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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 깎는 시간 _ 김재진

연필 깎는 시간 김재진 마음속에서 누군가 속삭이듯 이야기할 때 있습니다. 사각거리며 걸어가는 눈 위의 발소리처럼 내 마음속의 백지 위로 누군가 긴 편지 쓸 때 있습니다. 한 쪽 무릎 세우고 뭔가를 깎아 보고 싶어 연필을 손에 쥡니다. 주전자의 물이 끓는 겨울 저녁 9시 유리창엔 김이 서립니다. 내 마음에도 김이 서립니다. 때로 몸이 느끼지 못하는 걸 마음이 먼저 느낄 때 있습니다. 채 깎지 않은 연필로 종이 위에 '시간'이라 써 봅니다. 좀 더 크게 '세월'이라 써 봅니다. 아직도 나는 내게 허용된 사랑을 다 써버리지 않았습니다. * 2022년 3월 7일 월요일입니다. 작은 시간들이 모여 세월이 되고 인생이 됩니다. 한 주의 시작 힘차게 출발하세요. 홍승환 드림

뒤 _ 황형철

뒤 황형철 내 뒷모습은 나 자신의 절반인 것인데 사이도 좋게 딱 반반씩 나눈 것인데 번번이 앞모습만 매만졌다 벽에 의자에 침대에 바위에 나무에 너에게 툭하면 앉고 기댄 탓에 세상의 소란 다 삼킨 채 짓눌린 나의 뒤여 아무것도 가질 수도 만질 수도 없이 잠잠한 그늘만 드리운 뒤야말로 응당 앞이 아닐까 하는 생각 뒤라고 알고 지낸 많은 것들이 실은 진짜 앞이 아닐까 하는 * 2022년 3월 4일 금요일입니다. 내일이면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입니다. 코로나도 우크라이나 사태도 우리 정치에도 봄날이 왔으면 좋겠네요. 한 주 마무리 잘 하시고 편안한 주말 되세요. 홍승환 드림

계단 _ 장석

계단 장석 세로의 길과 가로의 멈춤 수직의 오름과 수평의 디딤 상승하는 질문과 층계참의 답변 물으며 오르고 멈추어 답하고 오르는 길은 힘들고 내려가기는 위태롭다 난간처럼 네 손을 잡는다 * 2022년 3월 3일 목요일입니다. 순서를 건너 뛰면 빠르지만 쉽게 지치는 법입니다. 한 계단씩 꼭꼭 밟아나가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사랑법 _ 강은교

사랑법 강은교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 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 있는 누워 있는 구름, 결코 잠 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피지 말고 그러므로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 2022년 3월 2일 수요일입니다. 바람이 없어 바람개비가 돌아가지 않는다면 바람개비를 들고 앞으로 힘차게 뛰어보세요. 홍승환 드림

마음먹기에 달렸어요 _ 정현종

마음먹기에 달렸어요 정현종 마음먹기에 달렸어요 마음을 안 먹어서 그렇지 마음만 먹으면 안 되는 일이 없지요. 마음에 저절로 물드는 저 살아 있는 것들의 그림자 있는 그대로 물드는 그 그림자들도 마음먹은 뒤에 그래요. 마음을 먹는다는 말 기막힌 말이에요. 마음을 어쩐다구요? 마음을 먹어요! 그래서 안 되는 일이 없다는 거예요. 마음먹으니 노래예요. 춤이에요. 마음먹으니 만물의 귀로 듣고 만물의 눈으로 봐요. 마음먹으니 태곳적 마음 돌아보고 캄캄한데 동터요. * 2022년 2월 28일 월요일입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따라 다르게 느껴집니다. 제대로 마음먹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그릇 _ 김시천

