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시 957

비누 _ 정진규

비누 정진규 비누가 나를 씻어 준다고 믿었는데 그렇게 믿고서 살아왔는데 나도 비누를 씻어 주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몸 다 닳아져야 가서 닿을 수 있는 곳, 그 아름다운 소모를 위해 내가 복무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비누도 그걸 하고 있다는 걸 그리고 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마침내 당도코자 하는 비누의 고향! 그 곳이 어디인지는 알 바 아니며 다만 아무도 혼자서는 씻을 수 없다는 돌아갈 수 없다는 나도 누구를 씻어 주고 있다는 돌아가게 하고 있다는 이 발견이 이 복무가 이렇게 기쁠 따름이다. 눈물이 날 따름이다. * 2023년 8월 11일 금요일입니다. 세상의 모든 이치는 상대적인 것입니다. 새로운 발견을 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태풍 _ 나희덕

태풍 나희덕 바람아, 나를 마셔라. 단숨에 비워내거라. 내 가슴속 모든 흐느낌을 가져다 저 나부끼는 것들에게 주리라. 울 수 있는 것들은 울고 꺾일 수 있는 것들은 꺽이도록 그럴 수도 없는 내 마음은 가벼워지고 또 가벼워져서 신음도 없이 지푸라기처럼 날아오르리. 바람아, 풀잎 하나에나 기대어 부르는 나의 노래조차 쓸어가버려라. 울컥울컥 내 설움 데려가거라. 그러면 살아가리라. 네 미친 울음 끝 가장 고요한 눈동자 속에 태어나. * 2023년 8월 10일 목요일입니다. 한반도 내륙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태풍은 태어나 처음 봅니다. 부디 큰 피해 없이 더위만 식히고 지나가길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실패할 수 있는 용기 _ 유안진

실패할 수 있는 용기 유안진 눈부신 아침은 하루에 두 번 오지 않습니다. 찬란한 그대 젊음도 일생에 두 번 다시 오지않습니다. 어질머리 사랑도 높푸른 꿈과 이상도 몸부림친 고뇌와 보석과 같은 눈물의 가슴앓이로 무수히 불밝힌 밤을 거쳐서야 빛이납니다. 젊음은 용기입니다. 실패를 겁내지 않는 실패도 할 수 있는 용기도 오롯 그대 젊음의 것입니다. * 2023년 8월 9일 수요일입니다. 태풍 전 하늘에 구름이 예술을 그려놓았네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가을노래 _ 이해인

가을노래 이해인 가을엔 물이 되고 싶어요 소리를 내면 비어 오는 사랑한다는 말을 흐르며 속삭이는 물이 되고 싶어요 가을엔 바람이고 싶어요 서걱이는 풀잎의 이마를 쓰다듬다 깔깔대는 꽃 웃음에 취해도 보는 연한 바람으로 살고 싶어요 가을엔 감이 되고 싶어요 가지 끝에 매달린 그리움 익혀 당신의 것으로 바쳐 드리는 불을 먹은 감이 되고 싶어요 * 2023년 8월 8일 화요일 절기상 입추입니다. 태풍의 영향인지 아침바람이 조금 선선해졌습니다. 막바지 더위 잘 이겨내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편지 _ 김남조

편지 김남조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그대만큼 나를 외롭게 한 이도 없었다 이 생각을 하면 내가 꼭 울게 된다 그대만큼 나를 정직하게 해준 이가 없었다 내 안을 비추는 그대는 제일로 영롱한 거울 그대의 깊이를 다 지나가면 글썽이는 눈매의 내가 있다 나의 시작이다 그대에에 매일 편지를 쓴다 한 귀절을 쓰면 한 귀절을 와서 읽는 그대 그래서 이 편지는 한번도 부치지 않는다 * 2023년 8월 7일 월요일입니다. 올바르고 상식적인 말과 행동이 귀한 세상입니다. 미리 생각하고 움직이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매미 _ 정연복

매미 정연복 불볕더위 속 어디에선가 함성처럼 들려오는 매미 소리 저것은 생명의 찬가인가 피울음의 통곡인가 겨우 한 달 남짓한 짧은 생애일 뿐인데도 나 이렇게 찬란하게 지금 살아 있다고 온몸으로 토하는 뜨거운 소리에 늦잠에서 부스스 깨어난 나는 참 부끄럽다 * 2023년 8월 4일 금요일입니다. 외계인의 소리 같은 매미 소리가 아침 잠을 깨웁니다. 한 주 마무리 잘 하시고 즐거운 주말 되세요. 홍승환 드림

냄비의 얼굴은 반짝인다 _ 송유미

냄비의 얼굴은 반짝인다 송유미 누룽지가 붙어서 좀처럼 씻어지지 않는 솥을 씻는다 미움이 마음에 눌어 붙으면 이처럼 닦아내기 어려울까 닦으면 닦을수록 윤이 나는 주전자를 보면서 씻으면 씻을수록 반짝이는 찻잔을 보면서 영혼도 이와 같이 닦으면 닦을수록 윤이 나게 할 수는 없는 일일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릇은 한 번만 써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뼈 속까지 씻으려 들면서 세상을 수십 년을 살면서도 마음 한 번 비우지 못해 청청히 흐르는 물을 보아도 때묻은 정(情)을 씻을 수가 없구나 남의 티는 그리도 잘 보면서도 제 가슴 하나 헹구지도 못하면서 오늘도 아침저녁을 종종걸음치며 죄 없는 냄비의 얼굴만 닦고 닦는 것이다 * 2023년 8월 3일 목요일입니다. 무릇 리더는 자신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관대해야 합니다. ..

내가 웃잖아요 _ 이정하

내가 웃잖아요 이정하 그대가 지금 뒷모습을 보인다고 해도 언젠가는 돌아오리라는 것을 믿기에 나는 괜찮을 수 있지요. 그대가 마시다가 남겨 둔 차 한 잔 따스한 온기로 남아 있듯이 그대 또한 떠나 봤자 마음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을 수 있지요. 가세요 그대, 내가 웃잖아요. 너무 늦지 않게 오세요. * 2023년 8월 2일 수요일입니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해진다고 합니다. 많이 웃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물길 _ 김광규

물길 김광규 언젠가 왔던 길을 누가 물보다 잘 기억하겠나 아무리 재주껏 가리고 깊숙이 숨겨 놓아도 물은 어김없이 찾아와 자기의 몸을 담아 보고 자기의 깊이를 주장하느니 여보게 억지로 막으려 하지 말게 제 가는 대로 꾸불꾸불 넓고 깊게 물길 터 주면 고인 곳마다 시원하고 흐를 때는 아름다운 것을 물과 함께 아니라면 어떻게 먼 길을 갈 수 있겠나 누가 혼자 살 수 있겠나 * 2023년 8월 1일 화요일입니다. 흐르는대로 가는 게 가장 자연스럽습니다. 부자연스러운 것들을 정리하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눈 위에 쓴 시 _ 류시화

눈 위에 쓴 시 류시화 누구는 종이 위에 시를 쓰고 누구는 사람 가슴에 시를 쓰고 누구는 자취없는 허공에 대고 시를 쓴다지만 나는 십이월의 눈 위에 시를 쓴다 눈이 녹아 버리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나의 시 * 2023년 7월 31일 월요일입니다. 귀를 열면 마음도 열리는 법입니다. 주변을 괴롭히는 아집을 버리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