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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_ 유치환

행복 유치환 사랑 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머랄드빛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이 와선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도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방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 2022년 1월 4일 화요..

새해 인사 _ 김현승

새해 인사 김현승 오늘은 오늘에만 서 있지 말고, 오늘은 내일과 또 오늘 사이를 발 굴러라. 건너 뛰듯 건너 뛰듯 오늘과 또 내일 사이를 뛰어라. 새옷 입고 아니, 헌옷이라도 빨아 입고, 널 뛰듯 널 뛰듯 이쪽과 저쪽 오늘과 내일의 리듬 사이를 발 굴러라 발 굴러라. 춤 추어라 춤 추어라. * 2022년 1월 3일 월요일입니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계획하고, 다짐하고, 시작하는 1월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새해를 향하여 _ 임영조

새해를 향하여 임영조 다시 받는다 서설처럼 차고 빛부신 희망의 백지 한 장 누구나 공평하게 새로 받는다 이 순백의 반듯한 여백 위에 무엇이든 시작하면 잘될 것 같아 가슴 설레는 시험지 한 장 절대로 여벌은 없다 나는 또 무엇부터 적을까? 소학교 운동회날 억지로 스타트 라인에 선 아이처럼 도무지 난감하고 두렵다 이번만은 기필코 인생에 대하여 행복에 대하여 건강에 대하여 몇 번씩 고쳐 쓰는 답안지 그러나 정답은 없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재수인가? 삼수인가? 아니면 영원한 미지수인가? 문득 내 나이가 무겁다 창문 밖 늙은 감나무 위엔 새 조끼를 입고 온 까치 한 쌍 까작까작 안부를 묻는다. 내내 소식 없던 친구의 연하장처럼 근하 신년! 해피 뉴 이어! * 2021년 12월 31일 금요일 한 해의 마지막 날입니..

겨울 나무로부터 봄 나무에로 _ 황지우

겨울 나무로부터 봄 나무에로 황지우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 13도 영하 20도 지상에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裸木)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받는 몸으로, 벌받는 목숨으로 기립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魂)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에서 영상으로 영상 5도 영상 13도 지상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신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 피는 나무는 자기..

그럴 수 없다 _ 류시화

그럴 수 없다 류시화 물 속을 들여다보면 물은 내게 무가 되라 한다 허공을 올려다보면 허공은 또 내게 무심이 되라 한다 허공을 나는 새는 그저 자취없음이 되라 한다 그러나 나는 무가 될 수 없다 무심이 될 수 없다 어느 곳을 가나 내 흔적은 남고 그는 내게 피 없는 심장이 되라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그는 도둑처럼 밤중에 이슬을 밟고 와서 나더러 옷을 벗으라 하고 내 머리를 바치라 한다 나더러 나를 버리라 한다 그러나 나는 그럴 수 없다 그는 내게 물이 되라 하나 나는 불로서 타오르려 한다 그는 내게 미소가 되라 하지만 그러나 아직 내 안에 큰 울음이 넘쳐난다 그는 내게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라 하나 나는 그럴 수 없다 한다 * 2021년 12월 29일 수요일입니다. 머리로는 이해를 하지만 몸과 마음..

깨렴 _ 백창우

깨렴 백창우 깨렴, 내사람 이제 일어나 푸른 아침을 맞으렴 지붕 아래 활짝 핀 고운 담자색 나팔꽃 다 시들기 전에 다른 세상에서 찾아온 우물가 오색무늬나비 한 마리 다시 저 있던 곳으로 길 떠나기 전에 어서 일어나 창을 열고 새날을 시작하렴 막 햇볕이 마당에 들고 살아있는 것들 모두 눈을 뜨는데 깨렴, 내 사람 꾸다만 꿈 마음 한 켠에 접어두고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렴 * 2021년 12월 28일 화요일입니다. 틀, 고정관념, 게으름, 부정인식, 오해... 깨버려야 할 것들입니다. 알을 깨고 나와 성장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겨울 나기 _ 탁명주

겨울 나기 탁명주 겨울은 껍질이 두꺼운 계수나무다 어린 나무가 겨울 앞에 꿋꿋할 수 있는 건 바람 맞을 잎이 없음이다 뿌리깊은 리듬으로 오는 설레임이 있음이다 매운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껍질 속에 저장하였다가 사월 다스운 봄 햇살에 발효시켜 박하나무는 박하 잎을 계수나무는 계피를 만드는 것이리라 한둥치 겨울옷을 벗을 때마다 고갱이는 굵어지고 껍질은 단단해진다 어린 나무가 바람 소리에 귀기울이는 건 골패인 낙숫물 소문을 듣기 위함이다 껍질 속 비밀스런 세포분열에 향기 짙은 녹수의 싹 힘껏 밀어올릴 물 오른 봄기운을 기다림이다 * 2021년 12월 27일 월요일입니다. 군더더기를 덜어내지 못하면 무거운 법입니다. 한 해의 마지막 주, 필요없는 것들을 버리는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날마다 성탄일 _ 정연복

날마다 성탄일 정연복 소중하지 않은 시간은 세상에 없습니다. 모든 시간이 아주 똑같이 소중합니다. 아직은 우리가 살아 있어 날마다 '시간'이라는 선물을 받습니다. 하지만 죽음의 문턱을 넘으면 시간은 우리에게서 영영 멀어집니다. 살아 있는 동안에만 누릴 수 있는 최고로 귀한 선물인 '시간'을 우리는 매 순간 의미 있는 일들로 채워가야 합니다.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우리는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지금 가슴속 사랑의 불이 식었다면 한시바삐 그 불을 다시 피워야 합니다. 우리는 어느 날에라도 사랑의 신을 맘속에 모실 수 있습니다. 사랑의 천사인 아기 예수가 언제라도 우리 맘속에서 태어날 수 있습니다. 단지 12월 25일뿐만 아니라 일 년 365일 모든 날이 똑같이 귀하고 거룩한 날이요 성탄일이 될 수 있습니다..

마음의 태양 _ 조지훈

마음의 태양 조지훈 꽃 사이 타오르는 햇살을 향하여 고요히 돌아가는 해바라기처럼 높고 아름다운 하늘을 받들어 그 속에 맑은 넋을 살게 하자. 가시밭길 넘어 그윽히 웃는 한 송이 꽃은 눈물의 이슬을 받아 핀다 하노니 깊고 거룩한 세상을 우러르기에 삼가 육신의 괴로움도 달게 받으라. 괴로움에 짐짓 웃을 양이면 슬픔도 오히려 아름다운 것이 고난을 사랑하는 이에게만이 마음 나라의 원광(圓光)은 떠오른다. 푸른 하늘로 푸른 하늘로 항시 날아오르는 노고지리 같이 맑고 아름다운 하늘을 받들어 그 속에 높은 넋을 살게 하자. * 2021년 12월 23일 목요일입니다. 대하는 태도에 따라 모든 상황은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겨울사랑 _ 문정희

겨울사랑 문정희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 숨기지 말고 그냥 네 하얀 생애 속에 뛰어들어 따스한 겨울이 되고 싶다 천 년 백설이 되고 싶다 * 2021년 12월 22일 절기상 동지입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무에게나 맡기면 됩니다.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할 줄 알아야 실력이 쌓입니다. 경쟁력을 키우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