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605

입춘 _ 박종영

입춘 박종영 너를 기다리다 지친 우리들의 겨울이 속속히 차가운 한으로 울겠다. 가난을 홀로 움켜잡고 지새우던 긴 겨울밤의 패배를 반추하면서 발돋움하여 손짓을 하면 언뜻 밖에서는 그리운 손님이 부르겠다. 차마 멈출 흰눈이 지금도 내 머리와 네 머리 위에 시새움 하며 내리는데 어느 날까지 향기로 찬 들꽃 벌판을 눈빛으로 기대해야 할까. 강변 풀숲이 윤기를 자랑하기 위해 하늘을 유혹하고 모래언덕 버들강아지 살며시 가슴 여는 솜털, 학처럼 깃을 세우고 매화는 어느새 고운 입술로 봄을 홀린다. 일 년 열두 달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넘나들어 삶을 기도하는 우리 발버둥하며 헤진 옷섶은 누가 달아 줄까, 확 트인 희망을 탈취하여 머리에 이고 건강한 동행을 어디에서 찾을까. 바람이 분다. 남풍인가 놉세풍인가 가늠하지 못..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_ 박용재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박용재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저 향기로운 꽃들은 사랑한 만큼 산다 저 아름다운 목소리의 새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숲을 온통 싱그러움으로 만드는 나무들은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이글거리는 붉은 태양을 사랑한 만큼 산다 외로움에 젖은 낮달을 사랑한 만큼 산다 밤하늘의 별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홀로 저문 길을 아스라이 걸어가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나그네를 사랑한 만큼 산다 예기치 않은 운명에 몸부림치는 생애를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그 무언가를 사랑한 부피와 넓이와 깊이만큼 산다 그만큼이 인생이다 * 2022년 2월 3일 목요일입니다. 설연휴가 지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사랑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아름다운 기적 _ 정용철

아름다운 기적 정용철 우리는 언제나 어느 곳에서나 기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직장인은 직장에서, 주부는 가정에서, 학생은 학교에서 얼마든지 아름다운 기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아름다운 모습, 사람을 사랑하는 귀한 마음, 기쁨, 감사, 용서, 지혜, 인내, 만족, 용기, 희망...... 아름다운 단어를 가슴에 품으십시오. 아름다운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 2022년 1월 28일 금요일입니다. 긍정의 생각과 바지런한 행동은 아름다운 기적을 만듭니다. 설 연휴 편하게 보내시고, 임인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홍승환 드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_ 킴벌리 커버거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킴벌리 커버거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금방 학교를 졸업하고 머지않아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으리라. 아니. 그런 것들은 잊어 버렸으리라.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에는 신경쓰지 않았으리라. 그 대신 내가 가진 생명력과 단단한 피부를 더 가치있게 여겼으리라. 더 많이 놀고, 덜 초조해 했으리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데 있음을 기억했으리라. 부모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고 또한 그들이 내게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사랑에 더 열중하고 그 결말에 대해선 덜 걱정했으리라. 설령 그것이 실패로 끝난다 해도 더 좋은 어떤 것이 기..

그 사람의 손을 보면 _ 천양희

그 사람의 손을 보면 천양희 구두 닦는 사람의 손을 보면 그 사람의 손을 보면 구두 끝을 보면 검은 것에서도 빛이 난다 흰 것만이 빛나는 것은 아니다 창문 닦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손을 보면 창문 끝을 보면 비누거품 속에서도 빛이 난다 맑은 것만이 빛나는 것은 아니다 청소하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손을 보면 길 끝을 보면 쓰레기 속에서도 빛이 난다 깨끗한 것만이 빛나는 것은 아니다 마음 닦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손을 보면 마음 끝을 보면 보이지 않는 것에서도 빛이 난다 보이는 빛만이 빛은 아니다 닦는 것은 빛을 내는 일 성자가 된 청소부는 청소를 하면서도 성자이며 성자이면서도 청소를 한다. * 2022년 1월 26일 수요일입니다. 어떤 결과를 만드는 것은 결국 그 이전의 행동들입니다. 앞으로의 ..

