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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의 감옥이다 _ 유안진

내가 나의 감옥이다 유안진 한눈팔고 사는 줄은 진즉 알았지만 두 눈 다 팔고 살아온 줄은 까맣게 몰랐다 언제 어디에다 한눈을 팔았는지 무엇에다 두 눈 다 팔아먹었는지 나는 못 보고 타인들만 보였지 내 안은 안 보이고 내 바깥만 보였지 눈 없는 나를 바라보는 남의 눈들 피하느라 나를 내 속으로 가두곤 했지 가시껍데기로 가두고도 떫은 속껍질에 또 갇힌 밤송이 마음이 바라면 피곤체질이 거절하고 몸이 갈망하면 바늘편견이 시큰둥해져 겹겹으로 가두어져 여기까지 왔어라 * 2022년 2월 18일 금요일입니다. 스스로를 가두고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한 주 마무리 잘 하시고 편안한 주말 되세요. 홍승환 드림

이마 _ 허은실

이마 허은실 타인의 손에 이마를 맡기고 있을 때 나는 조금 선량해지는 것 같아 너의 양쪽 손으로 이어진 이마와 이마의 아득한 뒤편을 나는 눈을 감고 걸어가보았다 이마의 크기가 손바닥의 크기와 비슷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가난한 나의 이마가 부끄러워 뺨 대신 이마를 가리고 웃곤 했는데 세밑의 흰 밤이었다 어둡게 앓다가 문득 일어나 벙어리처럼 울었다 내가 오른팔을 이마에 얹고 누워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지 그 자세 때문이었다 * 2022년 2월 17일 목요일입니다. 진정한 프로는 때로는 포기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호리병 속에서 주먹을 움켜쥐고 있는 지 확인해 보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아침기도 _ 이해인

아침기도 이해인 잠에서 깨어나 다시 듣는 새소리 바람 소리에 가슴이 뜁니다 떠오르는 태양이 멀리서도 가까이 건네주는 사랑의 인사에 황홀해 하며 가슴 가득히 그 빛을 넣어둡니다. 오늘 만나는 이들에게 골고루 이 빛을 나누어 행복할 수 있도록 * 2022년 2월 16일 수요일입니다. 찬 바람이 매서운 매콤한 겨울 아침입니다. 봄이 멀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더 힘내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나는 배웠다 _ 샤를르 드 푸코

나는 배웠다 샤를르 드 푸코 나는 배웠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사랑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는 것뿐임을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선택에 달린 일 나는 배웠다 내가 아무리 마음을 쏟아 다른 사람을 돌보아도 그들은 때로 보답도 반응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신뢰를 쌓는 데는 여러 해가 걸려도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임을 삶에 무엇을 손에 쥐고 있는가가 아니라 누가 곁에 있는가에 달려있음을 나는 배웠다 나는 배웠다 우리의 매력이라는 것은 15분을 넘지 못하고 그 다음은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 더 중요함을 다른 사람의 최대치에 나를 비교해야함을 나는 배웠다 삶은 무슨 사건이 일어나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일어난 사건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달린 것임을 또한 나는 배웠다..

시계 _ 박소란

시계 박소란 움직이고 있다 아직 살아 있다니 아직은 무덤덤한 표정을 유지할 수 있지 퍽 강한 사람이군요, 하는 말을 들을 때면 안심이 돼 그럴 때면 표정을 더 덤덤하게 담담하게 다리를 움직여 길을 걷고 팔을 움직여 밥을 먹어 한번쯤 이 팔로 누군가를 껴안을 수도 있다지만 그렇지만 움직이는 일을 멈추지 않는 것 그런 게 중요하지 낮이나 밤이나 잠든 척 자세를 가다듬는 새벽이나 숨 쉬고 있는 것 괜찮아? 물으면 괜찮아 답하기 위해 아직 살아 있기 위해 아무도 내가 몇 시인 줄을 모른다 * 2022년 2월 14일 월요일입니다. 움직이지 않으면 정체되기 마련입니다. 새로운 한 주 힘차게 출발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독서의 시간 _ 심보선

