 얼굴 내민 해가 웃으라 한다 시린 등 쓰다듬으며 괴롭거나 슬프더라도 웃으라 한다 그날이 그날인데 하루를 지나며 만물을 살피고 구석구석 밝혀 주며 웃으라 한다 세상이 야속다 용광로가 끓어도 서러워 말라 다독이며 날 보고 날 보고 웃으라 한다 * 2023년 3월 27일 월요일입니다. 조금은 바보처럼 살 필요도 있습니다. 바보처럼 웃어 넘기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공갈빵이 먹고 싶다 _ 이영식

공갈빵이 먹고 싶다 이영식 빵 굽는 여자가 있다 던져놓은 알, 반죽이 깨어날 때까지 그녀의 눈빛은 산모처럼 따뜻하다 달아진 불판 위에 몸을 데운 빵 배불뚝이로 부풀고 속은 텅- 비었다 들어보셨나요? 공갈빵 몸 안에 장전된 것이라곤 바람뿐인 바람의 질량만큼 소소해 보이는 빵, 반죽 같은 삶의 거리 한 모퉁이 노릇노릇 공갈빵이 익는다 속내 비워내는 게 공갈이라니! 나는 저 둥근 빵의 내부가 되고 싶다 뼈 하나 없이 세상을 지탱하는 힘 몸 전체로 심호흡하는 폐활량 그 공기의 부피만큼 몸무게 덜어내는 소소한 빵 한쪽 떼어먹고 싶다 발효된 하루 해가 천막 위에 눕는다 아무리 속 빈 것이라도 때 놓치면 까맣게 꿈을 태우게 된다고 슬며시 돌아눕는 공갈빵, 차지게 늘어붙는 슬픔 한 덩이가 불뚝 배를 불린다 * 2023..

흐린 하늘 _ 나금숙

흐린 하늘 나금숙 흐린 하늘은 많은 씨방을 가졌다 물알갱이로 된 씨방들은 가끔 제 부피를 견디지 못한다 기류가 일렁일 때 얇아질대로 얇아진 껍질이 터지곤 한다 산화하는 물방울들 물의 씨앗들 텀벙 물상 안으로 튀며 뛰어든다 사물들은 가슴께가 간지럽다 윤곽들 흐려지며 경계가 무너진다 흐린 하늘이 스며 사물들 모두 물의 씨앗을 갖는다 * 2023년 3월 23일 목요일입니다. 길가 여기저기에 노란 개나리가 제법 보입니다. 봄비가 내리고 나면 봄이 성큼 와 있을 듯 싶네요. 홍승환 드림

단단해지는 법 _ 윤석정

단단해지는 법 윤석정 물고기의 뼈는 가시라는 것 구운 생선을 발라 먹는데 가시 하나가 목에 걸려 꺼끌꺼끌할 때 문득 알게 된 것 그리운 것들도 가시라는 것 자꾸 마음에 걸려 나오지 않는 것 빼내려 하면 할수록 더 아픈 것 마음의 뼈는 그리운 것 물고기처럼 마음도 뼈를 가지고 너에게 헤엄쳐 갔다 올 때 네가 내 마음에 걸린다는 것 목구멍에 걸린 가시를 배 속으로 꾸역꾸역 삼켰을 때 잊어야 한다는 것 그리운 것들이 마음을 아프게 할 때 흐른 눈물의 뼈도 가시라는 것 가시는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 뼈를 감싸는 모든 살들은 물렁하다는 것 내 마음이 아무렇지 않다고 삼키려 할 때 단단해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 마음의 뼈는 물렁하다는 것 * 2023년 3월 22일 수요일입니다. 작은 가시 하나가 굉장히 불편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