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시 963

해녀의 꿈 _ 이해인

해녀의 꿈 이해인 욕심 없이 바다에 뛰어들면 바다는 더욱 아름다워요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사랑 안에서 자유롭습니다 암초를 헤치며 미역을 따듯이 전복을 따듯이 힘들어도 희망을 꼭 따오겠어요 바다 속에 집을 짓고 살고 싶지만 다시 뭍으로 올라와야지요 짠 냄새 가득 풍기는 물기 어린 삶을 살아내기 위하여ㅡ * 2022년 10월 14일 금요일입니다. 욕심 없이 뛰어들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희망을 따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바람에도 길은 있다 _ 천상병

바람에도 길은 있다 천상병 강하게 때론 약하게 함부로 부는 바람인 줄 알아도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길을 바람은 용케 찾아간다 바람길은 사통팔달이다. 나는 비로소 나의 길을 가는데 바람은 바람길을 간다. 길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 2022년 10월 12일 수요일입니다. 유연함을 가져야 문제의 해결책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바람길을 찾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내일을 예약합니다 _ 오광수

내일을 예약합니다 오광수 내일을 예약합니다. 저기 저 하늘과 같이 눈부시게 파란 내일을 예약합니다. 내일은 생각이 젊어져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정열이 살아나고 내일은 가슴이 건강해져서 진리를 위해 양심의 고동을 울릴 수 있고 내일은 마음을 활짝 열어 미움이 사라지고 더불어 사는 날이길, 내일을 예약합니다. 저기 저 아침해 같이 타오르는 붉은 내일을 예약합니다. 내일은 생각이 요동쳐서 좌절했던 자리에서 도전하는 자리로 바뀌고 내일은 가슴이 뜨거워져서 사랑을 위해 진실의 고백을 나눌 수 있고 내일은 마음이 손을 잡고 시기와 질투가 없는 정스러운 날이길, 내일을 예약합니다. 남은 건 어제의 실패와 어려움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흘린 진실한 땀과 소중한 노력으로 내일을 예약합니다. * 2022년 10월 ..

주목한다 _ 박노해

주목한다 박노해 한번은 너에게도 하늘이 열렸고 네 곁에 신이 다가갔음을 나는 알고 있다 한번은 너에게도 천사와 귀인이 걸어왔고 한번은 악마를 보았음을 나는 알고 있다 한번은 예술가였고 탐험가였고 시인이었고 한번은 창조자였고 혁명가였고 구도자였고 지금도 그 모든 네가 있음을 나는 알고 있다 단지 네가 주목하지 않았을 뿐 세상에는 경악할 진실들이 걸어온다 인생에는 여정의 놀라움이 찾아온다 한번은 한번쯤은 다시 네 곁을 서성이다 지나치고 네 가슴의 창문을 두드리는 네 안의 네가 살아있다 다만 무언가에 사로잡혔고 주인의 눈으로, 목적의 눈으로, 주목하지 않았을 뿐 네 안에 이미 있었다 나는 너를 주목하느니 * 2022년 10월 6일 목요일입니다. 주목해서 눈여겨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작은 ..

산책 _ 조병화

산책 조병화 참으로 당신과 함께 걷고 싶은 길이었습니다 참으로 당신과 함께 앉고 싶은 잔디였습니다 당신과 함께 걷다 앉았다 하고 싶은 나무 골목길 분수의 잔디 노란 밀감나무 아래 빈 벤치들이었습니다 참으로 당신과 함께 누워 있고 싶은 남국의 꽃밭 마냥 세워 푸르기만한 꽃밭 내 마음은 솔개미처럼 양명산 중턱 따스한 하늘에 걸려 날개질 치며 만나다 헤어질 그 사람들이 또 그리워들었습니다 참으로 당신과 함께 영 걷고 싶은 길이었습니다 당신과 함께 영 앉아 있고 싶은 잔디였습니다 * 2022년 10월 5일 수요일입니다.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맑아질 때가 있습니다. 오늘 점심엔 잠깐이라도 짬을 내서 산책을 해보세요. 홍승환 드림

