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시 963

있지 _ 이병률

있지 이병률 있지 가만히 서랍에서 꺼내는 말 벗어 던진 옷 같은 말 있지 문득 던지는 말 던지는 곳이 어디인지 모르므로 도착하지도 않는 말 있지 더없이 있자 하고 싶은데 말할 수 없음이 그렇고 그런 말 있지 전기 설비를 마친 새 집에 등을 켤 때 있지.라는 소리와 함께 켜지는 것 같아 소스라치게도 되는 하지만 들어도 들어도 저울에 올릴 수 없는 말 있지 그러다가도 그러다가도 혼자가 아닌 말 침묵 사이에 있다가도 말 사이에 있다가도 덩그마니 혼자이기만 한 말 있지 수상하고 수상하도록 무엇이 있다는 것인지 무엇으로 청천벽력을 가능하게 하겠다는 것인지 포개고 자꾸 포개지는 순박한 그 말에는 참 모두가 있지 * 2022년 6월 23일 목요일입니다. 오늘부터 장마가 시작된다고 하네요. 외출하실 때 우산 챙기시고 ..

사랑에 답함 _ 나태주

사랑에 답함 나태주 예쁘지 않은 것을 예쁘게 보아주는 것이 사랑이다 좋지 않은 것을 좋게 생각해주는 것이 사랑이다 싫은 것도 잘 참아 주면서 처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중까지 아주 나중까지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랑이다 * 2022년 6월 22일 수요일입니다. 아주 오랜 시간 변하지 않아야 진짜입니다. 끈기 있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가지 않은 길 _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 프로스트 노란색 숲 속으로 향하는 두 갈래의 길 아쉽게도 내가 갈 수 있는 길은 하나 여행자의 마음으로 한참을 서서 관목들 사이로 구부러진 그 길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리고 선택한 것은 다른 길, 모두 아름답고 수풀 무성하지만 사람들의 흔적 덜한 길 그 길이 나의 마음을 끌었을까? 두 길 모두 지나간 이들의 흔적으로 비슷하게 닳아 있었지만 아무도 밟지 않은 낙엽들 그 아침 두 길 모두에 깔려 있다 아, 저 길은 나중에 걸어 보리라 인생이라는 길은 또 다른 길로 이어져 되돌아올 수 없음을 알면서도 먼 훗날 저 길 어딘가에서 한숨을 쉬며 말할지도 모른다 그 숲에는 두 갈래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고 그리고 나의 인생은 달라졌다고 * 2022년 6월 21일 화요일입..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_ 이준관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이준관 구부러진 길을 가면 나비의 밥그릇 같은 민들레를 만날 수 있고 감자를 심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날이 저물면 울타리 너머로 밥 먹으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구부러진 하천에 물고기가 많이 모여 살 듯이 들꽃도 많이 피고 별도 많이 뜨는 구부러진 길. 구부러진 길은 산을 품고 마음을 품고 구불구불 간다. 그 구부러진 길처럼 살아온 사람이 나는 또한 좋다. 흙투성이 감자처럼 울퉁불퉁 살아온 사람의 구불구불 구부러진 삶이 좋다. 구부러진 주름살에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고 가는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 * 2022년 6월 20일 월요일입니다. 때로는 느리게 돌아가는 길에서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즐거운 한 주의 시작 되세요. 홍승환 드림

마중물과 마중불 _ 하청호

마중물과 마중불 하청호 외갓집 낡은 펌프는 마중물을 넣어야 물이 나온다.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땅 속 깊은 곳 물을 이끌어 올려주는 거다. 아궁이에 불을 땔 때도 마중불이 있어야 한다. 한 개비 성냥불이 마중불이 되어 나무 속 단단히 쟁여져 있는 불을 지피는 거다. 나도 누군가의 마음을 이끌어 올려주는 마중물이 되고 싶다. 나도 누군가의 마음을 따뜻하게 지펴주는 마중불이 되고 싶다. * 2022년 6월 17일 금요일입니다. 어려운 시작을 도와주는 누군가가 있으면 큰 힘이 됩니다. 누군가에게 마중물과 마중불이 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사람 _ 박찬

사람 박찬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생각이 무슨 솔굉이처럼 뭉쳐 팍팍한 사람 말고 새참 무렵 또랑에 휘휘 손 씻고 쉰내 나는 보리밥 한 사발 찬물에 말아 나눌 낯 모를 순한 사람 그런 사람 하나쯤 만나고 싶다 * 2022년 6월 16일 목요일입니다. 착하고 순한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주변을 돌아보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우리가 물이 되어 _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 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 만 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 2022년 6월 15일 수요일입니다. 유연, 포용, 변화... 물에게서 배웁니다. 비 오는 수요일 건강한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느낌 _ 까비르

느낌 까비르 '앎'이라는 말보다 '느낌'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더 좋다 느낌 쪽이 보다 본질에 가깝기 때문이다. '앎'은 두뇌적이다. 그러나 '느낌'은 전체적이다. 느낄 때 머리만으로 느끼지 않는다. 가슴만으로 느끼지 않는다. 그대 전 존재의 세포 하나하나가 그대로 느낌 그 자체가 되어 느낀다. 느낌은 전체적이다. 느낌은 유기적이다. * 2022년 6월 14일 화요일입니다.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이해하고 느끼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내 안의 소금 원피스 _ 김혜순

내 안의 소금 원피스 김혜순 슬픔을 참으면 몸에서 소금이 난다 짜디짠 당신의 표정 일평생 바다의 격렬한 타격에 강타당한 외로운 섬 같은 짐승의 눈빛 짧은 속눈썹 울타리 사이 파랑주의보 높아 바닷물 들이치는 날도 있었지만 소금의 건축이 허물어지지는 않았다 따가운 흐느낌처럼 손끝에서 피던 소금꽃 소금, 내 고꾸라진 그림자를 가루 내어 가로등 아래 뿌렸다 소금, 내 몸속에서 유전하는 바다의 건축 소금, 우리는 부둥켜안고 서로의 몸속에서 바다를 채집하려 했다. 오늘은 일어나자마자 염전이 문을 열었다. 나는 아침부터 바다의 건축이 올라오는 소리 들었다. 나는 몸속에 입었다. 소금 원피스 한 벌. * 2022년 6월 13일 월요일입니다. 해결되지 않은 과거는 언제든 현재의 나에게 다시 찾아 온다고 합니다. 문제를 ..

당신에겐 눈물이 있다 _ 이어령

당신에겐 눈물이 있다 이어령 당신에게 눈물이 있다는 것은 영혼이 있다는 것 사랑이 있다는 것 누군가를 사랑하고 애타게 그리워한다는 것 그리고 뉘우친다는 것 내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 흘리는 눈물은 비가 그치자 나타난 무지개처럼 아름답다 눈물에 젖은 빵을 먹는 것은 가난 때문이 아니다 가난을 넘어서는 사랑의 눈물에서만 영혼의 무지개가 뜬다. * 2022년 6월 10일 금요일입니다. 인간다움이 있어야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법입니다. 한 주 마무리 잘 하시고 편안한 주말 되세요. 홍승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