그릇 김시천 그릇이 되고 싶다 마음 하나 넉넉히 담을 수 있는 투박한 모양의 질그릇이 되고 싶다 그리 오랜 옛날은 아니지만 새벽 별 맑게 흐르던 조선의 하늘 어머니 마음 닮은 정화수 물 한 그릇 그 물 한 그릇 무심히 담던 그런 그릇이 되고 싶다 누군가 간절히 그리운 날이면 그리운 모양대로 저마다 꽃이 되듯 지금 나는 그릇이 되고 싶다 뜨겁고 화려한 사랑의 불꽃이 되기보다는 그리운 내 가슴 샘물을 길어다가 그대 마른 목 적셔줄 수 있는 그저 흔한 그릇이 되고 싶다 * 2022년 2월 25일 금요일입니다. 작은 그릇에 억지로 무언가를 채우려하면 넘치기 마련입니다. 채우기 전에 그릇을 키우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글에도 마음씨가 있습니다 _ 오광수

글에도 마음씨가 있습니다 오광수 글에도 마음씨가 있습니다. 고운 글은 고운 마음씨에서 나옵니다 고운 마음으로 글을 쓰면 글을 읽는 사람에게도 고운 마음이 그대로 옮겨가서 읽는 사람도 고운 마음이 되고 하나 둘 고운 마음들이 모이면 우리 주위가 고운 마음의 사람들로 가득 찰 겁니다 글에도 얼굴이 있습니다 예쁜 글은 웃는 얼굴에서 나옵니다 즐거운 얼굴로 글을 쓰면 글을 읽는 사람에게도 정겨운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서 읽는 사람도 웃는 얼굴이 되고 하나 둘 미소 짓는 사람들이 모이면 우리 주위가 활짝 웃는 사람들로 가득 찰 겁니다 얼굴을 마주하지 않더라도 직접 대화를 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비록 한 줄의 짧은 답글이라도 고운 글로 마음을 전하며 읽는 사람에겐 미소를 짓게 하는 그런 아름다운 사람들이..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_ 류시화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류시화 슬픔이 그대를 부를 때 고개를 돌리고 쳐다보라 세상의 어떤 것에도 의지할 수 없을 때 그 슬픔에 기대라 저편 언덕처럼 슬픔이 그대를 손짓할 때 그곳으로 걸어가라 세상의 어떤 의미에도 기댈 수 없을 때 저편 언덕으로 가서 그대 자신에게 기대라 슬픔에 의지하되 다만 슬픔의 소유가 되지 말라 * 2022년 2월 23일 수요일입니다. 의지하되 소유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합니다. 자신에게 기대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카테고리 없음 2022.02.23

희망이라는 이름의 해독제 _ 송시현

희망이라는 이름의 해독제 송시현 우리는 마음 깊은 곳에 희망을 감추어두고 살아갑니다 힘겨운 일이 있을 때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도록 하십시오 감추어진 희망이 몸을 일으키고 있을 것입니다 절망에 중독된 우리의 영혼 속에는 희망이라는 이름의 해독제가 수은처럼 잔잔하게 가라앉아 있습니다 사랑도 독한 전염병이기에 내가 앓는 사랑이 당신에게로 가고 당신이 앓는 사랑이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우리를 서로 닮아가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사랑이 흔들리면 우리의 모습이 비치는 깊은 호수의 투명한 물그늘도 흔들리게 됩니다 안개 젖은 수풀 사이로 걸어가면 이슬처럼 아름다운 사랑이 거기에 숨어있을 것입니다 * 2022년 2월 22일 화요일입니다. 희망이 있다면 어떠한 상황도 극복해낼 수 있습니다. 희..

기다림의 나무 _ 이정하

기다림의 나무 이정하 내가 한 그루 나무였을 때 나를 흔들고 지나가는 그대는 바람이었네. 세월은 덧없이 흘러 그대 얼굴이 잊혀갈 때쯤 그대 떠나간 자리에 나는 한 그루 나무가 되어 그대를 기다리리. 눈이 내리면 늘 빈약한 가슴으로 다가오는 그대. 잊혀진 추억들이 눈발 속에 흩날려도 아직은 황량한 그곳에 홀로 서서 잠 못 들던 숱한 밤의 노래를 부르리라. 기다리지 않아도 찾아오는 어둠속에 서글펐던 지난날의 노래를 부르리라. 내가 한 그루 나무였을 때 나를 흔들고 지나간 그대는 바람이었네 * 2022년 2월 21일 월요일입니다. 기다릴 줄 알아야 좋은 타이밍을 잡을 수 있습니다. 한 주의 시작 힘차게 출발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