등신 _ 김종제

등신(等神) 김종제 등신(等神)이 무엇이냐 나무나 돌 혹은 흙이나 쇠 따위로 만든 사람 아니, 신의 모습이라는데 말귀 못 알아듣는 백치 같은 고집 꺾을 수 없는 벽창호 같은 현실에 어두컴컴한 바보와 흡사하게 닮은 것이지요 절간에서나 교회당에서나 제법 깨우쳤다는 사람들은 등신이라는 소리를 들어야지 문밖으로 나갈 채비가 되었다고 한다는데 내 살을 팔아서 허기진 사람들에게 밥 한 그릇 나눠주고 내 피를 팔아서 목마른 사람들에게 물 한 모금 나눠주는 등신 같은 짓만 골라서 한다면 세상은 조금 아름다워지겠지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우리 주변에 등신 같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꽃이란 꽃과 열매란 열매 그 많은 나무와 지저귀는 새 비 한 번 오면 넘쳐흐르는 강물까지 등신이 아닌가 그 말이지요. * 2022년..

삼십대 _ 심보선

삼십대 심보선 나 다 자랐다, 청춘은 껌처럼 씹고 버렸다, 가끔 눈물이 흘렀으나 그것을 기적이라 믿지 않았다, 다만 깜짝 놀라 친구들에게 전화질이나 해댈 뿐, 뭐하고 사니, 산책은 나의 종교, 하품은 나의 기도문, 귀의할 곳이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지, 공원에 나가 사진도 찍고 김밥도 먹었다, 평화로웠으나, 삼십대, 평화가 그리 믿을 만한 것이겠나, 비행운에 할퀴운 하늘이 순식간에 아무는 것을 잔디밭에 누워 바라보았다, 내 속 어딘가에 고여있는 하얀 피, 꿈속에, 니가 나타났다, 다음 날 꿈에도, 같은 자리에 니가 서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너랑 닮은 새였다(제발 날아가지 마), 삼십대, 다 자랐는데 왜 사나, 사랑은 여전히 오는가, 여전히 아픈가, 여전히 신열에 몸 들뜨나, 산책에서 돌아오면 이 텅..

무화과 숲 _ 황인찬

무화과 숲 황인찬 쌀을 씻다가 창밖을 봤다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그 사람들이 들어갔다 나오지 않았다 옛날 일이다 저녁에는 저녁을 먹어야지 아침에는 아침을 먹고 밤에는 눈을 감았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 2022년 1월 21일 금요일입니다.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은 세상입니다. 일상의 소중한 것들을 돌아보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불완전 _ 김현승

불완전 김현승 더욱 분명히 듣기 위하여 우리는 눈을 감아야 하고, 더욱 또렷이 보기 위하여 우리는 우리의 숨을 죽인다. 밤을 위하여 낮은 저 바다에서 설탕과 같이 밀물에 녹고, 아침을 맞기 위하여 밤은 그 아름다운 보석들을 아낌없이 바다 속에 던진다. 죽은 사자의 가슴에다 사막의 벌떼는 단 꿀을 치고, 가장 약한 해골은 승리의 허리춤에서 패자의 이름을 빛낸다. 모든 빛과 어둠은 모든 사랑과 미움은 그리고 친척과 또 원수까지도, 조각과 조각들을 서로 부딪치며 커다란 하나의 음악이 되어, 우리의 불완전을 오히려 아름답게 노래하여 준다. * 2022년 1월 20일 목요일입니다. 모든 것이 완벽한 사람은 오히려 매력이 없는 법입니다. 무언가 조금은 불완전한 구석이 있어야 오히려 매력적입니다. 조금은 빈틈있는 하..

노래는 아무것도 _ 박소란

노래는 아무것도 박소란 폐품 리어카 위 바랜 통기타 한채 실려간다 한시절 누군가의 노래 심장 가장 가까운 곳을 맴돌던 말 아랑곳없이 바퀴는 구른다 길이 덜컹일 때마다 악보에 없는 엇박의 탄식이 새어나온다 노래는 구원이 아니어라 영원이 아니어라 노래는 노래가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어라 다만 흉터였으니 어설픈 흉터를 후벼대는 무딘 칼이었으니 칼이 실려간다 버려진 것들의 리어카 위에 나를 실어보낸 당신이 오래오래 아프면 좋겠다 * 2022년 1월 19일 수요일입니다. 시간이 없어 뭘 못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은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법입니다. 지금 바로 시작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