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시 963

하늘 도서관 _ 최승자

하늘 도서관 최승자 오늘도 하늘 도서관에서 낡은 책 한 권 빌렸다. 되도록 허름한 생각들을 걸치고 산다. 허름한 생각들은 고독과 같다. 고독을 빼앗기면 물을 빼앗긴 물고기처럼 된다. 21세기에도 허공은 있다. 바라볼 하늘이 있다. 지극한 無로서의 虛를 위하여 虛無가 아니라 無虛를 위하여 허름한 생각들은 아주 훌륭한 옷이 된다. 내일도 나는 하늘 도서관에서 낡은 책 한 권 빌리리라. * 2022년 8월 4일 목요일입니다. 낡고 오래된 것들이 주는 편안함이 있습니다. 편안한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진정한 여행 _ 나짐 히크메트

진정한 여행 나짐 히크메트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쓰여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러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 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 할 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 2022년 8월 3일 수요일입니다. 힘을 쓸 때와 뺄 때가 있는 법입니다. 늘 힘을 쓰면 힘이 부족하기 마련입니다. 힘의 배분을 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자유 _ 조병무

자유 조병무 빛을 모읍니다. 빛은 한 줌 손바닥 밖에 머뭇거립니다. 서풍이 불고 돌이 깨어지고 모과가 떨어지고 까마귀 울고 모두가 그대롭니다. 빛을 잡으려해도 빛은 한 줌 손바닥 밖에서 웃고 있습니다. 다만 그것뿐입니다. * 2022년 8월 2일 화요일입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태양이 없어지는 건 아닙니다. 얕은 수보다는 진정성으로 다가가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8월의 시 _ 오세영

8월의 시 오세영 8월은 오르는 길을 멈추고 한번쯤 돌아가는 길을 생각하게 만드는 달이다. 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 가는 파도가 오는 파도를 만나듯 인생이란 가는 것이 또한 오는 것 풀섶에 산나리, 초롱꽃이 한창인데 세상은 온통 초록으로 법석이는데 8월은 정상에 오르기 전 한번쯤 녹음에 지쳐 단풍이 드는 가을 산을 생각하는 달이다. * 2022년 8월 1일 월요일입니다. 무더위와 태풍으로 시작하는 8월입니다. 더운 날 주변 사람들에게 먼저 웃어주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생각도 예방주사를 맞았으면 좋겠다 _ 이중삼

생각도 예방주사를 맞았으면 좋겠다 이중삼 아이들 집에 가고 없는 운동장 시계 바늘 같은 오후 그림자 삽살개 한 마리가 끌며 간다 나와 다른 나와의 대화 생각이 서술하기 시작하자 살아 온 날처럼 살아 갈 날이 욕심이라는 바이러스에 면역을 잃으며 시간의 비탈길로 좀생이별처럼 흩어진다 욕심에 눈 멀지 않게 생각도 예방 주사를 맞았으면 좋겠다 또 다른 내가 아이들 다 가고 없는 운동장에서 뛰논다 굴렁쇠 굴리며 * 2022년 7월 29일 아침부터 무더운 금요일입니다. 나쁜 생각들을 없애주는 예방주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한 주의 마무리 잘 하시고 행복한 주말 되세요. 홍승환 드림

기다린다 _ 조병준

기다린다 조병준 기다려야 할 때가 있다. 천지 사방이 온통 눈으로 덮여 눈 뜬 것과 눈 감은 것이 다르지 않을 때 홀로 눈밭에 서서 기다려야 할 때가 있다. 누구도 다가오지 않는 시간, 그래서 멈춘 시간 속에 함께 멈춰 있어야 할 때가 있다. 기다리는 것 말고는 다른 어떤 일을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런 기다림의 시간을 겪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당신, 지금 기다리고 있는가? * 2022년 7월 28일 목요일입니다. 기다림이 있어야 제대로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조급해 하지 않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강가에서 _ 윤제림

강가에서 윤제림 처음엔 이렇게 썼다. 다 잊으니까 꽃도 핀다. 다 잊으니까 강물도 저렇게 천천히 흐른다. 틀렸다 이제 다시 쓴다. 아무 것도 못 잊으니까 꽃도 핀다. 아무 것도 못 잊으니까, 강물도 저렇게 시퍼렇게 흐른다. * 2022년 7월 27일 수요일입니다. 처음에 생각했던 것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무엇이든 다시 쓸 수 있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거울 _ 이현주

거울 이현주 오늘도 내 안에 간직한 거울을 닦는다. 먼지가 덮인 거울을 깨끗이 닦으며 잠시 내가 거울을 잊었구나. 새 아파트로 이사와 현관 앞에 전신거울을 달며 내 안에 간직했던 거울을 생각해냈다. 벽 거울 속을 들여다보며 내 속에 거울을 닦는다. 벽 거울 속을 들여다보며 내 눈빛을 다듬는다. 눈빛에 깊이를 가늠해 본다. 관상을 찬찬히 보며 관상을 바로 잡는다. 나를 바로 세우는 것 나를 잊지 않게 해주는 것 바로 내 안에 거울이다. * 2022년 7월 26일 화요일입니다.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여러가지 거울이 있습니다. 몸가짐과 행동을 바로 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그립다고 말했다 _ 정현종

그립다고 말했다 정현종 두루 그립다고 너는 말했다 그러자 너는 꽃이 되었다 그립다는 말 세상은 떠돌아 나도 같이 떠돌아 가는 데마다 꽃이 피었다 닿는 것마다 꽃이 되었다 그리운 마음 허공과 같으니 그 기운 막막히 퍼져 퍼지고 퍼져 마음도 허공도 한 꽃송이! 두루 그립다고 너는 말했다 * 2022년 7월 25일 월요일입니다.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된다고 하네요. 건강한 한 주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_ 나희덕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나희덕 살았을 때의 어떤 말보다 아름다웠던 한마디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그 말이 잎을 노랗게 물들였다 지나가는 소나기가 앞을 스쳤을 뿐인데 때로는 여름에도 낙엽이 진다 온통 물든 것들은 어디로 가나 사라짐으로 하여 남겨진 말들은 아름다울 수 있었다 말이 아니어도, 잦아지는 숨소리 일그러진 표정과 차마 감지 못한 두 눈까지도 더 이상 아프지 않은 그 순간 삶을 꿰매는 마지막 한땀처럼 낙엽이 진다 낙엽이 내 젖은 신발창에 따라와 문턱을 넘는다, 아직은 여름인데. * 2022년 7월 22일 금요일입니다. 믿지 못하면 쓰지 말고, 쓰면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고 맡기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