독서의 시간 심보선 책을 읽을 시간이야 너는 말했다 그리고 입을 다물었다 네가 조용히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생각한다 이상해 정말 이상해 나는 이혼을 했는데 결혼한 기억이 없어 이혼보다 결혼이 훨씬 더 좋았을 텐데 그 책에는 이별 이야기가 있을까 어쩌면 네가 지금 막 귀퉁이를 접고 있는 페이지에 나는 생각한다 온갖 종류의 이별에 대해 모든 이별은 결국 같은 종류의 죽음이라는 사실에 대해 우리는 키스할 때 서로의 혀를 접으려고 애쓴다 무언가 그 무언가를 표시하기 위해 영원히 키스하고 싶다 이별하고 싶은 것과 무관하게 나는 천성 바깥에서 너와 함께 일생을 헤맬 것이다 돌아가고 싶다 떠나가고 싶은 것과 무관하게 어디론가 그 어디론가 * 2022년 2월 11일 금요일입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듭니..

마음 한철 _ 박준

마음 한철 박준 미인은 통영에 가자마자 새로 머리를 했다 귀밑을 타고 내려온 머리가 미인의 입술에 붙었다가 떨어졌다 내색은 안 했지만 나는 오랜만에 동백을 보았고 미인은 처음 동백을 보는 것 같았다 "우리 여기서 한 일 년 살다 갈까?" 절벽에서 바다를 보던 미인의 말을 나는 "여기가 동양의 나폴리래" 하는 싱거운 말로 받아냈다 불어오는 바람이 미인의 맑은 눈을 시리게 했다 통영의 절벽은 산의 영정과 많이 닮아 있었다 미인이 절벽 쪽으로 한 발 더 나아가며 내 손을 꼭 잡았고 나는 한 발 뒤로 물러서며 미인의 손을 꼭 잡았다 한철 머무는 마음에게 서로의 전부를 쥐여주던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 2022년 2월 10일 목요일입니다. 작은 일에 감사할 줄 알아야 삶이 윤택해지는 법입니다. 마음을 표현하는 ..

아무것도 아니었지 _ 신현림

아무것도 아니었지 신현림 너는 아무것도 아니었지 순식간에 불타는 장작이 되고 네 몸은 흰 연기로 흩어지리라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지 일회용 건전지 버려지듯 쉽게 버려지고 마음만 지상에 남아 돌멩이로 구르리라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도 괜찮고 옷에 떨어진 단추라도 괜찮고 아파트 풀밭에 피어난 도라지라도 괜찮지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의 힘을 안다 그 얇은 한지의 아름다움을 그 가는 거미줄의 힘을 그 가벼운 눈물의 무거움을 아무것도 아닌 것의 의미를 찾아가면 아무것도 아닌 슬픔의 깊은 의미를 만들고 더 깊게 지상의 뿌리를 박으리라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낄 때 비로소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무엇이든 다시 시작하리라 * 2022년 2월 9일 수요일입니다. 무가 되어야 유를 창출할 수 있는 법입니다. 무의미의 의미로움..

아침기도 _ 이해인

아침기도 이해인 잠에서 깨어나 다시 듣는 새 소리 바람 소리에 가슴이 뜁니다 떠오르는 태양이 멀리서도 가까이 건네주는 사랑의 인사에 황홀해 하며 가슴 가득히 그 빛을 넣어둡니다 오늘 만나는 이들에게 골고루 이 빛을 나누어 행복할 수 있도록 * 2022년 2월 8일 화요일입니다. 남에게 기대가 크면 실망이 커지고, 나에게 기대가 크면 희망이 커진다고 합니다. 스스로에게 기대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기쁨의 기술 _ 정용철

기쁨의 기술 정용철 옛날도 좋았는데 지금은 더 좋구나 지금도 좋지만 내일은 더 좋을거야 겨울도 좋았지만 봄은 왜 이렇게 아름다운지 여름은 시원한 바다가 있고 가을은 단풍든 산이 있구나 비오는 날은 촉촉해서 좋고 갠날은 맑아서 좋구나 아이때는 순수해서 좋고 어른이 되면 지혜로워서 좋지 갈때는 새로운 것을 보고 올때는 그리운 것을 만나서 좋구나 아픔이 지나가면 기쁨이 오고 기쁨이 모이면 아픔도 이길거야 * 2022년 2월 7일 월요일입니다. 아픔이 지나가면 기쁨이 오기 마련입니다. 기쁨의 기술을 발휘하는 한 주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