시월 이야기 _ 이향지

시월 이야기 이향지 만삭의 달이 소나무 가지에서 내려와 벽돌집 모퉁이를 돌아갑니다 조금만 더 뒤로 젖혀지면 계수나무를 낳을 것 같습니다 계수나무는 이 가난한 달을 엄마 삼기로 하였습니다 무거운 배를 소나무 가지에 내려놓고 모로 누운 달에게 "엄마" 라고 불러봅니다 달의 머리가 발뒤꿈치까지 젖혀지는 순간이 왔습니다 아가야아가야 부르는 소리 골목을 거슬러 오릅니다 벽돌집 모퉁이가 대낮 같습니다 * 2022년 10월 4일 화요일입니다. 하루 하루 가을이 깊어가는 10월입니다. 화요일부터 시작되는 한 주, 힘차게 출발하세요. 홍승환 드림

사는 맛 _ 정일근

사는 맛 정일근 당신은 복어를 먹는다고 말하지만 그건 복어가 아니다, 독이 빠진 복어는 무장 해제된 생선일 뿐이다 일본에서는 독이 든 복어를 파는 요릿집이 있다고 한다, 조금씩 조금씩 독의 맛을 들이다 고수가 되면 치사량의 독을 맛으로 먹는다고 한다 그 고수가 먹는 것이 진짜 복어다 맛이란 전부를 먹는 일이다 사는 맛도 독 든 복어를 먹는 일이다 기다림, 슬픔, 절망, 고통, 고독의 맛 그 하나라도 독처럼 먹어보지 않았다면 당신의 사는 맛도 독이 빠진 복어를 먹고 있을 뿐이다 * 2022년 9월 30일 금요일입니다. 희노애락 속에 사는 맛이 있습니다. 기쁨과 즐거운 사는 맛을 느끼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하고 싶은 말 _ 홍수희

하고 싶은 말 홍수희 하고 싶은 말 하지 못하고 산다 너에게 짧은 안부 묻고 싶어 전화했더니 지금은 안 된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나에게 짧은 안부 묻고 싶은 너에게서 전화 받은 날 나도 지금은 바쁘다고 했다 지나고 보면 왜 그리 바쁜 날이 많았는지 정작 나의 마음이 보이지 않도록 왼손에게는 늘 오른손이 바쁘다고 했다 오른손에게는 늘 왼손이 바쁘다고만 했다 정작 나의 마음이 보이지 않거나 너의 마음이 보이지 않기를 우리는 그렇게 살아간다 하고 싶은 말, 하지 못하고 산다 스스로 그렇게 바쁘다, 바쁘다, 되도록 이면 마음이 보이지 않기를 * 2022년 9월 29일 목요일입니다. 가끔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간직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_ 함석헌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함석헌 만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 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2022년 9월 28일 수요일입니다...

가을이 묻어 왔습니다 - 미상

가을이 묻어 왔습니다 미상 길가에 차례없이 어우러진 풀잎들 위에 새벽녘에 몰래 내린 이슬 따라 가을이 묻어 왔습니다. 선풍기를 돌려도 겨우 잠들 수 있었던 짧은 여름밤의 못다한 이야기가 저리도 많은데 아침이면 창문을 닫아야 하는 선선한 바람 따라 가을이 묻어 왔습니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숨이 막히던 더위와 세상의 끝날이라도 될 것 같던 그리도 쉼 없이 퍼붓던 소나기에 다시는 가을 같은 것은 없을 줄 알았는데 밤인 줄도 모르고 처량하게 울어대는 가로수의 매미소리 따라 가을이 묻어 왔습니다. 상큼하게 높아진 하늘 따라 가을이 묻어 왔습니다. 이왕 묻어온 가을이라면 촛불 밝히고 밤새 읽을 한 권의 책과 눈빛으로 마주해도 마음 읽어낼 열무김치에 된장찌개 넣어 비벼먹어도 행복한 그리운 사람이 함께 할 가을이..